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스마트폰



서울대학교로 가려면 이쪽으로 가는 거 맞나요.
에스컬레이터 앞에 서 계신 아주머니께서 물어 오신다.
서울대학교요? 잠시만요.
핸드폰을 꺼내 노선도를 검색한다.
아 네, 이리로 가시면 돼요. 고마워요 학생.
아주머니는 화살표를 따라 총총 사라지신다.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고마우실 것까지야. 에스컬레이터는 길고, 또 느리다. 몇몇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간다(위험하니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지 맙시다^^;;). 나야 뭐 그리 바쁠 것도 없으니 답답할 것도 없다. 다만 멍청하게 서있는 이 잠깐의 시간이 심심할 뿐이다. 휴학생다운 심심함.
아까 꺼내든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뒤적뒤적 해본다. 도서관에 좌석이 얼마나 남아있나, 전에 신청한 신간도서는 도착했나, 오늘 밤 기온은 또 어떨는지.
스마트폰은 일반 핸드폰 보다 배터리가 빨리 방전된다. 물론 소모되는 전력량 자체도 많을 테지만, 이렇게 하루 종일 손에서 놓을 줄 모르고 뒤적뒤적 거리는데 빨리 닳지 않고 배기겠는가 말이다. 여분의 배터리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정말 필수적이다. 혹 여분 배터리를 가져오지 않거나 하는 날엔 조금 아득하다. 이 녀석 없이 어떻게 생활을 해왔던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당장 아까 전만해도 핸드폰이 없었다면, 아주머니의 질문에 대답해드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타고난 방향치다. 길 설명 같은 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대답은커녕, 오히려 내가 물어봐야 할 일이다. 회기역으로 가려면 이쪽으로 가는 것 맞나요.



스마트폰 유저. HTC의 넥서스 원이라는 모델을 구입했었던 것이 작년 시월인가, 더 일찍 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여튼 작년 말쯤이었던 것 같다. 유일한 레퍼런스 폰이고, 소프트웨어가 진저브레드(당시 최신ㅋ)였으며, 디자인도 얄상하니 맘에 들었던 데다가, 무엇보다 갤럭시나 아이폰보다는 희소하다는 점이 끌려 갤럭시를 사러갔다가 충동적으로 구매한 모델이다.
하지만 뭐랄까, 남들이 많이 사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해야 하나. 기기 자체가 그다지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은 아니다. 구매 후 삼일 만에 본체 발열과 터치 조작문제로 새 기기로 교환을 받았다. 새로 받은 기기도 그닥 나을 것이 없었다.
후에 알아보니 터치 문제는 넥서스 원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한다. 사전에 미리 잘 알아보지 않고 구매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기계를 만지는 것에 그다지 거부감이 없는 편이라, 모델의 문제도 대개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으로 커버해가며 잘 사용해왔다.
그렇게 해가 가고, 그 짧은 시간 안에 나에게 스마트 폰은 꽤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침에 깨우는 것부터, 오락, 음악감상, 길 찾기, 영화 예매, 가까운 카페 검색, 도서관 좌석 조회, 은행 업무, 택배 조회, 단어공부, 강의, 사전, 판례검색, 법전, 뉴스, 미니홈피, 문자 메시지, 소셜 커머스가 제공하는 다양한 쿠폰들까지. 내 스마트폰 모델의 기기적 단점들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무궁무진한 세계였다. 그렇게 나 역시 지하철에서 흔히 보이는, 스마트폰만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중, 핸드폰의 전원 버튼이 조금씩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세번 시도하면 한번쯤은 작동이 안 되는 등 조금 말썽이다 싶다가, 조금 더 지나니 한 다섯 번 시도해야 한번 될까 말까 해졌다. 결국 근래에는 아주 전원이 들어오질 않아서 한번 완전히 꺼지고(기기 종료) 나면 켤 방도가 없어지는 지경까지 오고 말았다.



