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집행 임박한 두물머리 풍경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이 만나는 팔당 양수리의 두물머리. 4대강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이른 가운데 팔당 두물머리 강제집행도 임박해지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10월 말게 강제집행에 들어가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 그러나 농민들은 농사일과 각종 행사 일정에 전념할 뿐이다.
이곳은 30여 년 전 국내 유기농업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처음엔 농약 안치고 화학비료도 안 쓴다고 ‘미친 놈’ 소리도 듣고, 되지도 않을 운동이라고 ‘빨갱이’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 개최지로 선정되는 등 누구나 인정한 ‘농민의 땅’으로 탈바꿈됐었다.





국토부 엄포에도 각종 행사 열려

2009년 4대강 토건공사가 시작되면 유기농 농사를 지어 사랑받고 칭송까지 받던 두물머리에 시련이 닥치기 시작했다. 자전거도로, 공연장, 체육시설과 각종 개발을 위해 두물머리는 농사짓는 땅이 아니라 싸움밭이 되고 삽질하는 곳으로 변했다. 이제 최후의 남은 네 농가만이 국책사업이라는 이름하에 저질러지는 강제철거와 폭력에 저항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그래서 두물머리를 4대강의 마지막 저항지라고도 한다.
국토해양부는 지난 5일 열린 유기농대회만 끝나면 두물머리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오는 31일 이곳에 남은 농가들에 강제집행을 실시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두물머리에선 강변가요제 등 각종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두물머리 강변가요제에선 가수 한동준 씨와 ‘야마가타 트위스터’, ‘아폴로 18’ 등 다양한 장르의 개성 있는 젊은 음악인 26개 팀이 출연했다. 이들은 행사에 저렴한 출연료를 감수하고 함께 했다. 이들 중 적잖은 이들은 홍익대학교 앞 두리반과 명동 마리, 용산 참사의 현장에서 함께 ‘쌈마이’ 뮤지션들이다.





가수 ‘이발사’는 “두물머리에 1년 만에 가도 작년에 본 옷을 다들 그대로 입고 있고, 저도 마찬가지”라며 “새나 나무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이날 강변가요제는 벼룩시장과 먹거리 장터·날밤 독립영화관 ‘4대강 싫어’, 물풍선 놀이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됐다.
2010년 2월 17일부터 600일이 가깝도록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생명평화미사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두물머리 곳곳엔 천막과 부스, 비닐하우스 안에서 먹거리장터와 벼룩시장이 열리고, 4대강 개발토건사업에 대응하여 대안모델로 제시한 두물머리 대안모델을 응원하는 경운기 포토존, 금강 미호조개 이야기, 함께 만드는 4대강 그림 메시지 등 다양한 참여부스가 준비돼 있다. 지난 22일엔 두물머리 추수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11월 중에는 반개발영화제도 있을 예정이다.



‘농심은 고요한 호수와 같아라’

