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갈등 MBC노조 “재파업 수준 투쟁”

MBC노동조합이 170일간의 파업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재파업 수준의 실력행사에 나설 방침이어서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파업을 접고 업무에 복귀한 지 55일이 지났지만 구성원간 갈등은 곳곳에서 불거지고 노사간 대립은 여전하다. 특히 사측은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해고, 정직, 감봉 등 징계를 연이어 강행하고 있다. 더욱이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9기 이사장 김재우 현 방문진 이사장의 연임은 사태를 더욱 확산시켰다. 노조는 “김 이사장이 8기 이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벌어진 MBC 파업 당시 김재철 사장 감싸기에만 급급했다”며 전면적으로 들고 일어날 태세다.





MBC 노조가 10일부터 연가투쟁에 돌입했다. 노조는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총파업 잠정 중단 50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은 “지난 50일 동안 MBC는 정상화와 거리가 먼 파행상태를 보이고 있다”며 “총파업이 끝난 후 김재철 사장은 심각한 불법행위와 반인권적 행태로 MBC 정상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파업을 접고 올라갔던 것은 MBC를 빠르게 정상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복귀 후 50일이 지났지만 내부는 파업 전보다 더 붕괴됐다”며 “더 이상 지켜보기에는 인내심이 붕괴됐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며 지난 1월 30일 파업을 시작해 7월 18일 업무에 복귀했다. MBC는 지난 런던올림픽 방송을 분위기 반전의 기회로 여겼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시청률은 지상파 방송사 중 최하위에 머물렀고, 어이없는 방송사고와 불필요한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받았다. 사측은 지난달 14일자 특보에서 “170일간의 파업과 후유증 속에서 준비한 방송치고는 상당히 선전했다”고 자평했지만 타방송사와 경쟁에서 참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업무복귀 전 가장 우려됐던 부분은 파업기간 채용된 계약직 인력과의 갈등이었다. 사측은 파업기간 계약직 인력 66명을 채용했다. 노조가 이들을 동료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가운데 계약직 인력들은 보도국과 시사교양국을 중심으로 제작현장 곳곳에 투입됐다.


#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


노조가 업무에 복귀한 지 두 달이 다 된 지금 계약직 인력의 업무 적응력이 도마에 올랐다. 한 노조원은 “시용 인력들의 미숙한 현장 대처 능력에 대한 얘기가 많이 들려온다”며 “아무리 애를 써도 본의 아니게 사고가 계속되다 보니 조직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올림픽방송에도 계약직 인력이 상당수 투입됐다. 올림픽방송단이 파업기간 꾸려지다 보니 숙련된 기존 인력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스포츠제작국 한 관계자는 “올림픽처럼 중요한 이벤트에서는 숙련 인력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역량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며 “게다가 서로 손발을 맞춰볼 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으니 어이없는 사고가 생기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고 말했다.

최근에 불거진 MBC 보도국 및 시사제작국에 증설된 고해상도 HD급 CCTV 증설과 MBC 회사망을 접속한 누구에게나 자동 설치되는 보안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이러한 MBC경영진의 행보에 대해 노조는 “내부 구성원에 대한 감시용”이라며 사찰 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 이용마 MBC노조 홍보국장

부글부글 끓는 내부

업무복귀에 맞춰 단행된 대규모 인사의 후유증도 크다. 지난 7월 인사개편에서 평사원 인사해당자 128명 가운데 50여 명이 타부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존 업무와 무관한 부서로 전출된 사람들은 업무 적응에 한동안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발령난 신설부서로 가보니 제대로 된 사무실조차 없었다든지 일을 주지 않아 책상에 앉아서 자리만 지키고 있다든지 하는 웃지 못 할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총원의 32%가 해고, 정직, 대기발령 등 징계를 받은 시사교양국은 업무 공백을 빚고 있다.

