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일본식 라멘집에서의 생생 알바 체험기-1회

올해 열아홉 살인 기자. 고등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학생은 더더욱 아니고, 직장인이라기엔 너무 나이 많아(?) 보이기도 하고…(하하;;). 어쨌든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서 참 많은 걸 경험하고 배우는 중이다. 취미생활도 즐기고, 배우고 싶었던 악기도 배워보고, 책을 읽는 시간도 많아지고 말이다. 최근엔 처음으로 색다른 경험에도 도전해봤다. 그건 바로 ‘알바’라고도 하는 아르바이트다.





아르바이트는 주로 대학생들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요즘은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용돈이 부족하거나 집안사정이 어려운 또래 친구들이 일찍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히려 시간이 많은 기자보다 학교 다니느라 바쁜 친구들이 더 많이 한다. 기자의 제일 친한 친구들의 경우엔 일일알바(하루만 하는 아르바이트)를 자주한다. 호텔(호텔리어: 호텔에서 잡일과 서빙을 한다), 패스트푸드점, 피팅모델(인터넷쇼핑몰 의류모델) 등 아직 미성년자의 신분이라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다. 친구들이 열심히 일하고 일급을 받는 걸 보면서 그간 내심 부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으로만 했던 아르바이트를 드디어 해볼 기회를 잡았다. 기자와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인 친구의 고등학교 선배가 일하는 ‘라멘(면과 국물로 이루어진 일본 대중음식. 한국의 라면이 여기에서 나왔다) 가게’에서 알바생을 구한다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께 여쭤볼 것도 없이 일단 면접을 보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그 다음. 바로 부모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아내야 하는 순간…. 무엇이든 열심히 최선을 다할 각오가 돼있으면 해도 좋다는 아빠의 시원한 답변이 돌아왔다.


# 기자가 일하는 라멘 가게의 내부 모습


우선 알바 시작 하루 전날 면접을 봤다. 친구를 통해 약속시간을 잡았다. 일찍 회사 일을 마치고 약속시간에 정확히 맞춰 라멘가게에 도착했다. 집과 매우 가깝고 신문사와도 멀지 않아 좋은 위치.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건장한 남자 알바생이 씩씩하게 인사를 해온다. “어서 오십쇼∼!!” 면접을 보러왔다고 했다. 이미 얘기를 들었던 것인지 알바생은 손님이 없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지금은 바쁘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약속시간에 맞춰오느라 더운 날 마라톤을 했더니 온 몸에 땀이 흐른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소리가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하마터면 가게를 총책임지고 있는 실장님과 땀에 범벅된 모습으로 첫 대면을 할 뻔했기 때문이다.

땀을 식히며 라멘가게 내부를 천천히 둘러봤다. 이른 저녁시간이었는데도 손님이 꽤 있었다. 알바생은 네명. 모두 남자다. 그 중 한명이 다가와 얼음물을 주며 말했다. “슬기(이곳에 나를 소개해 준 내 친구다) 친구 분 맞으시죠?” 인사를 했고, 그 알바생은 슬기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오분 정도 지나 땀도 식고, 얼음물을 건넸던 알바생이 다시 왔다. “실장님께서 지금 바쁘셔서 그런데 혹시 주방에서 얘기를 나누실 수 있나요?” 뭐 안 될 것 없다. 오히려 딱딱한 분위기보단 그게 낫겠다 싶어서 냉큼 따라갔다. 주방. 평화로운(?) 홀과 다르게 주방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곳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고 계시는 아주머니들. 그 중 엄청난 위엄을 풍기는 한 분, 바로 실장님이셨다. 역시나 주방장을 겸하고 있는 실장님답게 크나큰 프라이팬을 한 손으로 척척 능숙하게 돌리며 열심히 요리를 하고 계셨다. 그렇게 분주한 틈에서, 실장님의 요리와 함께 면접은 시작됐다. 내용을 대충 얘기하자면 기자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하는지 등등이다. 실장님께서는 “내가 좀 싸가지가 있어. 그래서 네가 싸가지가 있으면 일 잘 할 수 있을 거고 싸가지가 없으면 결국 그만두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거야. 열심히 해봐”라고 덩치에 맞게 시원시원하게 얘기해주셨다. 역시 겉모습에서 풍기는 위엄만큼 말씀도 털털하고 직설적이었다. 오히려 나와 잘 맞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다음 날부터 출근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드디어 떨리는 알바 첫날. 가기 전 실장님이 준비해오라던 주민등록등본과 보건소에서 떼는 보건증, 통장 복사본, 긴바지를 챙겼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라멘가게에 도착했다. 나머지 알바생 세 명은 이미 도착해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기자는 알바생이 건네주는 앞치마를 받았다. 유니폼은 받지 못한 상태여서 가져간 티셔츠로 대신했다. 아무래도 알바생들이 남자들뿐이어서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고 규정상 머리도 야무지게 틀어 올려 묶어야 했다. 워낙 땀이 많은 기자라지만 긴장을 해서 그런지 짧은 바지에서 긴 바지로 갈아입는 게 버거울 정도로 온몸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옷도 다 갈아입었겠다, 이제 일에 대해 배울 차례다. 우선 나와 같이 일하게 될 세 명의 알바생. 한 명은 나와 동갑, 다른 한명은 여기서 제일 오랫동안 일했고 올해 스무 살인 오빠, 그리고 그 오빠의 친구다. 기자까지 이렇게 네 명이서 홀을 맡아 서빙과 음식 세팅을 한다. 먼저 동갑인 알바생이 메뉴판을 들고 와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메뉴 숙지는 서빙과 주문을 받을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기자는 메뉴판을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그저 뱅뱅 겉돌 뿐인 이놈의 눈. 뭔 이름이 이렇게 어려운지…뭔 종류가 이리 많은지…. 그냥 계속 입으로만 중얼중얼 메뉴를 읊을 수밖에. 그리고 가장 오래 다닌 오빠에게서 홀에서의 중요사항과 주문받는 법, 세팅하는 법 등등을 배웠다.





