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광진구 노룬산 골목시장



광진구 자양동(전 노유동)에 위치한 노룬산 골목시장은 그 이름이 독특해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노룬산은 누런산에서 유래했다. 과거 뚝섬제방이 없을 때 이 일대는 야트막한 구릉의 잔디밭이었다. 가을철이 되면 잔디가 누렇게 물들기 때문에 ‘누런 잔디산’이라 불렸고, 그 명칭이 줄어 누런산이라고 하다가 노룬산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는 노유동의 발생 기원이기도 하다. 노유동 뚝섬나루터 일대와 한강의 풍치를 즐기려는 풍류객들이 찾아와 자신들의 늙어가는 처지를 서러워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곳이라 해 노유산(老遊山)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오고가는 곳이어서인지 노룬산 시장은 여느 재래시장보다 그 규모가 크다. 자양동 고가도로 바로 밑에 시장 간판이 있다 보니 자칫 그냥 지나치기 일쑤지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시장이기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시장 초입부터 손님들이 파리떼처럼 북적거렸다.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분식점의 떡볶이, 떡갈비, 어묵, 파전 등은 주로 술안주로 쓰인다. 떡갈비는 다른 시장에서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했다.  
“실전 경험도 쌓을 겸 맛있는 집이라면 이곳저곳 전부 다니며 맛의 비결을 꼼꼼히 확인했죠. 떡갈비 가게는 이제 1년쯤 됐습니다만, 다른 것도 개발해보려고요. 쇠고기전이라든지, 야채떡갈비 등 육류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시장 내 고령의 상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들 부담이 없어요. 주머니에 3000원만 있으면 소주 한 병에 밑반찬으로 제공되는 반찬들이 깔리니 주로 주변에서 근무하는 상인들이 자주 찾아요.”
서서 먹는 사람도 있고 좁은 식탁에 앉아서 먹는 사람도 있다. 상인들의 하소연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사람들은 할인마트가 삶에서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재래시장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재래시장이 있는 지역에 할인마트가 들어서려고 하면 많은 상인들이 장사까지 쉬면서 강력히 반대 운동을 하잖아요. 그러면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할 게 아닙니까. 당분간 갈등은 계속 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두고 보라지, 우리도 싸울 겁니다. 청와대를 직접 찾아가든지 어쩌든지 무슨 수를 내야지….”





건어물 가게 주인도 목청을 높였다.
“세월이 갈수록 젊은 사람들은 시장에서 멀어지니 미래가 불투명해요. 앞으로의 세상은 젊은 사람들 것인데, 그들이 시장에 와서 건어물도 찾고 해야 하는데…. 매번 환갑 다 된 어른들만 오니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요즘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물건들을 이쁘게 포장해서 팔고 하잖아요. 그러니 특히나 잘 안먹히는 건어물 같은 경우, 비린내 나는 시장에서 살 리 만무하지. 큰일이야 큰일. 건어물을 상품화시키는 방법 밖에 없는데 딱히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없네요.”
주인아저씨는 자녀들에게 조언을 구해보기도 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서지 않는다고 한다.
“대학교에 다니는 젊은 애들한테 ‘너네들 같으면 장사를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도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별 반응이 없어요. 너무 힘든 질문은 하지 마시라고 대답하곤 말죠. 애들이 건어물도 못 먹던 시절을 안 겪어봐서 그런지 원….”
한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싱싱한 횟감 오징어가 활개를 치고 있는 횟집이 보인다. 횟집 주인아저씨는 오징어를 잘게 채 썬 뒤 찬물에 한번 헹군 다음 접시에 올리느라 분주하다.
“봄철 회 한 접시씩 먹어주는 게 건강에도 좋지 않겠어요. 낮술이든 밤술이든 회 안주가 다음날 뒤끝도 없고 해독도 잘되니 좋잖아요. 날이 좋아 그런지 손님도 많이 찾습니다. 젊은 사람들이야 방사능 때문에 안 찾지만, 여긴 나이든 분들이 많아서 손님이 특별히 줄어들지는 않았어요.”



광어회는 대(大)자가 한 접시에 2만원이다. 일반 가게보다 1만원 가량 저렴한 가격대다.
“가장 무난한 게 광어잖아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광어회를 가장 많이 찾습니다. 술도 없이 그냥 회만 먹고 가는 손님들도 많이 늘었어요. 회덮밥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제발 방사능 얘기는 기사에 넣지 마세요.”
주인아저씨는 여름철에 장사가 가장 잘 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도 잘 되는 편이어서 흡족한 표정이다.
“전어철 넘기고 겨울이 다가올 때 횟집들이 가장 힘들어요. 회보다는 탕을 먹으러 많이들 가죠. 그래서 여름에 바짝 팔거든요. 지금 봄인데도 이 정도 매출이면, 출발이 좋다고 봐야 합니다. 방사능 때문에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그나마 잘 되는 편입니다. 어쨌든 이 시기 바짝 팔아야 합니다.”
인근의 반찬 가게도 눈에 띄게 손님이 많다. 정갈하게 만들어진 반찬들이 즐비하다. 시간에 쫓기는 맞벌이 주부들을 위해서 된장국이나 육개장 등의 국거리도 판매하고 있다. ‘다른 시장과 차별화 된 서비스’라는 문구가 보인다.
입체 메뉴판 등 독특하게 보이는 주문서는 세심한 고객 배려 정신이 담겨있는 듯하다. 가정식 반찬뿐만 아니라, 엄마의 손을 잡고 오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떡볶이와 어묵 등도 한쪽에서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다.




반면 장사하기 힘들다며 한숨을 쉬는 가게 주인들도 보였다. 야채가게 주인은 매출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주인은 예전 같으면 하루에 30~40명 정도 손님이 왔는데 요새는 하루 10명도 채 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예전엔 감자나 고구마를 박스 채 사가는 손님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불황이다 보니 세트 같은 물건은 장만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다들 1000원, 2000원 어치 사가요. 박스로 따지면 작년 가격대랑 비슷한데도 사가지를 않아요. 매출이 60% 정도 줄었다고 봐야죠.”
아예 문을 닫은 몇몇 가게도 눈에 띈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서 일어나는 현상이죠.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쉬는 날이 많아졌어요. 주로 가전제품이나 의류, 잡화 등을 파는 가게들이죠. 대형마트에 가서 사는 경향이 있잖아요. 보통 이런 시장은 먹을거리 장사죠. 식당이나 우리 같은 야채나 과일가게들은 그나마 꾸준히 찾는 단골들이 있으니 견디는 것이죠.”
인근 의류가게 아주머니는 “곧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며 혀를 찼다. 봄철 새 옷을 장만하는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다.



“겨울 시즌 이후 상품들의 단가가 떨어졌고, 지난해 이맘때 비해서도 3분의 1로 줄어든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은 명동이나 남대문에서 많이들 사니 당연히 이런 곳은 한산할 수밖에 없죠. 원자재값이 오르면서 기본적으로 단가가 오른 것도 문제지만, 손님들이 없으니 계속 적자를 봅니다. 가게 월세도 빚내서 내고 있어요.”
노룬산 시장에선 이처럼 상인들의 다양한 표정들을 읽을 수 있다. 아무리 장사가 잘 되고 이름난 시장이라도 규모가 큰 만큼 불만도 섞여 나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여타 재래시장에 비해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노룬산 시장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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