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청소년 기자가 만난 이 시대의 고교생들 2회-특성화고 이가영 친구



꿈은 없다. 그저 대학입학과 그를 위한 수능성적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실태다. 기자는 지난해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다. 너무 공부에만 몰두하는 현실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책 한 권 읽을 시간조차 없었던 짧은 고교생활. 고민을 거듭했고, 결국 부모님과 상의해 학교를 자퇴했다. 지금은 많은 책을 읽고, 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나름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친구들과의 만남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들이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어둠의 그림자.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몇주간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학생들의 고충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부디 대학과 성적뿐이 아닌, 자신들의 꿈과 추억 만들기를 위한 학창시절이 되길 기원해보며….

다 알겠지만(아니 하도 많다보니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고등학교의 종류는 여러가지다. 일반계 고등학교 외에도 자율형사립고, 자립형사립고, 외고(외국어 고등학교), 과고(과학계 고등학교)…. 또 예능을 전문으로 배우는 예고(예술계 고등학교), 체육을 전문으로 하는 체고(체육계 고등학교), 또 취업을 전문으로 하는 특성화 고등학교나 실업계 고등학교가 있다. 원래 실업계 고등학교로 통칭되던 것인데 몇 년 전 좀 더 세분화되면서 특성화 고등학교가 생겨나게 되었다.
지난 호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친구가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면 이번 친구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특성화 고등학교 중에서도 꽤 잘나가는 학교 군에 속한다. 졸업시 취업률 99%에다 대학 입학률 또한 꽤 높은 학교 말이다. 바로 동대문구에 위치한 ㅎ고등학교다.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특성화 고등학교’라면 실업계라는, 그래서 다소 좋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것도 사실인데, 과연 그럴까? ㅎ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가영(18세) 양을 만나 그의 생활 얘기를 들어봤다.
ㅎ고등학교는 언어, 수리, 외국어 과목 이외에 선택과목(일반계는 사회, 과학)을 직업관련 과목으로 배운다. 이 역시 세 과목으로 나눠지는데 컨벤션 경영과, 컨벤션 영어과, 국제 전시 경영과가 그것이다.
가영이는 “우리 학교에 들어오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며 “하나는 취업을 하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대학입학을 위한 수능시험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학교 친구들 중에는 이 두가지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이들이 꽤 많단다.
특히 2학년 때부터는 아예 취업반이 따로 있어 관련 스펙을 쌓거나 면접시험 준비를 하고, 때론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기도 한다.



