21세기 신상품 성장동력 집중해부

삼성전자가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나섰다. 지난해 봄 이건희 회장의 복귀 이후 급속도로 진행되는 신성장산업 추진은 다방면에서 추진 중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모험 정신을 갖고 새로운 산업에 뛰어들만큼 투자력을 가진 곳은 삼성 외엔 그리 많지 않다”며 “앞으로 각광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도 비슷한 양상으로 흐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양광 분야와 함께 삼성이 눈독들이고 있는 블루오션은 다름 아닌 헬스케어 사업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주축 계열사들이 총동원돼 추진되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과 삼성이 가진 방대한 인맥, 풍부한 노하우가 동력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국내 최대 의료기기 업체인 메디슨을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사모투자회사인 칸서스의 40.9% 지분과 우리사주조합의 2.6%, 그리고 협력사인 프로소닉 지분까지 한번에 묶어 인수했다. 메디슨 인수전엔 SK, KT&G, 네덜란드 필립스, 일본 올림푸스 등이 참여했으나 결국 주인 자리는 삼성전자의 몫이었다.

칸서스 김영재 회장은 “삼성전자가 최고액을 부른 곳은 아니었으나 메디슨의 글로벌 의료기업 성장 비전에 삼성전자가 합당한 것으로 보여서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메디슨은 국내 1세대 벤처기업인인 이민화씨가 1985년 설립한 초음파 진단기기 전문업체로 무리한 확장 끝에 2006년 칸서스에 인수됐다.

GE, 필립스, 지멘스, 도시바에 이어 세계 5번째(점유율 7%) 의료기기 업체로 국내에선 35%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번 메디슨 인수로 삼성의 헬스케어 사업 분야는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됐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삼성은 오는 2020년까지 매출액 10조를 만들겠다는 다부진 야심을 갖고 있다.

IT와 의료의 접목

삼성은 의료기기에 이어 바이오의약품 시장 공략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삼성그룹의 헬스케어 분야 진출은 가히 전방위적이다. 메디슨을 인수한 삼성전자는 그 외에도 종합기술원에서 개발한 혈액검사기를 시판하고 있고, 또 각종 질환을 컴퓨터로 진단하는 ‘바이오 PC’를 개발 중이다. 치과용 엑스레이 장비업체인 레이의 지분도 인수했다.

모바일디스플레이는 포터블 엑스레이 디텍터를 양산 중이다. 삼성테크윈은 유전자 진단장비와 진단시약 등을 생산하고 있고 삼성전기는 세포집 개발로 맞춤형 항암제를 개발 중이다.

헬스 케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의료 분야는 삼성의료원의 몫이다. 삼성의료원은 바이오 신약 개발을 주도하는 동시에 삼성 SDS와 유전체지도 해독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 SDS는 또 전기 차트 등 의료용 소프트웨어 개발, IT와 의료가 접목된 U헬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보안전문업체인 삼성에스원도 얼마전부터 가정용 의료서비스 부문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긴급 출동’ 개념에 맞춰 응급 의료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심장박동을 정상화시키는 심장자동제세동기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의료기기 매출 10조 목표

삼성그룹이 이처럼 헬스케어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은 지난해 이건희 회장의 복귀가 전화점이 됐다. 이 회장 복귀 이후 그룹은 지난해 5월 친환경 및 건강증진 신사업에 23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거대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엔 차세대 핵심 사업으로 불리는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LED,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분야가 포함됐다. 이를 통해 오는 2020년까지 5개 신사업 매출을 50조원까지 확대하기로 했으며 예상 고용인원도 4만5000명에 이르렀다.

발표 당시 사장단 회의엔 김순택 부회장(신사업추진단당),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장원기 삼성전자 LCD 사업부장, 최지훈 SDI 사장, 김재욱 삼성LED 사장, 김기남 삼성종합기술원 사장, 이종철 삼성의료원 원장, 이상훈 삼성전자 사업지원팀장, 이재용 부사장 등 그룹 내 핵심 인사들이 모두 참여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환경 보전과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녹색산업에 투자하고 있고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은 기업의 사명”이라며 “다른 글로벌 기업들이 머뭇거릴 때 과감하게 투자해서 기회를 선점하고 국가 경제에도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개 분야 중 헬스케어 사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분야는 바이오 제약과 의료기기 분야였다. 바이오 제약 분야는 수년 내 특허 만료되는 바이오시밀러 중심으로 의료원 등과 협력을 통해 추진할 것으로 전해진다. 2020년까지 누적투자액만 2조1000억원이며 매출 1조8000억원, 710명의 고용인원을 예상했다.

의료기기 분야는 혈액검사기 등 체외진단 분야부터 진출하기로 했다. 2020년까지 누적투자액은 1조2000억원, 매출 10조원, 예상 고용인원은 9500명이다.

신사업 투자액 23조원 중 헬스케어 분야는 3조3000억원에 불과하지만 업계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그렇지 않다. 이미 삼성의료원를 비롯 그룹 내 의료 역량은 국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항암 치료와 고가의 의료기기 분야에서도 삼성은 그 터를 닦아놓기 시작한 지 오래다.

그룹 안팎 인적망 활용

여기에 에스원이 원격 의료서비스와 상조업계 진출을 위해 준비해왔다. 에스원 관계자는 “아직 여러 가지 법적 문제로 인해 원격 의료서비스에 제한이 많은 상황이지만 좀 더 시간이 흐르면 대중화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라며 “의료소비자 입장에서도 불편하게 병원까지 가지 않고 건강을 관리할 수 있어 매력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상조업 진출과 관련해선 “정권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인데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에스원이 책임지는 보안 대상이 기업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 인적망을 바탕으로 하면 상조업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있긴 하다”고 말했다.

업계 안팎에선 삼성그룹 내 임직원들만 잠재적인 고객으로 유치해도 당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삼성과 경쟁 관계에 있는 모 그룹 관계자는 “건강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커가고 있어 헬스케어 분야는 미래의 노다지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첨단장비와 의료기술이 바탕이 돼야 하는 만큼 최소한 몇천억의 투자액이 필요한 사업이기도 하다”고 부러움을 표시했다.

순차적인 투자액이지만 3조원이 넘는 액수를 투입할 수 있는 곳도 삼성 외엔 사실상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지난해 신사업추진단장을 맡았던 김순택 부회장이 그룹 내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의 수장이 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이재용 사장도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 회장은 복귀 이후부터 “반도체 등 기존 산업 뿐만 아니라 5년, 10년 뒤를 보고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야 한다”며 신성장 산업에 애착을 가져왔다. 현재의 흐름이라면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적지 않은 부분을 삼성이 책임지는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한편 백혈병 등 삼성반도체 산재 관련 문제를 제기해온 반울림 관계자는 “회사를 위해 목숨까지 희생됐던 직원들의 사인에 관해선 철저하게 함구하거나 소극적이었던 삼성이 헬스 케어 분야에 뛰어든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며 “먼저 진상규명과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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