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마음으로 읽는 그림, 그림으로 읽는 마음’





17년 다닌 직장을 그만둔 한 후배는 요즘 아침마다
의기소침하답니다. 왠지 허전하기도 하고 자기 없이도
회사가 잘 돌아간다는 생각에 턱없는 배신감도 느끼고
‘미친 존재감’이란 단어도 떠올려 보게 된다네요.
오랜 계획 끝에 자의에 의해 그만둔 것임에도요.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이별은 겨울에 하면 안돼!’라고 되뇌는
어느 실연자(失戀者)의 공허함은 다음 해 여름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가까운 지인과의 사별(死別)이나 갑작스런 단절이 가져오는
상실감이 현실적 종결과 관계없이 일정 기간 지속되는 현상은
너무 당연합니다.

사고로 팔이 절단된 이들 가운데 이미 사라진 팔 끝의 손가락이
자꾸 가렵거나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라진 팔의 유령이 나타나는 환상통(Phantom Pain) 현상입니다.
사라져서 없어진 몸의 한 부위를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몸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시차가 있습니다.
그래서 몸은 종결자(終結者)인데 마음은 시발자(始發者)인 경우,
허다합니다.

오랜 동안의 인연이나 익숙한 환경과의 상실, 단절, 이별 등을
경험하는 순간 인간은 당연히 심리적 후유증을 겪게 마련입니다.
상황은 이미 끝나 버렸는데 내가 왜 이럴까 라는 식으로 자기 탓을
하거나 내가 일을 그렇게 그만둔 것은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따위의
해석은 불필요합니다.
그러고 있는 자신을 진심으로. 따뜻하게. 바라봐 주고 다독여 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자기마감을 잘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자신에게 일어난 심리적 영역의 환상통을 있는 그대로
순하게 인정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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