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봅시다> 한진중공업 고공농성 240여일, 김진숙 민노총 지도위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고공 크레인 농성이 240일이 다 돼간다. 지난 1월 6일부터 한진중공업 85호 타워크레인에서 고공농성에 돌입한 그는 혹한과 폭우, 무더위를 보내고 바야흐로 가을의 문턱에 서있다. 
한진중공업 측은 수주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부터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김 위원은 “전적으로 경영진의 잘못”이라며 맞서고 있다. 추석을 앞둔 김 위원의 심정을 들어봤다.
  



“다른 조합원들만큼은 명절 집에서 보냈으면”

한진중공업은 경영난을 이유로 지난해 말 생산직 170명을 정리해고 했다. 희망퇴직자까지 포함하면 모두 400여 명으로 전체 생산직의 1/3에 달한다. 이미 2009년에도 한진중공업은 350여 명의 희망퇴직을 단행한 바 있다.
이에 노조는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했고, 김진숙 위원이 회사 측을 규탄하며 1월 6일부터 85호 타워크레인에서 고공농성에 돌입, 240일이 다돼간다. 추석을 앞둔 김 위원은 무덤덤했다.
“이곳에 올라올 때, 언제 내려갈지 예상하고 올라온 게 아니다. 초조하지도 않다. 지난 설도 여기서 보냈다. 명절에 무감하다. 크레인 중간지점에도 현재 4분의 조합원이 있다. 그 분들도 모두 가정이 있다. 노숙하는 조합원들도 있다. 그 분들만큼은 명절에 집에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는 웬만해선 가족, 친척들과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은 느낌이 각별하다. 가족들은 사회적 관계가 아니니까 누구보다 저를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가족들에겐 일부러 전화도 하지마라고 했다. 마음이 약해질 수도 있지 않는가. 언니들은 3차 희망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었다. 때론 문자 한 번씩 보내서 힘내라고 응원한다. 추석 때도 간단한 안부전화만 오고갈 것이다.”
그에게 명절 차례음식은 배부른 소리다. 요즘은 고구마 값도 올라 죽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했다. 
“단식을 끝내고 한동안 고구마로 끼니를 때웠다. 그런데 요즘은 고구마가 비싸져서 점심, 저녁은 호박죽, 야채죽 등으로 해결한다. 사실 여름 내내 날이 너무 더워 입맛도 없었다. 음식엔 욕심이 없다.”
올 여름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지만 부산 지역은 해가 뜬 날이 많았다. 덕분에 찌는 듯 무더운 날씨가 가장 곤혹스러웠다고 했다. 
“서울만큼 비가 안와서 엄청 더웠다. 이곳이 다 쇠로 만들어진 공간이니까 후끈후끈하다. 사실 비가 내려도 힘들고 더워도 힘들다. 여름이라도 밤은 쌀쌀하다. 추워서 잠드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위안이 된 건 ‘희망버스’. 벌써 세 차례나 다녀갔고, 지난달 27일엔 광화문에서 희망버스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와 사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안타깝다. 해결 주체가 돼야할 조남호 회장의 태도가 전혀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청문회에서도 순간만 모면하려는 것으로 비춰졌다. 커닝페이퍼를 들고 청문회에 임하는 등 전혀 진실성 없이 똑같은 말만 13시간 동안 되풀이했다. 더구나 2003년 한진중공업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자살한 김주익 지회장, 곽재규 조합원을 회장이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노동자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뼈가 녹는 마음으로 8년을 살았는데, 가장 큰 책임을 지닌 회장이 모르고 있었다니 그 사람이 정녕 경영자인지 의심스럽다. 그러니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것이다.”

