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친구와 오랜만의 재회



그제는 오랜만에 시립도서관에 들렀다가 친한 친구, 아니 친했‘었던’ 친구와 우연히 재회하게 되었다. 그녀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쭉 같은 학교였고, 더군다나 고등학교 땐 3년 내도록 같은 반이었다. 그렇게 죽고 못 살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지만 누적된 시간만 해도 10년이 넘어가다 보니 서로를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함께인 것을 당연시 여길 정도로 꽤 친밀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냥 그런 것이었다. 달리 나와 친한 아이인가 하고 따로 고심한 적은 없었다. 어느새 그녀는 나와 도시락을 함께 먹는 친구 무리에 속해있었고, 또 귀가를 함께하는 친구가 되어 있었고, 내 가장 친한 친구와도 ‘친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마치 그것은 그녀의 별명인 ‘고구마’를 이름 대신 부르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녀의 별명이 ‘고구마’가 된 연유 같은 것은 모른다. 그녀가 ‘고구마’가 되기까지는 처음 누군가가 그녀를 가리키며 ‘고구마’를 언급하고, 또 그것이 놀림감이 되다가, 결국에는 본인도 마치 그것을 이름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들을 겪었을 것이다. 그런 시간들을 내가 ‘친한 친구’로서 함께했다면 그 이유를 모를 리 없을 테니, 난 분명 그 아이와 처음부터 친했던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난다. 보통의 친하지 않은 사이들이 그렇듯, 처음엔 나도 별명이 아니라 그녀의 이름 석 자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문득 돌이켜 봤을 때 나는 아주 당연하게도 그녀를 ‘고구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와 그 아이의 관계는 아주 느적느적하게 변화하여, 대체 언제부터 내가 그녀를 별명으로 부르고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였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나는 고구마와 다시 멀어졌다. 딱히 고구마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친구들과도 소원해졌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들 자신의 진학문제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팠고, 나 역시 친구들과의 시간에 예전처럼 정신과 시간을 쏟을 수가 없었다. 누구든지 그러했기 때문에 외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3이니까.
다들, 열심히 책을 봤다. 나도, 고구마도, 그리고 나의 다른 친구들도. 거의 다 마른 빨래를 쥐어짜는 모양새로 다들 아등바등한 시간이었다. 대체 왜 절박해야하는지 이유조차도 실감하지 못 한 채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특히, 고구마는 다시없을 정도로 성실한 친구였다. 정말로, 우리 학교의 그 누구라 해도 이 친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거다. 고구마는,  ‘교과서 위주’로 ‘예습과 복습’을 하고, 사교육 대신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는, ‘전형적’일 정도로 바르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난 이 친구가 쉬는 시간에 책상을 벗어나 친구들과 잡담을 한다거나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렇듯 열심히 하는 친구에겐 으레, ‘공부 많이 했니?’ 따위의 말로 견제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인데, 그녀에겐 그런 친구들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친구들이 그녀를 딱히 여겼다. 전교 1등조차도 그녀의 공부 량을 따라가기 힘들진대, 그녀의 성적은 중위권을 맴돌고 있는 탓이었다.
신앙심도 투철하여 매사에 반듯한 고구마는, 성실함이 빛을 발하지 못한 지난 시간들을 한 번도 남 앞에서 탓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것이 만약 종교의 힘인 것이라면, 종교라는 것은 정말로 위대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믿는 종교가 없는 내게 신앙의 경이로움을 실감하게 해준 것은 아마 그녀가 유일할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페이스를 잃지 않고 쭉 공부했다. 흔들리지 않고 고요하게 책상 앞을 지키는 것. 그것이 어떠한 성과도 내놓지 않고 있을 때조차 고요함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정말로 그녀가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 걱정할 여유가 없는 고등학교 삼학년. 근성이 착하지 못한 나인지라 그 생각은 얼마 못가 흐려지긴 했지만. 내 코가 석자 아닌가. 그런 식으로 힘든 시간은 느리게, 하지만 빠르게 흘렀다.
그렇게 수능을 치렀다. 이 한 번의 전쟁을 위해서 우리는 몇 년 동안 칼을 갈았던가. 수십 수백 수천 번 연습했던 것들이 몇 시간 만에 스러졌다. 허탈감이 배인 후련함으로, 나와 내 친구들의 고교 생활은 종지부를 찍었다.