요즘 대부분 사회적 인식은 취직을 하려면 꼭 대학(그것도 명문이라 불리는 꽤 괜찮은)은 졸업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현실은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온다고 해도 취업을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다 보니 오히려 4년제의 그럴싸한 대학을 다니다 중도포기하고 다시 전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많은 게 냉정한 현실인 것이다.
특히 가영이가 다니는 ㅎ고등학교는 그런 면에서 아주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고졸임에도, 모든 대학생들이 꿈꾸는 삼성 같은 대기업에 취업하는 선배들이 굉장히 많다”는 가영이의 설명이 이를 입증해준다.
그렇다면 이 학교에선 여타 고등학교들이 주구장창 밀어붙이는 야자(야간자율학습)등도 할까? 그는 “자율적으로 한다”며 “하고 싶은 사람만 신청해서 하는데 거의 반 이상은 신청한다”고 했다. 또 인문계 고등학교 보다 언어, 수리, 외국어 수업이 적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있는 가영이는 학교에 대한 불만은 별로 없는 듯 보였다. 그는 “장학금 제도가 빵빵해서 1학년 때 거의 전교생 대부분이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닐 정도”라며 “방학 때는 ‘보충수업’도 듣는데 한 과목당 2000원 밖에 하지 않는다”고 했다. 보통 인문계는 2~3과목을 합쳐 최소 10만원 정도씩은 하는데 정말 놀라운 일. 이렇게 싼 가격으로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해주는데 누가 비싼 사교육을 받으러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보충수업과 방과후 수업만 제대로 들어도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학교에도 단점은 있는 법. 그는 “부수과목(컨벤션 경영과, 컨벤션 영어과 등)이 중학교 때는 전혀 배우지 않던 거라 단어도 생소하고 어렵다”며 “배우는데 ‘회계’  ‘분계’  ‘산업경제’ 등 학생들이 생활에서 듣지도 쓰지도 않는 단어들이 많아 처음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됐다”고 했다.
그럼 이런 과목들은 어떻게 공부를 하는 걸까? 그는 “대부분 학교 수업시간에 최대한 충실히 임하고, 극히 일부를 제하곤 모두 교과서만 갖고 공부를 한다”고 했다. 이어 “내신은 교과서를 위주로 공부하지만, 수능시험은 모의고사 문제집을 사서 문제를 최대한 많이 접해보는 방식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ㅎ여고의 학급당 학생 수는 약 25명 정도. 가영이가 입학하던 작년엔 중학교 내신을 기준으로 한 커트라인이 16%였는데 올해는 12%까지 올랐단다. 그는 “학생 수가 적고, 또 어느 정도 상위권의 실력을 지닌 아이들과 경쟁을 하다 보니 내신성적 잘 받기가 힘들다”고 했다.
마지막 고민 한 가지. 그는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특성화’라고 하면 사람들 인식이 좋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원래 우리 학교도 실업계였다가 특성화로 바뀌었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실업계로 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하지만 졸업하는 언니들이 취업도 잘하고, 대학도 잘 가서 요즘엔 인식이 많이 좋아진 편”이라고 했다.
가영이는 지금 다니는 학교가 오히려 일반계고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그는 “단, 대학을 특별전형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성적이 좋은 아이들도 약간은 느슨하게 공부하는 게 단점”이라며 “다니면서 열심히만 한다면 일반계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가영이의 평소 생활은 어떨까. 집과는 먼 거리에 위치한 학교. 교통편도 복잡해 버스도 몇 번이나 갈아타야 된다. 때문에 그는 약 40분가량을 그냥 걸어서 등하교한다. 시간을 많이 뺏기지만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는 여고생에게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는 시간은 아침 7시 50분. 학교생활은 밤 10시까지 이어진다. 정규 수업을 듣고, 이어 방과 후 수업을 듣는다. 방과 후 수업은 수업시간에 놓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어서 정규 수업 다음으로 중요하단다.
방과 후 수업이 끝나면 야자시간이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집중적으로 수업을 들은 터라 야자시간이 되면 대부분 머리도, 몸도 지친 상태. 처음 고등학교에 들어왔을 땐 다들 기나긴 야자시간이 야속하기만 했단다.
2∼3주가 지나면 조금씩 적응을 해나간다. 그리고 하나에 몇 만원씩 하는 책과 문제집을 쌓아놓고 공부를 시작한다. 몇몇 아이들은 PMP로 인터넷강의를 듣기도 한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제 공부도 ‘디지털 시대’다. 그는 “요즘 전자사전 없는 애들이 거의 없을 정도”라며 “반 아이들 중 40~50%는 대부분 PMP를 갖고 있다”고 했다.
밤 10시 야자가 끝나면 어두운 길을 걸어 집으로 향한다. 그는 “집에 가면 시계바늘이 보통 11시를 가리키고 있고, 씻고 정리하다보면 12시가 넘는다”라고 했다.
총 정리를 해보자면 아침에 일어나 준비하는 1시간, 밤에 씻고 정리하는데 1시간, 사생활은 하루에 그 2시간 밖에 없는 셈이다. 그는 “이젠 익숙해졌다”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2학년에 올라가면 새벽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거란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집에서도 공부를 해야 되는 건 필수. 자정부터 약 2시간가량 공부를 더 할 계획이다. 그럼 잠은 몇 시간 자느냐고? 한국 고등학생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3∼4시간, 기껏해야 4∼5시간쯤 될 것이다. 3년, 최소한 2년간은 이런 생활의 반복인 셈이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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