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소나기 소녀’ 닮았던 전희옥 선생님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봉해져 있는 편지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겉봉을 살펴본다.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다. 보내려 했던 편지가 되었든, 혹은 누군가로부터 받은 편지가 되었든 개봉되어지지 않은 채 보관되고 있다는 것은 꽤 이상한 일임에 틀림없다.
뭐지 이건, 기억을 뒤적여 본다. 불거져 나오는 것이 없다. 별수 없이 뜯어 내용물을 확인 해 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조심스럽게 입구를 뜯어낸다. 꽤 두께감이 있는 종이 한 장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딸려 나온다. 펼쳐보니, 언제 적은 건지도 까마득한 편지였다. 새롭게 밝은 쥐의 해, 복 많이 받으시길 하고 적혀있는 걸 보니 08년도의 시작 쯤 적은 모양이다. 중학교 때의 국어 선생님께 쓴 편지.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이 손으로 직접 만든 아기자기한 것들을 유독 좋아하셨다. 롤링페이퍼 같은 것들을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셨다 꺼내 보여주시곤 하셔서 우리들을 놀라게 만들곤 했었다. 그런 모습들이 우리들 보기에도 ‘참 소중히 여겨주시는구나’ 싶어서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나 선물들은 다들 꼬물꼬물 직접 만든 것들이었다. 기성품이 갖는 깔끔한 느낌에 비해 직접 만든 것들은 대개 엉성해서 선물이라 드리기 부끄러울 때도 종종 있었지만, 너무나도 좋아하시는 당신의 얼굴을 마주하면 어린 학생들의 얼굴에도 수줍은 홍조가 번지고 그랬다.
그래서 나이가 먹고, 고등학생을 졸업하는 그때까지도 선생님께 쓰는 편지는 무조건 편지지까지도 다 손으로 만들어 쓰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었다. 천원짜리 한 장이면 고운 편지지를 구매하기엔 충분하다. 그 위에 쓰는 편지가 아마 더 예뻐 보이긴 할 거다. 하지만, 그 고운 편지지보다는 분명 이렇게 엉성한 편지지를 더 좋아하시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초등학생 방학숙제 같은 편지지가 부끄럽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흰 종이를 꾸며 만든 편지, 제법 공들인 것 같은데 이렇게 잊혀져 몇 년을 책상 서랍에 묻혀 있었던 모양이다. 보낸 줄로만 알았다. 가만 가만 되짚어보니 주소를 알아보고 보내야지, 생각했다가 그대로 깜박 잊혔나 보다.
전희옥 선생님. 선생님께 이 편지를 보냈어야 했다. 나는 아직도 그녀의 대구 억양을 기억한다. 예민한 기관지 탓에 분필가루로 늘 장부처럼 목소리가 걸걸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겐 정말 교사가 천직이었다.
수업시간의 그녀는 언제나 생기가 넘쳤다. 작은 체구에 굽 높은 슬리퍼를 끌고, 가끔 당신 보다 큰 중학생들에게 야이 가시내들, 이뻐 죽겠네 하시던. 말썽도 많이 피우고 말도 잘 안 듣던 개구쟁이들이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아껴주셨던 건지.
선생님의 국어시간에는 아무리 공부가 싫은 친구라 하더라도 졸지 않고 또랑또랑하게 참여하곤 했다. 선생님의 대구 억양이 재미있었던 이유도 있지만, 수업자체가 다이내믹한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 장소는 내키는 대로 변경되었다. 벚꽃 흩날리면 그 아래 모여서, 햇빛 쨍쨍한 오후 커다란 나무그늘 아래서. 학교 근처로 흐르는 내는 선생님과 수업시간 중 산책하는 단골 코스였다. 이런 게 다 문학이다, 문학소녀들아! 하시며 서른명의 아이들을 선두에서 지휘하시는 선생님, 어쩜 그리 귀여우신지. 높은 통굽 때문에 아장아장한 걸음을 따라하는 아이들, 그 뒤로 꺄르륵 웃음. 즐거운 수업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비오는 게 참 좋다, 하시곤 했다. 당신 스스로를 비바라기라며 노트에 찍어주는 도장에도 예쁘게 비바라기, 적혀있었다. 선생님은 노란 장화가 어울릴 만한 사람이셨다.



나는 선생님께 ‘소나기’를 배웠다. 황순원의 ‘소나기’. 그 아련한 소설의 소녀가, 병아리마냥 종종한 우리 선생님과 겹쳐지는 것은 왜일까. ‘소나기’의 소녀는, 원두막에서 보라색 꽃이 좋다 하였다. 중학생의 내신 공부답게, 우리는 ‘보라색 꽃’에 동그라미를 치고, 소녀의 죽음을 암시, 불길, 따위를 필기하고 달달 외웠었다. 문학은 그래 공부하는 게 아니다 야들아. 선생님은 웃으면서 눈을 흘기곤 하셨다. 말씀은 그렇게 해도, 공부 열심히 하는 제자들이 밉지 못했던 선생님이다.
선생님께서는 꽤 늦게 결혼을 하셨다. 남편 되시는 분은 외모가 훤칠해서 아이들 모두 사진을 보여 달라 조르기도 하고 그랬다. 그렇게 아가도 생기고, 선생님께선 뱃속 아가가 필히 당신 아닌 남편 분을 닮아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셨다.
