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승산밑 꿀벌집 벌집아씨의 일기장>

이 글은 도시에서 살다 오래전 귀농해 전북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 두승산 자락에서 양봉업(두승산밑 꿀벌집/www.beehome.co.kr)을 하며 살고 있는 벌집쥔장(김동신님)과 벌집아씨(조영숙님) 그리고 세 아이 정우와 주명이, 영섭이의 알콩달콩하면서도 소소한 생활을 아주 자유스럽게 담은 것입니다. 글은 벌집쥔장과 벌집아씨가 번갈아가며 쓰고 있습니다. 이들의 꾸밈없고 진솔한 ‘참살이’ 모습이 삭막한 도시생활에 지친 독자님들에게 청량제가 될 것이란 생각에 가급적 말 표현 등을 그대로 살려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고구마 이삭줍기
 
어제 볼 일이 있어 아침 먹고 신랑이랑 전남 해남에 갔습니다. 먼 길 차를 타야 하는 것 때문에 가기 싫었지만 지난주부터 예약되어있던 일이라 투덜대지도 못하고 따라 나섰지요. 가는 길 산과 들판을 보니 참 아름답습니다. 늦서리 맞고 옷을 갈아입은 단풍들이 보는 이를 즐겁게 해줍니다.

만나야할 분이 좀 늦는다고 해서 인근에 있는 우리의 봄철 봉장자리로 갔습니다. 경운기나 겨우 들어갈 만한 길을 힘들게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불쑥 고구마 밭이 나옵니다. 멧돼지가 들어와 다 캐먹을까 봐 주변에 망을 쳐놓았나 봅니다. 앞서 가던 울신랑 “멧돼지들이 고구마밭 다 헤집어놨네” 합니다. 가만 보니 세상에 굵직한 멧돼지 발자국과 함께 밭이 갈아놓은 듯 파헤쳐져 있습니다. 뒤에 따라가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다 캐간 고구마밭 나중에 호미 들고 가서 굵직한 고구마 한 개씩 캐낼 때마다 얼마나 기분 좋던지. 그 생각을 하며 고구마밭을 보다가 고구마색이 얼핏 보이는 것 같기에 옆에 있던 돌멩이로 흙을 파헤쳐 캐봤습니다. 어∼그런데 제법 굵직한 고구마가 나옵니다. 몇 발자국 지나서 고구마 등이 조금 보이기에 또 파헤쳐보니 이번엔 아주 굵은 넘이 나옵니다.^^ 기분 좋아 신랑에게 소리칩니다.





“정우아빠∼나 고구마 캤다! 뾰족한 나뭇가지 좀 만들어줘.”

그러면서 두개의 고구마를 보여주자 울신랑 산으로 가서 나뭇가지를 잘라다 줍니다. 웬일로 저리 말을 잘 듣는담. 울신랑 잠시 후 “나도 캤다∼!” 하면서 고구마를 보여줍니다. “밤고구마다.” 색이 빨간 것이 한눈에 밤고구마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 해남의 고구마가 유명하니 분명 달콤할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이렇게 돌멩이가 많은 밭에서도 고구마는 제법 밑이 잘 들었습니다. 그렇게 둘이서 온 밭을 헤매며 고구마 이삭줍기에 빠져들었습니다.

무심코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했던 작은 행동이 이 나이에도 이렇듯 큰 재미를 맛보게 해줄 줄이야. “ㅎㅎ 우린 해마다 한 가지씩은 재미있는 일을 만든다니까.” 그 소리에 울 신랑 “놀면 뭐해?” 합니다.

어느 해엔 시장 할머니들이 가지고 나와 파는 오리목나무버섯이 맛나단 소리를 듣고 눈이 내린 뒤에도 온산을 뒤지고 다니면서 보라색 오리목버섯을 따다 먹은 적도 있습니다.





멧돼지 녀석들이 먹다 남은 것들도 보이고 기계에 잘려 나간 것도 보입니다. 그렇게 고구마 이삭을 줍다 보니 자꾸 시선이 산으로 갑니다. 산에서 멧돼지들이 금방이라도 내 고구마 내놓으라며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고구마 등이 조금 보여 캐보면 우릴 실망시키지 않고 어김없이 큼직한 고구마가 나옵니다. 처음엔 작은 것도 주워 담던 울신랑 나중엔 “에이~~” 하면서 작은 건 버립니다. ㅎㅎ 배가 부른 것이지요.

“그런데 다 캐간 고구마밭에 웬 고구마가 이렇게 많은 거야. 줍는 사람들이 대충 추웠나?” 물으니 울신랑 그게 아니라 캘 땐 흙에 덮여 안보였던 것이 비 맞고 흙이 쓸려 내려가 보이는 거라고 설명해줍니다.

울신랑 바지는 어느새 흙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와∼여기 사는 멧돼지들 살이 통실통실 쪘겠다. 이렇게 빨간 밤고구마를 먹었으니….”







신랑과 난 누가 누가 많이 캐나, 누가 더 큰 것을 캐나, 내기라도 하듯 그렇게 고구마밭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포대가 제법 무겁습니다. 울신랑 고구마밭 옆에서 버려진 포대 하나를 더 주워옵니다. 하나에다만 담으면 끌고 다닐 때 무겁다며. 그렇게 밭을 다 헤매다 보니 약속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정우아빠 이제 가자, 체력 고갈됐어.”

