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토익시험 응시료




토익 시험의 응시료가 올랐다. 이전 토익 시험 응시료도 3만 9000원으로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토익위원회가 1월부터 응시료를 7.7% 인상했다. 올해부터는 토익 한번 치르는데 4만 2000원이 필요한 셈이다.

이 같은 응시료 인상안이 공지되자마자, 온라인이 발칵 뒤집혔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부담스럽던 토익 응시료가 더 비싸진다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대다수 기업이 신입사원 채용에 일정 수준 이상의 토익 점수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반발하며 나선 것이다.

실상 어떤 시험 응시료가 3000원 오른다는 단순한 사실의 공지가 있었을 뿐인데 반응이 꽤 뜨겁다. 만약 다른 시험이었다면 이렇게 시끄러웠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기능사 시험과 자격증 시험도 수시로 응시료가 인상되고 있지만 이렇듯 이슈가 되진 않았었으니까 말이다.

토익 응시료 인상에 대해 이렇듯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청년이라면, 아니 비단 청년만이 아니라도 토익 점수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특정 자격증이 관련된 특정업 종사자에게만 요구되는 사항이라면, 토익 점수는 전반적으로 모든 경우에 요구되는 외국어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1년에 몇 번 있는 타 자격증 시험과는 달리 매달 있는 토익 시험에도 불구하고 접수장이 모자랄 만큼 많은 응시자가 몰릴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나은 점수를 얻기 위해 계속해서 응시를 하는 것이다. 토익 응시료가 비싸다고 하더라도 취업을 준비하는 이상,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매달 들어가는 토익 응시료가 비단 토익 점수를 위한 유일한 비용인 것도 아니다. 토익을 위한 수많은 학원들과, 몇 점이라도 올리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가는 학원비들. 당장 서점에만 가도 외국어 영역에는 토익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취업 준비생에게 토익 응시료 3000원 인상은, 비단 3000원의 인상이 아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겨우겨우 버티던 사람들에게 그 3000원은, 탑을 무너트리는 깃털일 수도 있다.

아는 선배는, 토익점수가 800점대 후반이었다. 990점이 만점인 토익 점수를 생각해보면, 900점에 가까운 선배의 점수는 사실 굉장히 높은 점수다. 듣기와 쓰기에서 각각 50점 가량씩 밖에 감점되지 않은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매달 토익시험을 치러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점수로 지원하기 위해서 말이다. 원서를 마지막으로 쓰던 그 달까지도, 선배는 계속 토익을 치렀다. 결국 선배의 토익 점수는 900을 훌쩍 넘겼고, 그 900이라는 숫자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0’들이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700점을 위한 학원비와 응시료들. 800점을 위한 학원비와 응시료, 또 900점을 위한 학원비와 응시료. 과외로 들어가는 어학연수비. 그리고 더 억울한 점은, 이렇게 어렵사리 취득한 점수도 2년 뒤에는 기간이 만료되어 버려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인정이 되는 2년 안에, 취직을 해야만 한다.

조금 더 억울한 점은, 그렇게 겨우 이뤄놓은 토익 점수가, 결코 실질적인 ‘외국어 능력’이 되어주진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선배도, 외국인 앞에서는 혀가 마비되어버리는 전형적인 한국인이다. 글쎄. 토익 성적이 ‘외국어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라는데, 과연 그런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드는 대목이다.

토익은 토익이고, 영어는 영어다. 실제로 공부 자체가 ‘별개’의 것이다.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외국어 능력도 외국인과는 대화도 제대로 못하는 토익 고득점자처럼, 어딘가 비뚤어진 일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어 능력이 필요한 기업에서 토익 점수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영어 능력을 가진 지원자를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일까? 더 나아가, 토익을 요구하는 모든 기업들이 과연, 실무에서 외국어 시험 고득점자 수준의 영어 능력을 요구하는 것일까. 단지 다 갖추고들 있으니 그중에 제일 높은 사람을 뽑는 것이라 모두들 요구하고, 또 준비하는 것이라면, 이만큼 소모적인 일도 없다. 심지어 안 그래도 비싼 응시료가 3000원 더 오른 이 판국에 말이다.

