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고양이




고양이. 참 예쁜 생물체다. 보석마냥 빛 발하는 그 고운 눈이 그러하고, 손가락에 감겨드는 보드라운 털이 그러하고, 낭창낭창하면서도 힘이 서린 곡선이 그러하다. 다소곳하게 모아 앉은 두 발이나 무릎위에서 갸르릉 거리며 휘어진 눈매 같은 것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매력이다.
잠깐 머물다가 무심하게 훌∼자리를 비우는 매정함이나, 더러는 친밀하다 여기던 고양이가 날 보고 털을 세우며 하악질을 하는 모습에도, 밉지가 않다. 미워할 수가 없다.
도도하게 내려다보길 좋아하여 걸음걸음이 귀족부인 마냥 건방진 녀석들. 본디 그런 습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강아지처럼, 내 아는 이라고 꼬리치고 깡충깡충 뛰어 반기진 않으나 내 얼굴 조금 익었다고 경계치 않고 무심하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해버린다.
너 정도는 있으나 없으나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 무심하게 살랑거리는 꼬리가 얄미울 법도 한데, 그 모습마저 예뻐 보이니 나도 참말 중증이다. 아니 오히려 그 무심함이 더욱 사랑스럽다. 뭐야 이건, 하는 그 눈.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다.
나는 동물의 털에 알레르기가 조금 있다. 아주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잠깐이라도 동물을 만지거나 혹은 동물 털이 달린 옷을 입거나하면 하루 종일 목구멍이 까끌까끌하다. 흡사 머리카락이 잔뜩 엉킨 수챗구멍으로 숨을 쉬고 있는 느낌이다. 심지어 이것은 가족력이라 우리 어머니 역시 동물 털을 가까이 하시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도 정작 키울 수는 없다.
그 애틋함 때문인지 나는 길고양이들만 보면 로미오가 되어버린다. 자취생에게는 호사인 참치캔을, 그것도 가장 비싼 동X참치를, 그네들 앞에 따주면서도 아쉬운 기분이 하나 안 든다. 백원 이백원 따져가며 사둔 참치캔이라는 사실은 길고양이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앞에서 그다지 중요한 거리가 못된다.



요즘같이 추운 날에는 길고양이를 보는 맘이 아프다. 온통 검고 더러워진 눈밭이다. 이 가여운 아이들은 어디서 추위를 피하고 있으려나.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닐까? 추워지면 추워질수록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가끔 눈에 띄는 고양이들은 그나마 이웃 주민들의 손을 탄 고양이들이다. 한쪽 귀가 잘려있는 고양이들. 누군가가 고양이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켜준 모양이다(중성화 수술을 시켰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 한쪽 귀의 끝을 잘라 표시한다). 물론 안락사를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뭉텅 잘려있는 귀를 볼 때면 마음이 좋지 않다.
작년 초였나, 친구가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받아왔다. 노란둥이 코리안 숏헤어. 그러니까 길에서 자주 보이는 노란 줄무늬의 고양이를 생각하면 된다.
세상 빛을 본지 채 며칠도 되지 않았던 그 새끼고양이는, 어미에게 버려진 것을 어떤 대학생이 구출해서 인터넷에 분양글을 올렸고 그것을 본 내 친구가 분양 받아 온 것이었다.
꼬물꼬물 손바닥만큼 자그마한 모습이 누가 봐도 탄성을 터트릴 정도로 예쁘고 앙증맞은 외모였다. 울음소리가 마치 방울 소리 같았다. 새끼 때는 다 귀엽다지만, 특히 새끼고양이는 정말로 예쁘다. 홀릴 정도로.
쫄래쫄래 걸어 다니다가 제 무게를 못 이기고 발랑 넘어진다거나, 분유를 먹으면서 허공에 그 솜방망이 같은 발을 휘두르거나, 벗어둔 겉옷 밑으로 들어가서 출구를 못 찾고 미양미양 울 때의 그 천진한 모습들. 그런걸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그 어린 고양이를 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의 모습이 못내 아쉬웠었다. 부러웠다. 멍충이에서 따온 것이긴 하지만, 충아 충아 부르면서 턱을 간질이면 제 아빠를 알아본다는 듯 갸르릉 거리는 모습이.
나도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다. 경제적인 비용은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게 전부라면 나도 벌써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와 어머니는 알레르기가 있고, 우리 가족 중에 고양이를 키우자는 의견에 찬성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이야 자취를 하고 있다지만, 자취생활이 끝나면? 고양이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내가 지켜줄 수 있을까? 그냥 저지르고 볼까 하는 생각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생명 하나를 떠안기엔 너무 미래가 불확실했다. 그래서 그저 부러워만 했다. 좋겠다. 부럽다.