‘PD수첩’은 기존 제작진의 절반 이상이 교체된 가운데 메인 작가들의 교체 사태로 사실상 제작이 중단된 상태다. 진행자가 타부문으로 전출된 ‘불만제로’는 일선 제작진의 반발에도 폐지가 유력한 상황이다. 다른 부서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PD수첩’ 최승호 PD는 “일은 어떻게든 돌아가게 한다지만 서로 웃고 떠들면서 회식할 분위기는 아니다”며 “사측의 행태 때문에 내부적으로 부글부글하는데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이라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외에도 사측은 영상취재부문을 일괄 폐지해 보복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MBC는 영상취재1부와 영상취재2부, 시사영상부를 폐지하고 카메라기자들을 타부문 포함 10여개 부서로 분할 발령했다. 이에 MBC영상기자회는 “이번 조직개편의 가장 큰 특징은 ‘카메라 기자’ 직종 한 부문만을 노렸다”며 “이 모든 과정은 영상취재부문 구성원 어느 누구와도 협의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통보되었다”고 개탄했다.

노조 역시 이번 사태와 관련, ‘조직개편안을 일방 통보하고 관련 인사발령을 바로 단행한 건 단체협약 제9조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며 원천 무효’라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사측에 발송한 상태다.

MBC 단체협약 제9조에 따르면 주요 규정을 제정, 개폐할 경우 사전에 지부와 협의해 반영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각 사는 이사회 심의에 앞서 최소한 1주일 전에 취지와 내용을 지부에 충분히 설명하고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영하 위원장은 “모든 법적인 수단을 강구해 대응할 것이며 향후 발생될 노사관계 파행의 모든 책임은 회사에 있음을 엄중하게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부적격자들 연임

이런 상황에서 MBC 최대주주인 방문진 김재우 이사장의 연임은 노사 갈등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방문진 이사진은 지난달 27일 여의도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8기 이사장 김재우 이사를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김 이사장은 9기 이사장으로 재선출되면서 2015년까지 임기를 이어가게 됐다.

김 이사장을 비롯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차기환 현 방문진 이사 등 3명은 방문진 이사 공모에 지원해 재선임됐다. 170일간 지속된 MBC 장기 파업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은 재선임 당시 부적격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정영하 위원장은 “현 이사들의 양식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며 박사학위 논문 표절, 공금 유용 의혹 등을 들어 김 이사장의 부적격성을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또 “8기 이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방송사상 최장기 파업을 맞고서도 연임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 배경에는 청와대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조는 김 이사장이 8기 이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벌어진 MBC 파업 당시 김재철 사장 감싸기에만 급급했다며 김재철 사장의 온갖 비리 의혹을 끝내 모른 체했다고 비난했다. 정 위원장은 “새누리당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며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김재우 씨를 이사장으로 연임시킨 것은 여야 합의에 사실상 위배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용마 MBC노조 홍보국장은 “김재우 씨와 김재철 사장은 사실상 MBC 파행의 공범”이라며 “방문진 이사장 연임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혀를 찼다. 그는 또 “공영방송 MBC를 망가뜨린 김재우를 또다시 방문진 이사장으로 선임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여야는 국민들과 언론 노동자들에게 약속한 대로 김재철을 조속히 해임시키고 MBC 정상화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치권에서는 MBC 김재철 사장의 퇴진 협의와 관련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놨다. 민주통합당 정성호 대변인은 “9기 방문진 이사진의 역사적 소명은 김 사장을 해임하는 것”이라며 “새누리당과 민주당도 원내협상에서 김 사장 퇴진을 사실상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정 대변인은 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MBC 파업 사태에 대해 ‘노사 간 타협하고 대화할 문제이지만 징계사태까지 간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한 발언을 언급하며 “박 후보와 새누리당은 그날의 약속을 오늘 지키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김 사장의 퇴진이 결정되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새누리당과 박 후보에게 있음을 밝혀둔다”고 경고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김 사장의 퇴진과 관련해 어떠한 합의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철우 원내대변인은 “우리 당에서는 원내협상을 한 적도 없고 김 사장에 대해서 퇴진의 ‘퇴’자도 거론한 적이 없다”며 “어떠한 협상도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노조는 ▲고화질 사내 CCTV 교체 및 보안 프로그램 등 사찰 도구 즉각 철거·책임 규명 ▲인권탄압적인 교육발령, 보복인사, 부당징계 철회 ▲‘PD수첩’ 정상화 ▲영상취재부 복원 ▲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 불신임 결과 수용 등을 요구했다. 노조는 이어 “이 같은 안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중대한 결정’이란 재파업을 말한다.

현재 MBC 노사 갈등은 지난 파업의 갈등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야간 대립으로까지 갈등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사태 추이에 관심이 집중된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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