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기념일





흔한 365일 중 하루일뿐이다. 일요일도 아니고, 공휴일도 더더욱 아닌,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어느 목요일. 하지만 내겐 단순한 목요일일 수 없는 하루였다.

그날 00시 00분부터 축하 문자메시지가 핸드폰을 울린다. 고마운 친구들. 전날엔 부모님께서 전화를 해주셨다. 페이스북이나 싸이월드 등에서 ‘오늘은 박신영님의 생일입니다’ 하는 시키지도 않은 공지를 지인들에게 죄 띄우는 바람에 하루 종일 축하 메시지는 참 배부르게 받았다.

아침 7시부터 친한 친구 녀석이 문을 두드린다. 산발머리를 하고 문을 열어줬더니 대뜸,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러대며 들어온다. 두 손에 뭔 바스락거리는 봉투가 들려있다. 뭔고 했더니 미역이랑 소고기, 참기름이다.

7시에 들이닥쳐서 생일 미역국이라고 미역을 이제 불리고 앉았다. 어이가 없지만 한편으론 귀엽기도 해서, 다 되면 깨워라 하고 부족한 아침잠을 조금 더 보충한다. 아니, 하려했다. 마늘은 어디 있니 간장은 어디 있니 자꾸 불러 대서 제대로 자진 못했다. 그렇게 완성된 미역국은 너무 짜다. 그래도 챙겨준 마음이 예쁘니 물을 타서 냠냠 맛있게 먹는다.

시계를 보니 오전 수업이 아슬아슬 할 것 같다. 대충 친구를 쫓아내고 교양 수업을 들으러 달린다. 평상시보다 과히 먹은 속이 달리는 중에 울렁울렁한다. 어쩐지 아려오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달려서 아슬아슬하게 강의실에 도착했다. 이미 출석을 부르고 계신다. 다행히도 내 이름은 아직, 이다. 숨도 채 바로하기 전에 내 이름이 호명되고 나는 네, 대답한 뒤 속으로 ‘세이프!’ 외친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교양 수업. 딱히 누군가와 친해지려 노력하지도 않고 혼자 앉는다. 4학년쯤 되니 다 귀찮다.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 리 없는 강의실 안에서는, 역시 평상시와 별다를 바 없다. 교수님께선 강의를 하고, 나는 강의를 듣는다. 다른 학생들도 강의를 듣는다. 오늘은 그저 목요일일 뿐이다.

수업이 끝나고, 나와 친한 사람들과 지인들 속으로 돌아오니, 다시 또 내 생일이다. 수업 듣는 동안 찍혀있는 부재중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답신을 한다. 더러는 전화해서 생일 축하한다고 노래를 불러준다. 수화기 너머의 사람들이 이 시간쯤에 혼자 있을 리 만무하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 것일 테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따뜻하다. 고마운 사람들. 친구 몇은 내게 선물을 줬다. 요즘엔 거의 혼자 지내다시피 하는데, 자주 함께 지내지도 않는 와중에도 신경 써 주는 것이 고맙다.

생일 기념으로 저녁도 근사한 곳에서 먹었다. 고마운 사람들. 나는 참 복된 삶을 살고 있구나, 느낀다.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이렇게 울타리처럼 날 지켜주고 있구나 하는 그런.