메뉴를 외우고 있는데 손님이 들어왔다. 첫 주문을 받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일단 주문을 받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주문을 받은 뒤 기계에 입력시켜 인쇄된 주문표를 뽑아야 되는데 이 역시 처음이고 생소한 일이다보니 쉽지 않았다. 간신히 주문을 마친 뒤 서빙을 시작했다.

그렇게 서툴지만 느릿느릿 하나씩 해나가고 있는데,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라멘마다 순한 맛과 매운맛이 있다. 기자는 순한 맛을 시켰던 손님의 주문을 까먹고 매운맛으로 잘못 주문해버렸다. 오래 일한 오빠가 대신 손님에게 사과를 드렸다. 다행히도 그 손님은 그냥 먹겠다며 괜찮다고 했다. 에휴∼. 절로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오빠들이 ‘쉬~쉬~’ 해준 덕분에 실장님께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동갑내기 친구의 말로는 주문실수를 했을 때 제일 많이 혼난다고 한다. 오빠들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다^^.






# 메뉴가 너무 많아 외우기가 힘들 정도. 가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렇게 실수를 저지르고 만 기자는 기가 한풀 꺾인 채 일을 계속해야 했다. 오빠들은 “나는 초기에 2주 정도 하루도 빠짐없이 실수했어. 괜찮아”라며 위로해줬다. 그래, 실수에 목매봤자 나아질 것 없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 주문할 때 실수를 막기 위해 대충이라도 메모지에 적는 방법을 선택했다. 더 빨리 움직이고 최대한 웃으며 친절하게 손님을 맞았다. 그렇게 허겁지겁 첫날 다섯 시간의 알바가 끝이 났다.

마감. 오빠의 지시에 따라 치우고 닦고 쓸고 했다. 하도 정신이 없다보니 저녁을 안 먹은 사실도 잊고 있었다. 원래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저녁을 잘 안 먹는 기자. 하지만 여기서는 메뉴에 있는 음식이 저녁으로 나온다. 이름도 외우고 좋을 것 같아서 알바생들이 모여 식탁에 앉았다. 알바 하느라 땀뻘뻘 흘린 뒤 먹는 저녁은 정말 꿀맛이었다. 그리고 친구와 오빠와 다 같이 모여앉아 수고했다 격려하면서 먹으니 더욱더 맛있게 느껴졌다.

밥도 다 먹고 마무리도 다 했다. 다시 화장실로가 원래 옷으로 갈아입었다. 거울을 봤다. 거울에 비친 나는 땀에 흠뻑 젖어 마치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그래도 얼굴은 빛나보였다. 다섯 시간동안 아무 생각 안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한 내가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뿌듯하고 가뿐했다. 이 날은 평소보다 사람이 많이 없는 날이었단다. 다음날이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느낌이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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