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친구 그리고 관계




남자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로만 이루어진 무리는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모이는 일이 쉽지 않아진다. 나야 스물 셋 먹은 지금까지 줄곧 학생이었던지라 ‘무리’라고 해봤자 학교 친구들이 전부이지만, 그럼에도 초등학교 친구, 중학교 친구, 고등학교 친구, 대학 친구… 다들 제각각으로 쪼개진다.
초등학교야 워낙 까마득하니 패스. 중고교 모두 여학교로 진학했던 터라 고향에 내려가면 죄다 여자애들 모임이다. 고향 친구들은 이 무리에도 속하고 저 무리에도 속하는 교집합이 꽤 넓은 편인데다가 걸러 걸러 다 아는 사이들이니 모일 때 마다 구성원이 달라지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고등학교 동창들 만났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확실히 ‘몇 명’이 그려지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동창들을 만나게 되면, 모임이 클 땐 거의 한 반 수준의 아이들이 동창회 하듯 식당을 전세내기도 하고, 작을 때는 정말 친했던 두셋 정도만 가볍게 수다 떨다 헤어지곤 하는, 인원에 있어서 굉장히 유동적인 느낌의 모임이 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애들이란 자기와 가장 친한 소무리를 항상 만드는 습성이 있어서인지, 저마다 독립적이다 못해 배타적이기까지 한 소무리에 속해있다. 큰 무리 안에서도 이 소무리는 서로간의 더 많은 교류와 정보, 관심, 그리고 약간의 질투심(?)으로 차별적으로 뭉치곤 한다. 베프, 절친 등으로 표현 되는 이 무리의 아이들은 ‘동창’ 따위의 애매한 무리와 같이 취급되는 것을 상당히 불쾌하게 여긴다. 단순하게 친한 친구들이 아니라 ‘정말 친한’ 친구들인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엔 이 ‘정말 친한 친구들’ 무리가 굉장히 커지는 것도 왕왕 보았는데(12명 정도? 정말 친한 친구들과 좀 많이 친한 편인 친구들이 모두 모이니까 정말 많더라. 사실 소무리와 그냥 무리의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안 친한 놈과 친한 놈만 있을 뿐) 여자들 중엔 ‘정말 친한 친구들’의 규모가 너무 커진다 싶으면, 반드시 소규모로 ‘정말 친한 친구들 중에서도 유독 더 친한 친구들’의 무리가 형성되곤 한다(3~5명 정도. 테이블 하나 규모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듯).
이 배타적인 무리는 구성원이 특정되어 있어서 당연하게도 인원이 고정적인 것이 특징이다. 보통 대여섯 명 정도 되기 때문에 모이기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도, 내가 속한 무리는 항상, 늘, 언제나, 전부 다 모이는 일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우리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생이 되면서 뿔뿔이 흩어져서 그렇다고? 물론 그것도 있다. 하지만, 내가 속한 무리는 다섯 명 중 네 명이 수도권으로 진학했고, 나머지 한 명도 교환학생으로 1년 동안 서울로 올라와 있게 되면서 2010년에는 다섯 전원이 서울에서 생활했었다.
그럼에도 불구, 우리들은 다섯 명 모두 한자리에서 만난 일이 2008년 이후 단 한번도! 없다. 물론 두셋씩은 종종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차도 마시고 했지만. 다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치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늘 누군가는 갑작스런 사정으로 빠지곤 했기 때문에 언제나 모임은 예상 밖으로 조촐해지곤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연락을 자주 않느냐면 그것은 아니다. 꽤 돈독했던 우리 무리의 아이들은 현재까지도 게시판 하나를 공유하면서 일상 이야기를 하곤 한다. 왜 우리들은 다 모이질 못 하는 것일까.
관계라는 건, 눈 밖에 나는 순간 마침표가 찍히는 경우도 참 허다한 것 같다. 그렇게 다양한 관계를 겪어보지도 못한 나 같은 애송이가 이렇게 느낄 정도니. 나중에, 내가 학교라는 둥지를 떠나서 정말로 많은 관계들을 의식적으로 맺게 될 때가 오면, 그게 얼마나 더 심해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단지 피상적으로 내 삶에 엑스트라마냥 반짝 비치우고 말 것이다. 카메라가 포커스조차 던져주지 않아 뿌옇게 흐려진 ‘행인1’ 같은 것 말이다.



신입생이라고 파릇파릇하던 때에(그래봤자 몇 년 전이지만) 만났던 많은 선배들 중 지금까지 안부하고 지내는 사이는 몇 되지 못한다. 그때 받았던 수많은 술잔들이 허무할 정도로, 대다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그 중엔 거듭 만난 분들도 꽤 되시니 교양 수업에서 만난 친구들이나, 술자리에서 처음 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는 그렇게 오래 갈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은 애써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다시 보기도 힘든 사람들인데 싶달까.