조금씩 말썽을 부리기 시작할 때부터, 아 언제 한번 AS보내야 하는데, 하는데 생각은 해왔지만 이게 또 한 번 보내고 나면 당장 수리되어 돌아올 때까지는 일반 임대폰을 써야한다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져 선뜻 AS를 맡길 수가 없었다.
전원 버튼이 고장이라곤 하지만, 그 고장 난 부분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전원 어플리케이션으로 대용해서 사용이 가능하니(전원 버튼이 고장 나면 버튼을 눌러 기기를 켜거나 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핸드폰을 흔들어서 켜고 끄는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된다) 자꾸 미루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기기를 종료시키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끝내 자는 도중에 배터리가 방전되어 전원이 완전히 나가버리고 말았다. 전원버튼이 고장이니 다시 켤 방도가 없다. 이건 그냥 벽돌이나 다름없다. 깜깜한 액정을 보고 있자니 입이 쓰다.
대리점을 통해 AS를 맡겼다. 짧아도 5일, 길면 2주까지 소요될 수 있다고 한다. HTC의 AS를 비난하며 임대폰을 받아왔다. 전혀 스마트 하지 않은 2008년도 유행 모델이다. 안스마트폰을 뒤적거려 봐도, 뭐 건질 것이 없다. 답답하다. 전화하기, 문자 메시지 보내기, 화질 나쁜 카메라와 뭐 계산기 정도? 단순한 기능이다. 뒤적거려 봐도 할 것이 없어서 문자 메시지나 써서 전송을 누른다. 다시 입이 쓰다.
[핸드폰 수리 맡겼어.] 아무리 문자 메시지를 많이 보내도 무료거나, 데이터요금이 조금 든다고 해도 미미한 수준인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에 익숙해져서 문자 메시지의 과금이 아쉬운 기분이다.
[카카오톡(메신저 어플리케이션)은 어쩌고 문자메시지?] [아∼나 임대폰 너무 훌륭한 것 받아서 카카오톡 못한다.]
집에 돌아와서 책을 보는데, 법전이 없다. 책장에서 시험용 법전을 꺼내면서 구시렁구시렁 거렸다. 책에 또 판례 하나가 짧게 인용되어 있는데 너무 일부분만 발췌해놓아서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간다. 전문을 보려고 했는데 판례집이 없다. 성질이 난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성질나면 듣던 mp3도 없다. 우쒸 도서관 갈까? 그러고 보니 도서관 좌석 조회도 안 된다. 무슨 핸드폰 하나 없어졌는데, 이렇게 뭐 하려고만 하면 턱턱 막히는 건지. 뭔가 의존하는 것은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구나, 깨닫는다.  



고등학생 때였나 아니면 더 어릴 때였나, 강당에서 어떤 교수님이 강의를 하셨는데,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 알고 있는 것과 그저 검색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인터넷이 대중화 되고 생활 깊숙한 곳에 자리 잡게 되면서, 더 이상의 지식 축적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도 왕왕 있을 때다(물론 그 논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그 교수님의 이야기를 꽤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검색해서 나오는 것들을 외우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말이라는 주장은 나에게 꽤 매력적인 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마치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였다.
이제는 ‘무엇’ 보다는 ‘어떻게’가 더 중요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공부는 시대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거지같은 암기식 교육. 사실, 나는 그냥 공부하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이젠 안 외워도 된다, 하는 듯한 말이 굉장히 달갑게 느껴졌으니까.
그러던 중 그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다. 지식을 쌓는 것은 중요하다, 그 말에 어쩐지 삐뚤한 기분으로, ‘저 아저씨가 뭐래. 또 공부하라는 말 아녀?’하고 속으로 꿍시렁거렸다. 말씀은 계속 이어졌다. 지식을 구하고,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이 점점 경시되면서 지식 없는 지식인들만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면서 “고백하건대 나 역시 지금 내 지식은 아니지만 검색만 하면 다 나온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생각하면서 사는 것 같다. 하지만 무언가에 의존한다는 것은 분명 온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그 교수님의 솔직한 말씀에 내 유치한 생각들이 부끄러웠었다.



무언가에 의존하는 것은, 분명 편리하다. 특히 그 ‘무언가’가 점점 간편해지면서 뭔가 시간을 들여 혼자 해내는 것보다 더 효율적일 때가 많아지고 있다.
직접 가서 도서관 좌석을 확인하는 것은 때로 몇십분이 넘는 거리를 헛걸음 하게 만들고, 판례 번호만 쪼로록 쳐서 검색 버튼만 누르면 바로 요지가 뜨는 어플에 비해서 판례집이나 헌법 재판소 홈페이지는 쓸데없이 번잡하다.
그렇지만, 어떤 것에 시간을 들이고, 또 혼자서 무언가를 해내는 것은 그 자체로도 꽤 의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언가에 의존한다는 것은, 아무리 효율적인 일이라고 해도,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의존 없이 혼자서는 불가능해질 가능성을 내재한다. 핸드폰 하나로 쩔쩔 매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온전치 못하다.
앞으로 기술이 더욱 발전한다면, 정말로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올 지도 모른다. 영화 같은 데에서 가끔 묘사되는 뚱뚱한 인류들. 우, 무서운 일이다.
핸드폰은 생각보다 일찍 수리되어 돌아왔다. 약 4일 정도 걸린 것 같다. 다시 돌아온 폰, 신이 났다. 다시 뭔가 가득가득한 느낌이다. 첨단은 역시 편리하다. 그렇지만 또한, 너무 의존하지는 말아야겠다. 첨단은 편리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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