모두들 뿔뿔이 흩어졌다. 목표한 대학에 진학한 친구도 있었고, 목표치를 낮춰야 했던 친구도 있었으며, 한 번 더 도전해 보겠노라 자취를 감춘 친구도 있었다.
나도, 고구마도 현역으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비록 목표한 대학은 아니었지만, 08학번 신입생이라는 그 햇병아리 같은 뉘앙스에 마냥 설레었다. 지금까지 고생한 시간들이 캠퍼스 생활이라는 이름의 보상으로 화하여 내게 내려와 줄 것일까. 대학가면 저절로 살도 빠지고 얼굴도 예뻐지고 남자친구도 생긴다던데.
뭐 그런 모든 것들은 ‘저절로’가 아닌 것으로 판명 났지만. 그렇게 몇 년을, 각자 다른 지역에서 각자 다른 생활을 하면서 연락조차 없이 지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도록 같이 묶여 있었던 친구지만, 나에게 그녀의 존재감은 연락도 없이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 할 정도로 옅었던 모양이다.
나처럼 어디서 재미지게 잘 살고 있겠지. 나 같이 이기적이고 남 생각할 줄 모르는 애마저도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끔 만든 아이였으니까 뭐가 돼도 되었겠지. 초중고 시절을 떠올린다면 그녀가 빠질 순 없겠지만, 대학생의 나날은 매일이 새로워서 나는 그 아이가 궁금하지도 아쉽지도 않았다.
즐거운 나날이었다. 그리고 즐거운 시간은 정말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파릇파릇한 신입생 소리 듣던 내가 어느새 3학년이 되고, 어디 가서 ‘고학번이시죠?’ 따위의 우중충한 말이나 듣게 되고, 이젠 그냥 방구석에 쳐 박힌 폐인 같은 몰골. 거참 정말로 시간 참 빠르다.
고구마를 3년 만에 다시 마주친 도서관 휴게실에서, 나는 나에게 알은 체를 하는 저 여자가 누군지 잠시 머리를 굴려야 했다. “어 신자!” 나를 신자라 부르는 걸 보면 나와 꽤 친한 사이인 것 같은데.
질끈 묶은 머리에, 화장기 전혀 없는 얼굴, 뿔테 안경 밑으로 번진 파리한 눈가. 게다가 나보다 한참 작은 키 때문인지 더더욱 알아보기 힘들었다. “어어 그래 오랜만이야.” 습관적으로 대꾸를 하면서, 나는 그 아이가 고구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랜만에 만난 이 친구는, 정말 많이 해쓱해져 있었다. 마른 고구마. 음. 그 모습이 한눈에 봐도 건강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라, 나는 너무나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많이 예뻐졌다.” “아, 그래? 고마워. 하하하.”
안면 근육이 원래 이렇게 뻣뻣한 것들이었나. 하하하라니, 어색함의 극치다. 나는 고구마에게 아무것도 묻질 못했다.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요즘 뭐하고 지내는 거니…. 묻고 싶은 건 꽤 되었지만.
뭔가 우물쭈물 하고 서있으니까, 그를 눈치 챈 건지 고구마는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면서 웃는다. 쪼르륵한 이가 딱 그녀 심성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 병원 다녀. 그래서 전에 다니던 학교는 그만 뒀어.”
그렇게 밝게 웃으면서 할 말은 아니지 않아? 대사와 표정이 너무나 따로 노는 고구마에게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몰라서 멍청이 같이 아, 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이어진다.
“그래도 이젠 좀 많이 나아져서 여기 동네 대학 다시 입학했어. 지금 시험기간이라 정신없네. 병원 다니랴 시험 공부하랴.”
그녀의 성적에 한참 못 미치는 전문대학이다. 그녀가 얼마나 힘든 고교시절을 보냈었는지 알고 있기에, 그런 말을 하면서도 웃고 있는 고구마를 보는 것이 마음 편치 못했다.



잘 모르겠다. 대체 저 아이가 뭘 잘못한 게 있다고 저렇게까지 가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 고구마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참동안 그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나 같은 것은 정말로 운이 좋은 거라고 해야 하나, 참 순탄하게 살아왔구나 싶었다. 수험생 스트레스 한번 제대로 겪은 적 없이 희희낙락 대학교 입학해, 다니면서도 남들 다 한다는 스펙 걱정 혼자 무시하며 망아지처럼 잘 놀았지, 그래 놓고 이젠 공부 좀 해볼까 하며 폼이나 재고 있는 꼬락서니라니.
내가 만약, 그만큼 좌절 했다면, 과연 견딜 수 있었을까. 글쎄. 자신 없다. 고구마는 늘 나 자신을 반성하게끔 만들어주는 거울 같은 친구다. 바르디 발라 뭐하나 지적할 것도 없는, 어떤 일이 있어도 씩씩하게 웃는 그런 아이. 그 큰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실상 그녀에겐 늘 매섭기 짝이 없는데도, 생긋 웃으면서 ‘언제나 감사하다’고 하는 아이.
나는 종교도 신앙도 없는 사람이지만, 언젠가 이런 문구를 읽은 적 있다.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만, ‘하느님은 중요한 일을 맡길 사람에게 시련을 주신다’ 대충 이러한 내용의 글귀였다.
고구마가 지난 몇 년간 겪었을 시련들을 상상해보면서, 나는 정말로 하늘이 그녀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정말 종교 따위는 평생 믿지 않으리라. 그만큼 진심으로, 그 아이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고구마를 보아오신 우리 어머니는, 늘 ‘그 아이는 뭐가 되어도 될 것이다’하곤 하셨다. 자기 딸보다 고구마를 더 믿는 어머니가 못내 불만이었지만, 나도, 어머니의 말에 십분 동의한다. 고구마는, 정말 뭐가 되어도 될 아이다. 고구마, 너는 참 빛다운 아이다. 왜 이런 불행이 나에게만 닥치는 걸까 같은 생각은 행여나 가지지 말고, 너에게 큰 성장이 될 오늘을 너답게 잘 이겨내길 바라.
빨리 건강도 회복하고 새롭게 시작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언젠가 네 힘든 오늘들을 다 보상받을 날이 올 거다. 힘내. 나도, 언제나 열심히 할게. 네게 비춰 부끄럽지 않도록.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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