그렇다고 모든 관계들이 이렇게 단명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가벼이 스친 인연에 불과했는데 그것이 신기할 정도로 오래 지속되는 경우도 많고, 절대로 다시 볼 사이 아닐 거라 생각한 사람이 꽤 중요한 열쇠를 쥐고 내 에피소드의 또 다른 주연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이래서 묘한 거다.
뭐 이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내 생일 케이크에 꽂는 초가 세를 불리는 것처럼, 내 주위에도 중요한 사람들이 시나브로 늘어난다. 연인도 있고, 친구도 있고, 때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도 시간에 묻혀서 존재감이 흩어지기도 하곤 하지만, 대개, 내게 ‘중요한 사람’이 된 후에는 뜸해질지언정 ‘끝’나 버리진 않는 것 같다.
나는 이것도 정말 내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애살스럽지 못한 성격임에도 이렇게 내쳐지지 않는 걸 보면, 나는 분명 복 있는 사람이다.
한때는 연인 사이였다가 헤어진 후 친구로 지내자던 오빠, 이젠 그 사람도 나도 다른 사랑을 하고 연락도 점점 뜸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관계’ 자체는 아직 살아 있다. 남녀 사이에, 그것도 끝난 애인과의 사이에 미련과 추잡함 말고 뭐가 존재할 수 있냐는 시니컬한 사람들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정답도 못 된다는 걸 깨달았다.
기껏해야 두 달에 한 번? 흔한 안부도 잘 묻지 않는 관계지만, 그래도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사귈 맘이 들 정도로 존재가 컸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아니고, 또 앞으로도 다시 그럴 일 없을 것 같지만 존재가 컸었다는 그 ‘사실’ 만큼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남녀관계가 여타 다른 인간관계처럼 명쾌하기만 했더라면, 이 오빠와도 줄곧 연락하고 지내는 좋은 관계로 남을 수 있었지 않을까.
나는 종종 이 사람과 관계를 끊질 않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은 딱히 이 사람 자체가 주는 감흥은 아니다. 존재감이 지나치게 흐려져 버린 옛 애인은, 뭔가 감정에 동요를 일으키기엔 너무 밋밋한 탓이다. 보통 그런 생각은, 모임에 잘 나타나지 않던 친구가 남자친구와 힘들다더니 갑자기 높은 출석률을 보일 때, 그럴 때 문득 들곤 한다.
여자로만 이루어진 무리는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모이는 일이 쉽지 않다. 그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남자친구 때문이다. 누구 한 명이 남자친구가 생기면, 그 친구의 삶엔 남자친구가 가장 1순위로 떠오르게 된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하루가 돈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보다 남자친구와의 일에 더 맘이 가게 되는 거다.
장난처럼 비난하긴 하지만,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정이 사랑을 이기네 마네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관계가 늘 항상 똑같을 순 없다. 어떨 때는 이쪽이 필요하고, 어떨 때는 저쪽이 절실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가 우리를 생각하는 맘이 작아지는 건 아니다. 소홀해지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일인 것 같다. 마치 가족과 같은 것이다. 나는 언제나 가족을 사랑한다. 가끔 가족행사에 거짓부렁을 하고 슬며시 빠져나와 남자친구를 만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가족보다 남자친구를 ‘더’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비교대상 자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자친구와 전혀 문제가 없이 잘 지낼 때도, 어떤 일에 있어서는 가족만이 내게 안식을 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생각해보라. 남자친구가 아무리 좋아도, 가족 없이는 살 수 없지 않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사실 사람은, 이런 모든 관계들이 밑에서 지탱해주지 않는다면 제대로 살 수 없는 거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연인. 지금 어떤 한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면, 다른 관계는 당장 관심 밖으로 벗어나 있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다른 관계들이 ‘필요치 않다’거나 ‘중요치 않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성급하게 마침표를 찍는 일을 하고 나서 후회하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다.
이젠 더는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예전처럼 내게 중요한 관계로 남아있을 가치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땐 한 번쯤 그 생각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정말 멍청한 짓을 하고 있진 않은 걸까.
한동안 뜸하던 친구가 모임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이럴 때만 찾는 게 괘씸하다고 “차는 네가 사라” 샐쭉한 눈으로 말하긴 했지만 돌아온 친구의 연애상담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모양새들이, 아 내 친구들이지만 참 맘씨도 곱다.
한 친구가 돌아왔지만 그래도 우린 넷이다. 결석을 밥 먹듯 하던 불량학생이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고 나니, 다른 친구 한명이 또 샛길로 빠졌다. 핑크빛 봄을 맞이하셨단다. 당분간은 이 친구 얼굴 보기가 힘들 것 같다.
뭐, 괜찮다. 그래봐야 잠깐이다. 빨리 헤어지라고 저주하는 게 아니라, 우리 무리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그런 게 필요할 때가 올 거라는 것이다.
올 해가 가기 전엔 다섯이 다 모일 수 있을까나. 정말, 여자로만 이루어진 무리는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모이는 일이 쉽지가 않은 것 같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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