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김진숙과 ‘85호 크레인’-3회 / 시인 송경동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다.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벌써 3개월여 전이지만 난 이 글을 쓸 수 없었다. 함부로 쓰기엔 너무도 비극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십여일 전부터는 매일 자리에 앉아 보았지만 단 한 자도 쓸 수 없었다.

그런 중간에도 나는 다시 네 편의 추도시를 쓰고, 읽어야 했다. 쌍용차 무급자인 임무창 씨의 추도시였고, 23년 전에 신흥정밀에서 분신해 간 박영진에 대한 추도시였다. 삼성전자에서 죽어간 반도체 노동자 황유미와 마흔 여섯 분에 대한 추도시였고, 며칠 전 다시 쌍용자동차 노동자 열네 분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였다.

그런데 마지막 네 번째 추도시를 읽어가던 도중 나는 참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나 아닌 누군가가 내 안으로 전이되어 와 내 대신 시를 읽으며 울고 있는 거였다. 난 이상한 전율에 휩싸인 채 그 이를 대신해 울부짖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사람이었다. 비로소 나는 이 이야기를 쓸 수 있으리라 했다.

이 이야기는 1975년 이후 부산에 있는 한 조선소(대한조선공사, 현 한진중공업)를 둘러싸고 벌어진 어떤 사람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다. 아니 그 이전부터 그 조선소에서 일해왔던 사람들 이야기다. 아니 이것은 우리 시대 어떤 난장이들의 서럽디 서러운 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며, 당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모든 이들의 운명과 관계된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섯인데, 안타깝게도 넷은 죽고, 한 명만이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이는 지금 그중 한 명이 올라가 목을 맸던 가파른 크레인 위에 올라 있다. 벌써 150일이 지났다. 얼마 전 추도시를 읽을 때 내 안에서, 나대신 함부로 내 글을 뺏어 읽던 이. 김진숙이다. (위클리서울은 송경동 시인의 특별 기고문을 3회에 걸쳐 게재하고 있다. 그 마지막 회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85호 크레인에서 6일 현재 152일째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제7회 박종철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시 85호 크레인, 김진숙

그리곤 2011년 1월 6일. 새벽 3시. 한 여성노동자가 혼자 김주익의 영혼이 아직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85호 크레인의 차가운 난간을 붙잡고 올랐다. 사측이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하기 전날이었다. 8년 전 김주익과 곽재규가 죽음으로써 지킨 민주노조와 조합원들의 생존권이 모두 산산조각 나고 있는 때였다. 마지막 살아남은 자. 김진숙이었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방에 불을 때지 않고 살았다. 85호 크레인에서 혼자 추위와 외로움에 떨다 죽어간 김주익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왠일인지 지난 1월 5일 저녁, 함께 살던 후배 황이라에게 굳이 밥을 같이 먹자하고, 8년여 동안 가지 않던 목욕탕을 다녀오더라 한다.

이틀 전엔 비로소 8년 동안 불을 때지 않던 방에 보일러를 켰었다고 한다. 그렇게 목욕재개를 하고 밤늦게 나간 그가 새벽에 문자를 보내왔다. ‘놀라지 말고 책상 위 편지를 봐라’라는 문자였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85호 크레인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에’,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번민했다’고 한다. 도대체 그 번민이 어떤 의미일까.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생각할 수도 없다.

그는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자신만은 ‘주익 씨가 못해 봤던 일,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했던, 내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일을 꼭 할 겁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 85호 크레인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더 이상 눈물이 아니라, 더 이상 한과 애끓는 슬픔이 아니라 승리와 부활’의 자리가 되도록 ‘아직도 85호 크레인 주위를 맴돌고 있을 주익씨의 영혼을 안고 반드시 살아서 내려가겠다’고 한다.

사람들이 염려하지 않게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던 크레인 위에서 오히려 ‘공기 좋고, 전망 직이고, 젤 좋은 게 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다 알루 보입니다. 방이 좀 작아서 그렇지 발코니도 널찍해요. 봄이 오면 텃밭을 가꿔서 가을에 걷어 먹을 생각’이라고 눙을 친다.

‘아직 수맥 찾는 법을 몰라’, ‘양치질은 짝수 날만’ 하고, ‘세수는 윤석범 동지 장가가는 날은 꼭 한다’라고 한다. ‘35m 크레인 위에서 군고구마 먹어 본 사람’ 있냐고 골린다. 징역살 땐 하루에 4520원 밖에 안쳐주더니, 오늘부터는 하루 손배 100만원짜리 인간이 되었다고, 이제야 제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다고 신나 한다.

올라와 보니 ‘동지들이 많이 모인 날은 삶 쪽으로, 동지들이 안 모이는 날은 죽음 쪽으로 위태롭게 기우뚱거리며’ 129일을 버티던 김주익의 마음이 이해된다고, 김주익을 죽인 건, 어쩌면 나였다고 쓰기도 한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처럼 모두가 개별화되어 서럽게 죽지는 말자고 한다.

