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일본식 라멘식당에서의 생생 알바 체험기-4회


올해 열아홉 살인 기자. 고등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학생은 더더욱 아니고, 직장인이라기엔 너무 나이 많아(?) 보이기도 하고…(하하;;). 어쨌든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서 참 많은 걸 경험하고 배우는 중이다. 취미생활도 즐기고, 배우고 싶었던 악기도 배워보고, 책을 읽는 시간도 많아지고 말이다. 최근엔 처음으로 색다른 경험에도 도전해봤다. 그건 바로 ‘알바’라고도 하는 아르바이트다. 친구의 소개로 들어간 일본식 라멘식당에서의 알바 체험기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린다.





우리 가게에서는 서비스가 나가는 경우가 두 가지 있다. 쿠폰을 다 모았을 경우, 이곳서 일하는 사람들의 친구나 식구 등 친분 있는 사람이 올 경우다. 대부분 알바생의 지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초기엔 한 알바생의 친구들이 놀러와 엄청나게 시켜먹고 갔다. 실장님의 센스 있는 보답으로 약간의 할인혜택과 함께 특별서비스로 ‘고로케(찹쌀 도넛)’ 제공!
주말에만 일을 하는 알바생은 평일에 친구와 함께 음식을 먹으러 오기도 한다. 그런 경우엔 그 알바생이 알아서 셀프(self)로 해결한다. 직접 주문하고 먹고 치우고 가는 것이다. 가끔 일하고 있는 기자의 입에 실장님 몰래 음식을 넣어주기도 한다. 역시 몰래 먹는 떡이 더 맛있다고 그럴 때마다 먹는 음식은 정말 꿀맛이다.

지인들의 방문

한번은 같이 일하는 한 알바생의 가족들이 왔다. 입구에서 기웃기웃 거리시던 한 중년의 부부와 할머니가 기자를 불렀다. “아가씨, 여기 OO있어요?” 주방에 있다며 들어오시라고 했다. 간단히 식사를 하러 오신 듯했다. 주방으로 들어가 그 알바생을 불렀고, 그는 쑥스러워하며 부모님과 할머니라고 했다. 직접 주문을 받고 추천도 해드렸다. 그 부모님은 처음 알바를 해보는 아들 응원 차 오신 것 같았다. 오순도순 즐거운 모습이었다.

아직 기자의 지인들이 찾아 온 적은 없다. 하지만 우연치 않게 만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한 번은 너무 바쁜 저녁시간이었다. 한 커플이 왔다. 어라? 튀는 노란 머리에 작은 키, 동글동글한 몸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여성인데…. 저런 개성 있는 외모면 기억 안 날 리가 없는데… 아∼맞다, 동네 미용실에서 일하는 언니다! 그렇게 자주 가진 않았지만 갈 때마다 무척 친근하게 대해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던 터였다. 그 언니가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일하는 곳에 알고 있는 사람이 왔다는 설렘에 식사를 마친 뒤 돌아갈 때까지 기분이 들떴다.

선생님, 선생님!!

또 최근엔 아주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와 어여쁜 여자 커플이 유모차를 끌고 온 일이 있다. 유모차 안의 아기는 볼 살이 통통한데다 아주 귀엽게 생겼다. 가만 보니 그 잘생긴 남자는 바로 기자가 다닌 중학교의 과학 선생님이었다. ‘담임 반이 된 적이 없어 기억날 일 없으시겠지…ㅜㅜ’라는 생각에 처음엔 인사도 못 드린 채 알바생들에게만 소곤소곤 사실을 얘기했다. 망설이다가 서비스 음식을 내드리면서 인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비스 메뉴는 기자가 직접 튀기는 ‘모듬 고로케’. 아니! 그런데 잠깐 선생님 쪽을 보니 벌써 다 드시고 일어나시는 게 아닌가. 고로케 튀기는 일을 포기하고 나가시려는 선생님께 달려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 그래^^. 어쩐지 많이 본 얼굴이라서 계속 쳐다봤지”라는 선생님. 물론 자세히 기억은 안 나겠지만 어쨌든 가물가물해도 기억이 난다니 다행^^. 할인된 가격으로 결제를 도와드리고 가게 앞까지 배웅을 해드렸다. 이렇듯 가게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세상 참 좁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기자의 친구들은 한번 먹으러 오라는 기자의 말에 항상 “너 월급날 찾아갈게^^. 월급날 언제야?”라든지, “너가 쏘는 거지?”라고 얄밉게 얘기한다. 모두 다 수능생인 입장.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너무 바쁜 탓에 못 오는 거라고 기자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친구들, 수능 끝나곤 한 번씩 오라고~ 서비스 많이 해줄 테니까!