독일 대통령과 지율스님의 메시지

“김진숙 지도위원님, 그리고 대한민국의 노동자 인권 강화를 위해 애쓰시는 모든 여러분, 여러분께 큰 성과가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이루는 근간이 이 성과에 대한 기본 전제조건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또한 저는 내년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이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가져다 줄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있게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크리스티안 불프 독일 대통령의 격려 서한 중 일부다. 최근 김 위원에게 가장 큰 힘을 실어준 메시지다. 서한은 농성 231일째 되는 날 받아 볼 수 있었다. 김 위원은 처음 서한을 마주했을 때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설마 싶었다. 나중에 번역본을 보고 더 놀랐다.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노동조합과 정리해고를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로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통찰력이 대단하다. 뜻밖이고 어안이 벙벙했다. 남의 나라 대통령이 그것도 일개 노동자에 대해 연대를 표명할 수 있다는 자체에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까지 제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독일 등 유럽선진국들이 우리처럼 노동자들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통령과 정부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대해 외면하고 무시하는데, 다른 나라 대통령이 관심을 가져 주어 놀라웠다.”
독일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설명이 뒤를 이었다.
“독일은 노동조합 활동이 일반화 돼있고, 또한 광범위하다. 노조에 대한 혐오감이 없다는 게 대통령의 편지를 통해 다시 확인됐다. 우리나라는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옳으니 그르니 하면서 이념적으로 보고 있어 문제 해결이 더 어렵다. 정리해고를 노동자의 삶의 문제로 봐야 하는데, 우리는 좌우 이념의 문제로 만들어가고 있다. 오히려 그런 분위기를 조장한다. 부당한 정리해고에 대해 바로 해고자들을 복직키시고 해고 철회를 하면 ‘공정사회’나 ‘공생’이 가능하다.”
김 위원은 85호 크레인에 한진중공업 사측이 전기 공급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우리 인권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노동자를 ‘인간’으로 여기는 유럽의 경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회사는 오래 전부터 전기 공급을 오늘내일 할 것이라고 했는데 계속 미루고 있다. 지난 국회 청문회 때도 전기 공급을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약속했던 전기 공급도 하지 않고 있으니 불신이 쌓이는 것이다. 사소한 문제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회사가 약속을 어기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 전 국민 앞에서 한 약속도 쉽게 어겨버린다. 그렇게 하다 보니 노사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이다.”
‘천성산 지킴이’ 지율스님 역시 얼마 전 김 위원에게 지지 메시지를 보냈다. 이 또한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스님과 한 두 번 만나 먼데서 인사 정도만 했었다. 하지만 스님과는 동변상련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스님이긴 하지만 저와 같은 세대, 같은 시기를 살고 있다. 특히나 천성산 반대 운동하면서 오랜 외로움과 처절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 같다. 지율스님의 처지에 저 역시 아파했다.”  



“돈 없어 노동자 해고? 분노 솟구쳐”

의문을 품는 이들도 많다. 과연 김 위원의 농성이 정당한가를 두고. 한진 사측은 업무량의 고갈, 경영실적 악화를 이유로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김 위원은 경영상의 이유는 없다고 잘라말한다.
“지난 3년간 총 18척의 선박을 인도했고, 2012년까지 35척의 선박이 인도될 예정이다. 사측이 정리해고 할 긴박한 경영상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결국 무리한 투자와 불투명한 지배구조 때문에 나오는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덮어씌우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한진중공업은 지난 10년간 총 2400억원의 배당금을 주주들에게 지급했다.”
이자비용이나 지분법 손실 등이 경영실패 혹은 지배구조 전환 과정에서 나온 비용임에도 이를 노동자에게 전가시켜 고용문제로 변질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고가 철회되더라도 사측은 손해 볼 게 없다는 게 김 위원의 주장이다.
“지금 정문 공사하고 담장 공사하는데 50억이 들었다. 1월부터 용역회사한테 들인 돈만 수십억이다. 그것만 해도 노동자들 몇 년지 월급이다. 회사가 어렵다는 말은 믿을 수도 없을뿐더러, 납득이 안 된다. 돈 없어서 노동자들 해고했다는 얘기 들으면 분노가 솟구친다.”
사측의 입장변화가 없는 한 김 위원의 농성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게 하나 있다. 사측이 노동자를 복귀시킬 때까지 절대 여기서 내려가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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