‘산 자와 죽은 자는 저들이 갈라놓은 이간질일 뿐’이라고 한다. ‘우린 어제도 하나였고, 오늘도 하나’라고, ‘우리 단결이라는 방탄조끼’를 입고 끝까지 단결해서 꼭 승리하자고 한다.

한진중공업엔 우리들만 다닌 게 아니라고 한다. ‘평생을 새벽밥하며 남편 출근하는 동안에도 한시도 맘놓지 못했던 아내들도 다녔고, 아빠 돌아올 시간만 목 빠지게 기다리다 아빠 얼굴 그리며 잠들던 우리 아이들도 다녔고, 노심초사 아들내미 사위 걱정에 한시도 편할 날 없던 우리 부모님들도’ 다녔던 공장이라고 한다.

도대체 수십년간 ‘일요일 날에도 특근 나가던’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우리가 어떻게 경영을 어렵게 했냐고 한다. ‘지 마누라, 지 새끼 옆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던 저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회사를 어렵게 만들었’냐고 한다.

자신은 ‘예준이가 두 돌이 되는 것도 이 공장에서 보고, 민석이가 세 돌이 되는 것도 이 공장에서 보고, 유주가 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다림이가 중학생이 되는 것도, 현서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도 이 공장에서’ 지켜볼 거라며 우리 모두 함께 싸우자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처참하면서도 아름다운 문학을 본 적이 없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겁니다. 맨날 우리만 죽고, 맨날 우리만 패배하는 겁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버이날 요구르트 병에 카네이션을 꽂아놓고 아빠를 기다린 용찬이. 아빠 얼굴을 그려보며 일자리 구해줄 테니 사랑하는 아빠 빨리 오라던 혜민이.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런 시대의 절규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아름답고 존엄한 인간의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그는 지금 한진중공업 동료 노동자들과 그 가족만을 위해 싸우고 있지 않다. 이 서러운 이야기는 우리 시대 평범한 모든 이들이 함께 살아 온 한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모두의 운명과 관련된 이야기다.

난 여기에서 굳이 그런 김진숙을 ‘소영웅주의’네, ‘절차와 지침’을 따르지 않고 조직을 와해시키는 비조직적 행동이네 하며 깠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까닭은 못 느낀다. 자발적으로 조합원들이 친 천막을 철거하고, ‘사측의 협조를 얻어 회사 CCTV를 분석해’ 누가 김진숙이 오르는 것을 도왔는지를 조사하며, 촛불문화제의 음향 제공까지를 거부하며 크레인 농성 초기 김진숙을 비난했다는 한진중공업 노조 지도부를 이야기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후 단결해 얼마전 47m 높이의 제2안벽 크레인 위에 올랐었던 금속노조 부산양산 지부장 문철상과 한진중공업 지회장 채길용을 생각하고, 근처 거제도에서 다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15KW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엘 ‘신나’를 들고 올랐다는 김진숙의 또 다른 벗 강병재에 대해서만 얘기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14명의 동료를 잃고 오늘도 거리를 헤매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그 추모제가 열리는 날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삭발을 하고 단식을 선포했다는 재능교육 비정규직 유명자와 그 동료들의 이야기도 뼈아프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대법원 판결에 따른 정규직화 요구를 하다 도리어 구속되고 해고되고 징계당하며 울산 현대차 공장 앞에서 오늘도 끌려가고 있다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의 얘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농성 중인 청소용역 노동자들을,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벌써 몇 달째 노숙을 하고 있는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을, 또 그렇게 몇 년째 싸우고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비정규직들을, 이제 다시 거리로 나앉게 된 대우자판 노동자들을, 다시 망루를 쌓고 올랐다는 전주버스 노동자들을, 5년째 위장폐업한 공장을 지키며 뜨개질로 하루를 보내며, 기금 마련을 위한 CMS 신청서를 만들었다고, 한번 봐달라고 보낸 콜트-콜텍 기타 만들던 노동자들을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 민주노총이 나서서, 금속산별이 나서서, 삼성에서, 쌍용자동차에서, 그리고 다시 어디에서 죽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에 나서야 한다고, 날마다 청와대와 전경련과 경총으로 진격하는 투쟁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의 한 주인공이기도 했던 노무현의 계승자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박창수, 곽재규, 김주익의 벗인 김진숙이 다시 ‘85호 크레인’에 오르듯, 신자유주의라는 야만의 행진을 멈추게 할 부엉이 바위에 결단코 오르는 일이라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대연합을 바란다면 이제 다시는 김주익과 곽재규를 등 떠밀지 않고, 시대에 참회하며, 지금 당장 구원이 필요한 그들에게 달려가 ‘이기지 못하면 살아 돌아가지 않겠다’던 김주익의 결의만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 시대 모두의 운명과 관계된 이야기다. 저 아래쪽 바닷가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멀어 보이는 일이 아니다. 언제 당신과 내가 다시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 함께 나서 저 여린 소금꽃나무 김진숙이 김주익의 슬픈 영혼을 고이 안고 저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하자.

우리 시대가 고통받는 모든 이웃들을 함께 껴안고 조금은 더 안전하고, 평화롭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 한 발짝만 더 우리 자신의 미래를 위해, 지금 힘이 필요한 그들에게 함께 달려가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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