라멘이냐, 쌀국수냐

우리 가게 바로 앞엔 쌀국수 가게가 마주보고 있다. 파는 메뉴가 비슷해서인지 우리 가게 실장님의 경우 그 가게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쌀국수 가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기자가 처음 일하던 날에는 다른 알바생들이 쌀국수 가게와 얽힌 뒷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두 가게 모두 개방형이라 내부가 모두 드러나 있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동선 하나하나가 서로의 가게에서 훤히 들여다보인다. 손님이 좀 적을 때나 딱히 할 일이 없이 한가할 때면 건너편 쌀국수 가게로 시선을 돌린다. 이미 그곳에서 일하는 알바생들이 누구누구인지는 다 파악했다. 알바생들은 모두 여자다. 아주 오래 일한 남자 한명을 빼곤. 주로 일하는 알바생은 노란머리 여자, 최근 새로 들어온 단발머리 여자, 열여덟 살에 바가지소년(여자지만 우리가 그렇게 부른다^^), 이십대로 보이는 삼십대 후반의 남자다. 가게 안에선 손님이 없을 때도 웃거나 떠들지 못한다. 때문에 쌀국수 가게 알바생들을 구경하는 게 일과가 돼버렸다. 아마 우리가 바쁠 땐 그 곳에서도 우릴 구경하고 있겠지?(하하)

우리의 얘깃거리는 대부분 위에서 얘기한 바가지소년에 집중된다. 바가지소년은 그의 머리 스타일에서 따온 별명이다. 그가 처음 쌀국수 가게에 들어왔을 땐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짧은 머리에 중성적인 외모가 알쏭달쏭하게 했던 것이다. 며칠간은 우리 알바생들 사이에서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가벼운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흡연을 하러 나가는 틈에 알게 된 알바생이 그가 여자라는 결론을 들고 왔다.

남자야, 여자야

그러던 어느 날, 남자 알바생은 쓰지 않기로 유명한 그 쌀국수 가게에서 남자 아이 한명이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아, 자세히 보니 그 바가지머리다. 바가지가 무거웠던지 짧게 반삭을 했다. 새로운 화젯거리다 싶어 이 사실을 잽싸게 다른 알바생들에게 알렸다. 알바생들이 그를 구경하기 위해 우루루 몰려나왔다. 그의 모습을 본 알바생들의 반응은 단 하나 “헐…”이었다. “난 저런 거 너무 싫어. 여자는 여자답게 하고 다녀야지, 여자가 남자같이 저게 뭐야…”라는 얘기가 뒤따랐다. 뭐, 알게 뭐야? 그건 바가지소년만의 취향으로 내버려 두자.

가끔은 우리 가게와 쌀국수 가게가 상호 소통하는 일도 생긴다. 한번은 장사가 좀 안 되는 날, 실장님께서 음식을 만들어 알바생을 시켜 쌀국수 가게에 갖다 주라고 했다. ‘어, 웬일이지? 무슨 일 있으시나?’ 했으나 원래 종종 그렇단다. 그리고 얼마 후 보답이 왔다. 쌀국수 가게 매니저님이 우리 그릇에 쌀국수 가게의 음식을 담아 보낸 것이다. 덕분에 알바생들이 포식을 했다. 우리 가게의 볶음우동과 비슷한 맛이었다. 걸쭉한 국물에 달짝지근한 맛, 버섯과 고기가 어우러져 맛있었다. 항상 그 곳 음식 맛이 궁금했는데 나름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실장님의 눈치를 봐서 ‘맛있다’는 말은 함부로 내뱉지 못했다.


인사는 무조건 큰소리로

실장님의 경쟁심은 엉뚱한 곳에서도 분출되곤 한다. 처음 일하던 날 기자에게 “저 가게보다 우리가 뒤처져선 안 되지 않겠니? 알바생들이라도 잘 뽑았다는 소리 듣게 열심히 하자. 저 가게에서 너희 목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인사도 크게 하고, 손님도 친절하게 맞아야 된다”고 신신 당부를 하셨다. 그 후로 기자의 목소리는 커졌고, 실장님과 이모님 모두 만족해하셨다.
언제부턴가 쌀국수 가게에도 새로운 알바생이 들어오면서 우리들에 버금가는 크기의 인사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경쟁이구나…. 기자는 이에 질세라 더욱 친절하게 손님들을 대하고, 인사도 더 큰 목소리로 더 열심히 하고 있다. 덕분인지 ‘머리 묶은 친절한 여자 알바생(기자다^^;)’을 다시 찾아오는 손님들도 생겨났을 정도다. 점점 더 일 할 맛이 난다. 일부러 기자를 찾아오기까지 한 손님들을 생각하니 자부심도 생긴다. 실장님의 기대에 맞게, 손님들의 기대에 맞게, 쌀국수 가게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 아참, 주문실수는 이제 끝!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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