태교라며 아역배우들의 예쁜 사진들을 쪼르륵 책상에 진열해 놓기도 하고, 느그들만치만 이쁘면 좋겠다, 큰일 날 소리도 줄곧 하셨다. 신영이 만큼만 이쁘면 되었지 뭐. 그러면 듣고 있던 친구가, 아이고 선생님 태어나지도 않은 애기한테 무슨 저주를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그럼 종달새 같이 입을 모아 함께 까르륵.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선생님을 빼다 박을 귀여운 아가가 태어나고, 아기는 한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큰 영혼,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국어 선생님다운 이름이다.
시간이 흘러 나와 친구들은 그렇게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고, 선생님께서는 다른 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워낙에 제자들을 많이 아껴주셨던 선생님이셔서, 선생님 미니홈피는 방문자들이 드글드글 했는데, 거긴 나도 포함이다. 선생님과 남편, 한얼이까지 세 가족이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이 업데이트 되면, 나도 모르게 슬몃 미소를 짓곤 했다. 예쁜 가족이다.
고2때쯤이었나, 그렇게 예쁜 모습만 보여주던 미니홈피를 통해 비보를 전해 들었다. 예전과 같이 큰 입으로 시원하게 웃는 선생님의 사진. 그러나 선생님의 미소가 마냥 해맑진 못했다. 머리카락이 없었다. 파리한 얼굴과 환자복. 브이를 걸고 있는 선생님은, 병색이 완연한 환자, 그 자체였다.
선생님께선 많이 아프셨다. 마음이 아팠다. 요즘 같은 때에 입시 같은 걸 떠나서 문학이 무언지 말해주고 싶은 선생님, 정말로 학생을 사랑하는 선생님이 얼마나 되겠는가. 병실에 있기에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다.
선생님께서 정말 좋은 선생님이라는 것을 반증이나 하듯, 업데이트가 뜸해진 미니홈피엔 제자들이 남긴 방명록이 와글와글 했다. 선생님 빨리 나으세요, 선생님 보고 싶어요. 그런 글들을 찬찬히 읽고 있자니, 나는 비오는 날이 너무 좋다 하시던 당신의 맑은 웃음이 문득 떠오른다.
선생님께서는 결국 몇 번의 항암치료 끝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너무 늦게 누리신 당신의 가족과의 행복, 하늘이 너무 빨리 앗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화가 난다. 한얼이는 당시 유치원생으로, 선생님이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인가도 제대로 알지 못할 시기였다. 선생님은 따뜻한 재가 되셨다.
내가 힘내시라 글 남기던 미니홈피는 아직도 닫히지 않고 남편분께서 한얼이의 최근 사진을 올리곤 한다. 과거 사진첩과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에 적어둔 일기 같은 것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절대로, 선생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잊지 않고 싶다.
비가 오면 마치 ‘소나기 소녀’의 가녀리고 좁은 어깨가 당찬 성격을 내려놓고 떨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보랏빛이 좋아. 하나도 버리지 마라. 황순원의 ‘소나기’는 거푸 읽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읽는 것처럼 장면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선생님과 함께 공부했던 소설. 나는 선생님께서 가르치는 방법을 정말 좋아했다. 이렇게 좋은 소설을 이렇게 가르쳐서 미안하다 하시던. 시험에 나온다, 하는 말을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던. 문학은 정답이 없단다, 엉뚱한 말을 하던 전교 꼴찌 학생에게 그러니 네 말도 맞다 자애롭게 웃으시던. 비가 오는 날이면 수업 중간 중간 창밖을 바라보며 슬쩍 미소 짓곤 하시던.
그래서 이젠 비가 오면, ‘소나기’의 소녀만큼이나 맑은, 선생님이 떠오른다. 마치 ‘소나기’의 오마쥬처럼. ‘소나기’의 소녀 이미지와 선생님의 이미지는 굉장히 거리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랏빛이 좋아 말하던 소녀와 비가 좋으시다던 선생님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이젠 나란히 떠오를 만큼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소나기’와 같은 울림을 가지게 되었다.
내 인생에 소나기 같은 사람. 선생님 같은 분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어서, 선생님이라는 사람을 추억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정말 고운 사람이다. 가슴으로 제자를 사랑하는 선생님. 선생님이라는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사람. 사람이 곱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선생님은 당신의 삶 자체로 보여주는 듯하다.
한얼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나중에 한번 선생님 모신 곳에 찾아가려고 마음을 먹는다. 보내지 못한 편지를 드리러.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늦게 오면 어쩌냐 질책하는 기색도 없이 환하게 반겨주시리라. 신영이 왔냐며. 온 얼굴로 환하게 웃으실 게다. 볼 수 없어도 볼 수 있다. 선생님. 고운 선생님.
초등학생이 된 한얼이에게, 너희 어머니는 정말 고운 사람이었다 말해주고 싶다. 정말 고운 사람이란다. 전희옥 선생님은. 선생님께 배운 게 중학교 2학년 때니까 이제 중3, 고1,2,3, 대학교 1,2,3, 7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내 최고의 스승님은 전희옥 선생님이란다. 한얼아, 너희 엄마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지금도 아마 널 언제나 지켜보고 있을 거란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엔 널 만나러 오실거야. 선생님만큼, 고운 사람으로 자라나렴. 고운 사람으로.
전희옥 선생님이 정말 보고 싶은 날이다. 비라도 한차례 내려줬음 좋겠다. 곱디고운, 비바라기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정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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