외국어에 대한 스트레스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일도 아니다. 외국어라고 해봤자 결국 영어다. 일본에서도 영어는 많은 사람들의 골칫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외국인 앞에서 얼어붙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학교엔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꽤 많다. 단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잘 할 수 있는 진짜 ‘영어’만을 일컫는 게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영어를 잘하는 편에 속한다. 그가 아니더라도, 영어를 ‘아주 못하는’ 학생들은 아마 거의 없다.

나만 해도 영어가 가장 취약하지만, 그래도 전국적으로 따져 봤을 때, 일단 수학능력평가 외국어 영역에서 끔찍한 점수를 받았다면 대입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 일단은 그래도 ‘아주 못함’의 범주에 들지는 않는다고 봐야한다.

학교에서는 필수적으로 영어 쓰기 수업이나, 영어 토론 수업을 이수하게끔 한다. 나는 영어 쓰기 수업을 들었다. 원어민 여교수님의 수업이었는데, 간단한 저널이나 설명문, 논설문 따위를 써서 수업시간 내에 제출하면 그것을 평가해서 점수를 매기는 시스템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영어 문법에 약한 나지만, 작문은 내가 아는 문법만 잘 활용해서 쓰면 되는 것이라, 내 작문 점수는 그리 나쁘진 않았다. 교수님과도 꽤 친해져서 나중에는 꽤 사적인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놀란 점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 클래스 내에는 아주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도 눈에 띄곤(질문과 대답을 유창하게 구사한다든지 하여) 했지만, 거의 대다수의 학우들이 교수님과 말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내 영어 실력이 결코 훌륭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실제 의사소통에는 나보다 더 떨어지는 학우도 많았다. 읽기와 듣기, 틀린 문법 찾는 것에는 익숙한 친구들이 작문과 말하기에서는 자신의 ‘영어’ 실력만큼 훌륭하진 못했던 것이다. 영어가 최대 약점이자 고민인 내가, 우리 학교의 모든 과가 모인 영어 쓰기 교양 수업에서 A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교수님은, 내가 아마 이 교실에서 영어를 제일 못하는 학생이거나, 혹은 거의 하위권에 있는 학생이라고 얘기하자, 의문을 표했다. 대체, 그 ‘영어’는 기준이 뭐냐고. 물론 내가 말하거나 쓰는 영어는 대개 알아들을 수는 있어도 제대로 된 문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쉬는 시간에 도망가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학생은 나를 포함 몇 되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IT및 여러 분야의 발전으로 공간적인 한계가 줄어들면서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대가 도래했다. 거래처가 비단 한국만으로 한정되지 않는 이때에 외국어는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만국공통어 영어는, 그중에서도 단연코 중요한 언어다. 영어의 유창한 구사가 사업의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한 경우도 있다. 영어의 필요성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사회가 요구하는 ‘영어 능력’에는 문제가 있다. 경쟁적으로 높은 점수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정말로 그렇게 얻은 점수라는 것이 단지 과열된 경쟁의 산물일 뿐 정말로 글로벌 시대가 요구하는 ‘영어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점수로 환산되는 토익 능력이 아닌, 정말로 해당 기업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외국어 능력의 정도만큼의 자체적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한다면 토익 응시료 3000원 인상에 눈물 흘리는 트위터러도, 기사 댓글에 무턱대고 내 등골 다 뽑아가라며 욕을 해대는 누리꾼도 토익이 3000원이 올랐든지 만원이 올랐든지, 아 올랐구나 하며 기업에서 사용되고 또 요구되는 ‘진짜 영어’를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신이 희망하는 기업, 부서가 외국어 읽기 능력을 요한다면, 읽기를 준비할 테고, 어느 정도의 회화를 원한다면 회화를 공부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새로운 경쟁을 만들어 오히려 다양화된 경쟁에 더 힘들지 모르겠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수년을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얻어낸 토익 점수를 손에 쥐고도 외국인과는 한마디도 못하는 비효율의 극치인 지금 시스템보다야, 훨씬 더 효율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내가 취업하는 때까지는 그런 획기적 변혁이 있을 리 없을 테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오른 토익 응시료를 결제해야 할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난다. 으∼토익만세.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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