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가을바람 살생부 리스트’

아직 ‘빨간불’은 꺼지지 않았다. 일명 저축은행 부실 쓰나미는 올 전반기 금융권의 최대 악재였다. 하지만 하반기 저축은행 구조조정 규모가 예상보다 대폭 축소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오히려 부실상황이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당초 금융권과 전문가들은 경영진단을 받은 85개 저축은행 중 상당수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대출에 따른 리스크 위험을 안고 있어 정리해야할 부실저축은행이 얼마나 될 지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한편에선 자산규모 2조원이 넘는 일부 대형저축은행을 포함해 최소 10곳, 많게는 30곳 이상이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그 대상이 대폭 축소될 것으로 전해지면서 경고음은 현재 진행형이다. 산 넘어 산인 저축은행 사태를 들여다봤다.


‘살생부 리스트’에 오를 저축은행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최근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자산 건전성 지표)이 5% 미만인 저축은행이 15개 안팎이며 저축은행 구조조정 대상 규모를 놓고 막판 조율 중이라는 보도가 일부에서 제기되면서 금융당국이 몸살을 앓았다.
금융당국은 이 달 하순 하반기 구조조정 명단을 공개할 방침이지만 시장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구조조정 대상을 당초보다 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제2의 부실사태’ 우려도

금융계에 따르면 당국은 저축은행들의 부실규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산관리공사(캠코)의 기매각 저축은행 PF대출채권과 3년 이상 되는 장기대출을 ‘부실자산’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캠코는 총 4차례에 걸쳐 저축은행으로부터 484개(중복사업장 포함)의 부동산PF사업장을 인수했으며 원금기준으로 7조3863억원(원금기준)의 부동산PF대출채권을 매입했다.
이중 6월 기준으로 총 45개 사업장(4264억원)을 정리해 현재 439개6조9599억원)를 보유 중이다. 중복사업장을 제외하면 순수 PF사업장은 373개다.
캠코가 공적자금투입 등을 통해 매입한 저축은행 PF대출채권은 정산기간 동안 정리(매각 등)작업을 진행하되 매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해당 저축은행에 환매한다.
정산기간은 당초 3년이었으나 금융당국은 지난 7월 5년으로 연장했다. 저축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부담을 완화해 자구노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캠코에서 매각이 안 된 저축은행 PF대출채권은 계속 보유할 경우 관리비용만 발생하거나 매각을 해도 실익이 없는 경우가 많아 결국 저축은행의 부실자산으로 남는다.
캠코 관계자는 “저축은행의 부실 PF대출채권을 인수하는 것은 저축은행들이 대손충당금(대출금 회수가 불가능한 상황을 대비해 일정 부분을 적립)을 쌓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함”이라며 “장부가를 기준으로 70%에 매입해 공사채나 기금채 형식으로 채권을 발행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10~20%의 채권(시장가격)을 70%에 매입한 것은 장부가 매입 원칙에 따른 것으로 현금이 아닌 채권으로 발행해 저축은행 PF채권을 매각 또는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함께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의 3년 이상 되는 장기대출도 선이자를 떼 주는 조건으로 이번 부실에서 제외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계속되는 ‘사후약방문’

하지만 이 두 가지 부분을 완화해 줄 경우 향후 큰 화근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BIS 자기자본비율이 5% 미만인 저축은행의 수는 아직 확정된 바 없고 추후 최종 경영진단 결과를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당초 예상에 비해선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의혹의 시선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 동안 저축은행들은 분기마다 BIS비율을 자체산정해 보고했는데 이로인해 조작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했던 것으로 속속 확인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직접 85개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지만 그 결과와 조치에 ‘솜방망이’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저축은행 부실문제의 원인으로 역대 정부에서 계속된 PF대출 규제완화와 저축은행간 인수합병(M&A) 허용 등을 꼽는다. 정부가 알면서도 손을 놓고 있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부실저축은행에 대한 관리, 감독 소홀과 미약한 구조조정은 사태를 악화시켰다.
금융계는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부실문제를 과거처럼 대충 덮고 무마할 경우 ‘제2의 저축은행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혼란의 위험을 피할 가능성도 높게 제기된다.

저축은행 업계 ‘초비상’

상반기 한차례 메가톤급 태풍을 치른 저축은행 업계는 초긴장 분위기다.
하반기엔 큰 문제없이 지나갈 것으로 자신해 왔지만 그 때마다 대형 악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때문에 저축은행업계는 잔뜩 몸을 움추린 채 부산한 움직임이다.
모회사가 워크아웃을 신청한 A저축은행의 경우 다방면으로 자구책을 구하는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그룹은 자산매각을 진행하고 있으나 필요한 경우 그룹의 자산을 저축은행에 직접 증여하는 방식으로 국제 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해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외국계 투자자등 복수의 기관과 제3자 자본유치도 추진하는 등 다방면으로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B저축은행은  유상증자에 나섰다. 이 저축은행은 주주우선공모증자 방식으로 1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에는 제3자배정 방식으로 대주주가 직접 투자할 예정이다.
몸집 줄이기를 검토중인 대형사들도 적지 않다. 한 저축은행 고위 관계자는 “자구계획으로 계열사 매각을 검토했다”면서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나 지금은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없어 시기 조절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모든 대형사들이 계열사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C저축은행 관계자는 “환경이 좋아질 때까지 자구노력을 할 것”이라며 “자본 확충, 우량자산, 계열사 매각 등 캠코에 PF 부실채권 매각할 때 맺었던 MOU(경영개선협약)내용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악의 경우 강력한 자구책으로 우량채권 매각을 비롯 계열사 매각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반적인 업계의 침몰 속에 얼마나 많은 저축은행들이 ‘살생부’ 명단에 오를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미 경영진단을 마무리한 금융당국은 유입부동산, 부실채권 등의 건전성 분류 등을 검토하며 저축은행 업계와 막바지 조율 작업에 들어갔다. 예금보험공사는 9조원의 실탄을 추가확보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
위기에 빠진 저축은행 업계에 이번 가을은 생사가 달린 중요한 고비가 될 전망이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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