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얼마 전 내 생일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떴다. 홍대의 밤문화를 만끽해 주겠노라, 이래저래 외박 계획을 세워둔 터였다. 저녁 다섯 시쯤 모여서 저녁을 먹고, 홍대 분위기 물씬 나는 바에서 술도 캬, 한잔 하고 말이다. 이번에 중국에서 일 년간의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친구도 온다고 하고, 스무살때 친해진 동창 친구도 휴학 이후로 오랜만인 대학친구들도 오겠다 하였다. 여러모로 묘한 조합이었다. 교집합이 `나`인 자리는 언제나 즐겁다. 다른 집단들이 나를 매개로 서로 친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 약간 서먹서먹하게 구는 내 가까운 사람들의 낯선 모습. 우리도 처음 만났을 때가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금세 흐뭇하고 반가운 기분이 된다. 무슨 얘기를 하게 될까, 아마 밤이 모자랄 거다. 거기에 `생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은 설렘이 더해져, 심지어 디테일한 동선까지 짜기에 이른 것이다. 초등학생 이후로 내 생일을 이렇게 기다려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설레는 시간은 늘 더디다. 그래도 하루들은 하루하루 꾸역꾸역 흘러, 믿기지 않게도, 디데이가 다가왔다. 소풍 전날의 초등학생과 같은 내 모습이 낯설다. 오랫동안 놀지 못하고 지내긴 한 모양이다. 약속 잊지 않았지 확인 문자를 돌리고, 내 생일 일주일 후가 생일인 친구의 선물을 구매하였다. 정말로 내일이다.
그날 저녁, 곧 생일을 맞이하는 딸을 대하는 어머니답게도 오늘따라 무척이나 다정하신 어머니께, 생일이니 홍대에 놀러 갈 것이며, 생일이고 하니 꽤 늦을지도 모르겠단 말씀을 드렸다. 뭐 그래, 잠은 어디서 잘거니 따위의 질문을 생각했던 내 기대와는 달리, 어머니 다정하신 얼굴이 순식간에 일변한다. "안 돼." 안 된다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네?" 스스로 표정을 볼 순 없지만 내 바보 같은 표정이 보는 듯 그려진다. 외박은 안 된다. 단호하신 말씀. 아무리 단호하시대도, 나야말로 이건 안 될 일이다. 이제 와서?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설렘 속에 보내던 느린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정 그러면 아침에 가서 막차 타고 오도록 해. 전날에 약속시간을 바꿀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것도 한두 시간도 아니고 오전부터 만나자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해가 져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홍대가 꽃피건만, 나는 그때 집으로 돌아오게 생겼다. 나를 중심점으로 모였던 친구들은, 역시 흩어지거나, 아니면 나만 두고 자리를 계속 이어가겠지. 전자든 후자든 끔찍한 선택지라는 건 마찬가지다. "아 엄마 안 돼요.", " 아 엄마 제발요.", "아 엄마." 아 엄마 타령이 조금 이어졌지만, 어머니의 단호함 앞에서는 애교도 신경질도 맥을 못춘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어 연락을 돌린다. 얘들아 내일 일정이 변경 되었다. 뭐야, 짜증나, 하는 답장이 날아온다. 그래도 알았다는 반응들. 내키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별 말 안하고 따라주는 친구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일찍 출발해 오전 중에 도착한지라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휴학생에겐 학기 중의 활기가 낯설다. 휴학이 일 년이 채 안 되었는데도 다른 세상인 것만 같다. 언제나처럼 빛나는 신입생들의 얼굴. 도서관과 법학과 건물, 모교를 찾은 졸업생의 기분이 되어 좀 기웃거렸더니 아는 얼굴들이 알은체를 해온다. 여, 오랜만이다. 그 짧은 시간동안 저들에게서 완전히 이탈되어 나온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회기를 떠나는 273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 버스도 정말 오랜만이다. 계획이 틀어진 것도 있고 해서인지 이런 것들이 죄다 감성적이게 다가왔다. 어쩐지 조금 다운되었다. 273버스가 약간은 빙글 돌아 내려준 홍대 앞. 지하철보다도 느리지만 나는 이 버스가 좋다. 내 대학생활의 젖줄, 273버스. 그 지겨운 시간 끝에 도착하는 홍대가 좋다. 젊은 홍대. 여전히 홍대는 젊었다. 바비큐 전문점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하와이 풍의 노래가 까불까불 흘렀다. 고기를 먹고, 사진을 찍고, 떠들고 웃다보니 기분은 금세 다시 고조된다. 해가 지고 날씨가 쌀쌀해졌다. 자리를 옮겨 홍대의 시크 여신 언니의 빈티지 바에서 칵테일과 데킬라를 마셨다. 타임 리밋이 째깍째깍 나를 압박해 왔다. 신데렐라의 기분이 이랬을까. 시간이 흐르는 것이 너무 아쉽다. 하루는 어떻게 이다지도 짧은가. 떨어지지 않는 입을 떼 안녕을 말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 터미널로 향했다. 은근한 기대와는 달리 막차가 매진이라든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버스에 몸을 실었다. 급속 냉각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분은 다시 홍대에 도착하기 전으로 돌아간다. 집까지 가는 두 시간이 너무나 길다. 술기운인지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지만, 정신은 온전히 잠들지 못한다. 날도 날인데, 하루쯤 외박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미 다 지난 일이 괜히 야속하다.