세상이 많이 각박하지만, 그럼에도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민의 마음은 더디게 변한다. 삶의 터전을 빼앗는 4대강 사업 주민설명회를 하겠다고 찾아온 담당자에게 “그만 돌아가라”며 돌려보내면서도 “우리가 농사지은 친환경농산물이니 가져가서 드시라”며 감자며 채소를 한 아름 챙겨주는 일을 잊지 않는다.
억울하니 하소연이라도 하자는 집회 장소는 서울일 뿐, 이곳에선 사시장철 농사일에 여념이 없다. 한여름 뙤약볕 내리쬐는 명동 거리에서 전날 농사일을 마치고 밤 늦게까지 손수 포장한 유기농 채소들을 나눠주며, ‘팔당상수원을 지켜주세요, 유기농민을 지켜주세요’ 목청 높여 호소한지도 2년이 지났다.
서울 어디에서나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곳 두물머리. 이곳 농민들은 4대강 사업으로 상처 입고 있지만 부드럽고 넉넉한 땅처럼 스스로를 순화하고 주변까지 껴안고 있다. 이것이 농민의 마음이다.
3년마다 대륙을 돌며 열리는 세계유기농업인들 축제인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도 남양주시 조안면과 양평군 양서면 일대 유기농단지가 있는 팔당에서 열렸다. 세계 108개국 750여 회원단체가 참여해 최신 유기농업 정보를 교환하고 총회도 열었다. 세계유기농대회 유치는 이곳 농민들이 수십 년간 지켜온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는 가슴 뿌듯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30여 년 전 정농회를 통해 한두 농가가 유기농을 시작할 때만 해도 주위로부터 ‘미친 놈’소리를 들어야 했다. 농약 치고 화학비료 주면 소출도 늘고 농사일도 편할 텐데, 일일이 손으로 벌레 잡고 몇 년씩 퇴비를 만드느라 여간 고된 농사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방춘배 팔당공대위 국장은 “친환경농산물이라고 더 비싼 것도 아니고, 특별히 골라 찾는 사람도 없을 때여서 그저 ‘이건 아닌데, 이러다간 땅도 죽고 강도 죽고, 결국 사람도 살지 못할 텐데’ 하는 의견이 분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995년부터 서울시와 농협이 팔당호 수질을 개선한다며 상수원지역에서 친환경유기농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적극 벌이기 시작했다. 먼저 유기농을 시작한 농민들도 마을 주민들을 설득했다. 무엇보다 판로가 안정되자 농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10개 농가, 20개 농가로 차츰 늘더니 100여 개 농가가 유기농을 하는 수도권 최대 친환경유기농단지가 되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기에 땅이 살아나고 생태계가 복원되었다. 논이었던 곳에 물이 차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습지에는 철새들이 찾아왔다.
환경부와 농림부도 정책을 세워 지원하며 팔당 유기농의 가치를 높이 인정했다. 유기농을 배우고 시작하려는 전국 농민들, 딸기나 토마토, 고구마 같은 신선한 먹을거리를 직접 수확하고 체험하려는 학생들, 지역 생협을 통해 공급받는 생산지를 직접 보고 농민을 만나려는 조합원 가족들 발길이 끊이지 않다. 이른바 교육의 장으로 ‘팔당’은 소중한 이름이었다. 불과 3년 전 까지만 해도 팔당 농민들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온통 거짓말만…

자전거도로, 야영장, 야외 음악당, 야외 공연장…. 이명박 정부가 팔당의 유기농단지를 갈아엎고 만들겠다는 것들이다. 두물머리 농민 서규섭 씨는 “국책사업이고 공익을 위한 사업이니 소수인 당신들이 감수하라고 하는 얘기까진 이해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런데 뚜렷한 근거도 없이 유기농업이 수질오염 주범이라고까지 서슴지 않고 말한다. 환경부와 농림부, 모두 정책 일관성은 눈 씻고 봐도 없다. 거짓말로 똘똘 뭉친 정부다”고 비난했다.
서 씨는 “환경영향평가 조사항목에 동식물은 있어도 사람은 없다고 한다. 생태계가 살아 움직이는 유기농지를 시멘트로 덮고 잔디를 까는 것이 친환경인지, 누대를 지켜온 마을공동체가 무너진 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하는 것이 공익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방 국장은 “지금처럼 전국 강변을 한강 둔치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개발하겠다는 발상은 환경에나 모두에게 이로운 일도 아닐 뿐더러 폭력에 가까운 것”이라며 “4대강 사업의 근본 문제 가운데 하나는 팔당처럼 공동체들이 지역 특성을 살려 가꾸고 지켜온 가치가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많은 사람들이 개발의 꿈을 좇아 땅이 곧 돈이라고 말할 때 팔당 농민들은 땅은 생명이요, 희망이라고 말하며 살아왔다”며 “그런데 이제 4대강 사업은 ‘당신들은 잘못 살았어’라고 충고한다. 아직은 완강히 버티고 있지만 국가 폭력은 생각보다 잔인하기에 때론 두렵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땅이 살아 있고 그 땅에서 신선한 작물이 자라는 한 이곳 농민들의 바람은 그저 한 가지밖에 없다. 그저 이대로 농사짓게 해달라는 바람이다”라고 덧붙였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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