아침밥도 안 먹고 따라나섰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고구마 이삭줍기에 정신 팔려 에너지 방전직전입니다. 생각해보니 전날에도 교회 가서 전도회때 대접할 만두 만들어 대충 먹고 건너뛰었었는데. 상큼한 산 공기 마시면서 그렇게 즐거운 시간 보낸 뒤 차안에 있던 귤 하나 나눠먹으며 허기를 달래봅니다.

볼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정우아빠, 우리 바보다.” “왜?” “그 옆에 큰 고구마밭 또 있었는데 거기도 가볼 걸.” “그러게 왜 그걸 생각 못했지.”

우리가 이삭을 주운 고구마밭은 우리 봉장터라 당연히 주워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옆밭은 남의 밭이란 생각에 들어갈 생각도 못했었나 봅니다.







돌아오면서 연신 “배고프다”를 외치는 울 신랑. “나도 배고파서 어지럽기까지 하려고 해” 했더니 울신랑 “배고프면 고구마 먹어” 그럽니다. “난 날고구마 안 먹어. 내가 멧돼지야. 흙 묻은 고구마 먹게.” 그 소리에 울신랑 한바탕 웃습니다. 조금은 멧돼지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밤에 교회 갔다 왔더니 울 신랑 고구마를 쪄놓았다가 건네줍니다. “와∼달다.” 밤에 간식 잘 안먹는데 고구마를 두개나 먹었습니다. 우리가 사다 놓은 것도 있는데 그것보다 우리 손으로 주워온 고구마라 그런지 더 맛이 납니다.

울신랑 주워온 고구마 저울에 달아보기까지 했나 봅니다. 22kg이랍니다. 고구마 먹으면서 울신랑 그럽니다. “내일 고구마 주우러 또 갈까?” ㅎㅎ 울신랑도 미처 가보지 못한 그 커다란 고구마밭이 눈에 아른거리나 봅니다. 


 



염소밥상이 건강에~~
 
동네 할머니들 돌아가면서 김장하시느라 난리입니다. 어제는 옆집 삼을할머니 바람 불고 추운 날 배추와 무를 뽑느라고 정신 없으셨습니다.

저녁에 택배 포장하고 있는데 배추와 무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며칠 전 내가 배추쌈을 하도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고 쌈 싸먹으라고 가져오셨다며 힘이 드신지 앉으십니다. “몸은 안 따라주고 자식들 김장 안 해 주자니 서운하고 해주자니 넘 힘들고….” 말끝에 한숨이 묻어나옵니다.

동네 할머니들 김장하시는 것 보면 정말 줄행랑치고 싶을 정도로 무섭습니다. 심지어는 500포기에서 700포기까지 하는 분들도 계시니. 평소엔 힘들어 죽겠다며 다 죽어가는 모드신데 김장할 땐 그 많은 것들 끄떡없이 해치우는 모습을 보면…. 아마도 그것이 엄마의 힘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 “난 이렇게 늙어선 자식들 김장 안 해줄 거예요. 키워줬으면 그 정도는 알아서 해먹어야지” 했더니 “정우엄마도 이다음에 봐, 그게 그렇게 되나” 약속이나 하신 듯 똑같이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양이 적던 많든 보통 일이 아닙니다. 각자 집에서 하면 별것 아니어도 할머니들이 같은 날 한꺼번에 하는 날엔 속 버무려줄 사람이 없어 애를 태울 때도 많습니다.

그뿐이랴,^^ 택배 보낼 때도 예전과 달리 조금만 많이 담은듯하면 택배기사는 안 가져가려 하고 할머니들은 그냥 가져가라며 사정사정 할 때도 있습니다. 아직 젊디젊은 나도 김장때가 되면 한 달 전부터 걱정이 늘어지는데. 예전엔 100포기도 혼자서 슬금슬금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리 했는지 내가 생각해도 대견스럽습니다.





동네 김장이 대부분 끝나가는 것을 보니 우리도 이번 추위가 지나가면 김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치냉장고가 있어 따뜻할 때 하면 좋은데 우째 맘처럼 잘 안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알타리 김치 두통 담고 남은 시래기 잔뜩 삶아 된장 풀고 멸치 넣어 자글자글 끓여먹으니 맛나더만. 두 부자는 몇번 먹더니 시큰둥합니다. 노오란 배추 쭉쭉 찢어 매콤하게 볶아서 주고, 배추쌈 주고…. 매일 풀만 주니 울 막둥이 “우리 밥상은 왜 매일 푸른 초원이냐”고 항변합니다. 염소밥상이 건강에 최고인 것을 울 막둥이는 아직 모르나봅니다. 가을엔 배추와 무만 있으면 먹겠더구만. 어찌 되었건 아이들은 남의 살이 더 좋은가봅니다.





감자에 양파 넣고 볶아주니 막둥이 “난 고기 주는 줄 알았네. 냄새는 고기냄새였는데…” 합니다. 점심 먹으면서 그 소리를 울신랑한테 했더니 자기도 불고기 주는 줄 알았다나~~. 얼마나 실망했을까~~.

그런데 이집 저집에서 가져다준 무와 배추가 있으니 우리 밥상 한참 더 염소밥상이 될 것 같은데…. 설마 두 부자 고삐 풀고 도망가는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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