동네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한시. 홍대라면 새벽 한시가 어찌 새벽이겠냐 만은, 이곳은 아니다. 다들 잠이 들었다. 가끔 불 밝힌 곳은 24시 편의점과 주홍빛 가로등뿐이다. 보통 때 같으면 택시를 탔겠지만, 오늘은 그냥 찬 공기를 맞으면서 걷고 싶었다. 동생이 문자로 어디냐고 물어온다만, 괜히 심통이 나서 씹어버렸다. 분명히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지만, 그래봐야 십분 거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집집마다 불이 꺼져있다. 도로에는 차도 잘 지나지 않는다. 도로를 인도 삼아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갔다. 약간 축축하고 찬 공기가 그나마 마음에 들었다. 오래 버스를 타다 내린 터라 청량감이 느껴지는 작은 물방울들이 좋았다. 재미있던 오늘 하루의 회상, 오랜만이던 얼굴들, 또 그만큼이나 오랜만인 술, 때문에 느껴지는 아쉬움, 빨리 집에 가서 지친 몸을 뉘이고 싶은 마음과, 집엔 들어가기 싫은 마음, 약간의 원망, 따위들이 뒤엉켜서 오히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걷는 길엔, 여태껏 불 켜진 집이 없었다. 여기서 새벽 한시는, 그만큼 깊은 밤이다. 고양이 걸음을 하면서 재촉도, 늘어지지도 않는 템포로 그냥 걸었다. 갑자기 밤이 찾아온 기분이다. 저만치 집이 보인다. 고양이 걸음으로,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바로 침대로 다이빙을 해야겠다 생각한다. 가족들의 잠을 깨우기 싫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감탄한다. 와, 이 얼마나 착한 딸인가! 생일날 외박이 기각당해도 가족을 이만큼 생각하는 딸이 또 어디 있어. 되지도 않는 소리를 속으로 주워 삼키면서. 문을 열었다. 조심한 문도 끼긱 거리는 소리를 내다 삼킨다.
신발 벗는 소리가 나지 않게 주의하면서 고양이 발걸음 사뿐하게 현관 안에 한걸음 들어선 순간, 거실에서 엄마 목소리가 난다. “왔니?” 깜짝 놀라 절로 헉 소리가 난다. 불 꺼진 거실에 어머니가 앉아 계시다. 티비만 깜박깜박 하며 어머니 얼굴을 물들인다. 왜 문자 안 받아, 전화도 했는데 못 들었어? 핸드백을 뒤져 폰을 꺼내보니 부재중 통화가 몇 건 찍혀있다. 십여분, 그 짧은 시간동안 말이다. 버스 탔다고 문자도 드렸는데 그 짧은 거리가 그토록 걱정스러우셨나. 평소 일찍 주무시는 어머니이신지라, 이미 눈에 졸음이 가득하셨다. 어쩐지 묻는 질문에도 피곤이 잔뜩 배어있었다. 그래 씻고 자라, 거의 감긴 눈으로 비척비척 일어나셔서 방으로 들어가시는 뒷모습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졸음을 참고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내가 부모님이 계신 집에 이렇게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것도 흔하지 않은 일이긴 했다. 어렸을 때부터 통금시간이 꽤 엄한 편이었고, 대학교 입학하기 전까진 외박이라는 것이 가능할 리 없는 신분이었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자취를 했기 때문에 생일은 당연히(?) 밤새 논다는 개념이 생겼지만,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그게 말이 안 되는 일일만도 했다. 당신이 허용할 수 있는 최대치 -아침 일찍부터 나가 막차로 새벽귀가-를 허락해 주신 것인데 원망했던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되었다. 그 원망을 많이 내색하지 않은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취한 몸을 침대에 누이었다.

잠에 빠져들면서, 언뜻 생각나기를,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서는 날 위한 미역국, 그것은 아마 새벽부터 부엌에서 끓고 있었지 않았을까. 졸린 눈으로 앉아 계신 어머니와, 채 잠이 깨지도 않은 눈을 비비며 미역국을 끓이는 어머니가 감은 눈 뒤로 어리 운다. 좋은 딸이라며 스스로 칭찬 한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이다지도 못난, 어린 딸. 당신은 얼마나 걱정이 많을까. 식상한 말이지만, 낳아주셔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생일이 이미 몇 시간 전에 끝이 날 때까지 머릿속에 떠올리지도 못한 말, 주무시는 어머니를 향해 차마 목소리 내지도 못하고 그냥 속으로 말할밖에.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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