2011년이 되고, 충이는 똥꼬발랄한 고양이로 자랐다. 제법 남자태가 난다. 날씬하니 잘생긴 얼굴이다. 커다란 눈이 세상 오만 것들에게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진다.
그 애의 아빠는 이제 그 똘망똘망 귀여운 녀석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나처럼 가끔 놀러가거나 혹은 특별한 경우에만 고양이를 만질 수 있는 사람들은 절대 짓지 못할 표정이다. 이미 그 귀여움도 일상이 되어 버렸나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 친구에게 갑자기 고향으로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겨버렸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점 관리도 전혀 못한 친구는, 강제적으로 소환되다시피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정말 갑작스런 일이었다. 부모님께는 차마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도 못 꺼내본 모양이다. 친구의 형은, 어차피 품종 있는 고양이도 아닌데 두고 내려오라고 했단다. 부모님 역시 ‘도둑고양이를 집에서 키운다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반응일 것 같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데, 머리가 띵해왔다. 그럼 너 입양 보낼 곳은 알아봤니? 절레절레. 그럼 부모님에게 얘기는 해볼 거야? 얘기는 해보겠지만 잘 될 것 같지가 않단다. 워낙 즉흥적이고 대책 없는 친구라, 충이가 걱정이 된다. 화도 난다.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왜 데려온 거야.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친구도 충분히 복잡한 맘일 텐데, 버럭 화를 내고 돌아와 버렸다.
충이는 추운 게 뭔지 모르고 자란 고양이다. 집밖의 세상은 오직 친구 품안에서 옷깃 사이로 본 것이 전부인 아이다. 그런 아이가 만약, 버려진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수많은 유기묘, 유기견들이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외로움으로 죽는다. 살아남는다고 해도 길고양이의 삶은 고달프다. 한쪽 모퉁이가 잘린 귀처럼 서글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고양이와 개들을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분양받는다. 사정이 있거나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유기묘, 유기견들은 병에 걸리거나 혹은 나이가 들면서 몸집이 커졌다는 이유 등으로 버려진다.



그런 동물들을 보호하는 시설은 대개 사설이며, 그나마 열악해서 돌봐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켜야한다. 상처받은 아이들. 애완동물은 장난감도, 액세서리도 아니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우와 예쁘다, 갖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과연 그 책임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나는 고양이가 너무 좋다. 너무 예쁘다. 그래도 키울 수가 없었다. 자신이 없었다.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굉장한 무게를 지닌 말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예쁘니까,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기르겠다고 하는 것이 행여 그 아이를 버린다거나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아이에게 행복한 일일까. 내 욕심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이 발목을 계속 잡아왔다.
나는 자격이 없어서, 부러워만 했는데, 정말로 자격 없는 사람들이 생각 없이 애완동물을 키우고, 또 버린다. 화가 난다. 내 친구가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화가 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친구가.
인터넷 게시판에 ‘혹시 고양이 키울 수 있으신 분 계세요?’하는 글을 올렸다. 친구가 충이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며 아직 입양을 알아보고 있지 않지만, 부모님을 설득할 자신도 없다는 못난 녀석을 믿고 있을 수는 없다. 댓글이 달렸다.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안타깝다는 내용들. 정말 키우고 싶은데 안 되겠다는 내용들.
예상은 했었지만 입양처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코리안 숏헤어의 성묘를 분양받길 원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새끼도 아니고, 비싼 품종도 아니니까. 한숨이 새나온다.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사실은 충이보다 내 친구가 걱정이 된다. 내 친구가 그런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싫다. 내일은, 친구가 아버지에게 고양이를 데려가겠다고 이야기를 해본다고 한다. 누구 하나 입양에 관심가지는 사람이 없는 지금은, 아무쪼록 그 아이가 말을 잘 해서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으이그, 못난 자슥.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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