내게 아무리 특별한 날이라도,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간다. 평소와 똑같이. 00시에 시작된 하루는 24시로 곧 끝이 난다. 21일 00시. 내 생일은 끝나고, 나는 또 다시 365일 중 하루로 돌아온다. 그저 평범한 금요일이 도래한다. 잠들려 누운 침대 위에서, 나는 생일의 여운을 느끼면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면서 느끼길, 정말로 그저 금요일일 뿐이다. 나는 수업을 듣고, 필기를 하고, 과제를 한다. 남아 있는 미역국으로 점심을 먹는 것만이 어제가 바로 그 특별한 목요일이었구나, 상기시킨다. 강의실에서는 역시 혼자 앉는다. 전공수업인지라 아는 얼굴들이 많다. 인사 하고 곁에 앉으면 아마도 이번 학기 내내 함께 할 수 있을 테지만 하지 않는다. 그냥 맨 앞자리에 혼자 앉는다. 그게 편하다. 수업만 열심히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삭막한 느낌이지만 괜찮다. 교수님께선 강의를 하고, 나는 강의를 듣는다. 날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혼자 듣는 교양 수업 속의 나와, 날 아는 사람이 많지만 역시 혼자 듣는 전공 수업 속의 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어제와 오늘도, 수업 듣는 지금만큼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 생일, 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나에게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실상 그건 나 혼자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지금까지, 내 생일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만큼 내게 의미가 있는 날이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그 날을 축하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그네들이 없다하더라도, 그만큼 내게는 중요하고, 또 의미 있는 날인 것이고, 다만 그네들은 그만큼 의미 있는 날을 맞은 내 주변인으로서 축하를 보내고 함께 기뻐해주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과연 그네들이 없는 내 생일이 내게도 의미 있는 날일까? 내가 태어난 날, 내가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또 나 역시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준 날. 일 년에 한번 밖에 없는 내 생일이다. 하지만 나 혼자라면, 이건 단지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 그렇게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테지만, 나 혼자서는 어제도 그저 목요일에 불과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아무런 관계도 없이 혼자 떨어져 있다면, 내 생일은 그렇게 특별한 날이 못 되었을 거다. 누군가 내 생일을 축하해준다는 것이, 내 생일을 의미 있게 만든다. 마치 아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다면 의미를 잃는 내 이름처럼, 나의 기념일도 누군가와 함께 할 때야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1년 365일,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념일로 그 많은 날들이 하루하루 빼곡하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무엇을 기념 하는가’ 하는 것보다, ‘어떻게 기념 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다. 관계 속에서의 자신의 의미를, 또한 그 관계 자체를, 또 이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다시 새기는 것이다. 내 생일 때 내가 느꼈던 그 뿌듯함. 내 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키고 있구나 하는 그런 것들. 우리가 기념일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사실, 기념일의 의미 그 자체 보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아닐까. 어째서 사람들이 기념일을 만들어내는 것에 혈안인지, 이유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오늘날엔 온갖 기념일이 범람하고 있다. 크게는 명절이나 어버이날, 스승의날, 어린이날, 뭐 크리스마스 따위, 개인적으로는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정도만이면 충분한 것 같은데, 매달 희한한 기념일들을 챙겨야 한다고 우기고 나서는 상술은 영 달갑지가 않다.

사회가 각박해지다보니, 때로 기념일이 있지 않으면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 되새겨볼 시간조차 사라지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그 방법을 잊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평상시 내가 가진 것에 대해 까맣게 잊고 살다보니, 어느 순간 그것들을 대신 상기시켜줄 ‘기념일’의 존재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기념일을 사랑한다. 기념일은 나의 존재 의미를 상기시켜주는 동시에, 평상시에 소홀했던 모든 감사한 것들에 대해 기념일만으로 충분히 ‘할 만큼 한 느낌’을 제공한다. 간편하기 그지없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런 약점을 이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과자를 사서 먹는 중에 패키지를 무심코 보면, 생전 처음 보는 기념일을 주장하면서 주변의 친구들에게 바로 이 과자를 사서 선물하며 우정을 확인하라고 한다. 그런 대량 생산된 껍데기 기념일에 자꾸만 노출되다 보니 우리는 야금야금 기념일에 중독돼가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는 기념일이 왜 기념일인지 조차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연인들이 22일, 50일, 100일, 200일, 뭐 이상한 걸 죄 챙기고 있는 걸 보면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런 것을 특별히 정하지 않더라도 서로는 서로에게 늘 특별한 날을 만들어주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그런 것들이 그 외의 다른 날들을 무채색으로 보이게 만드는 느낌이다.

1주년, 2주년 정도만 기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벌써 1년 동안이나 처음처럼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정도로 말이다.

기념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잊지 않고 오래도록 가슴에 간직하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기념일은, 그것을 누군가와 함께하려고 만드는 것이다. 기념일 중독에 걸린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오히려 기념일의 의미에 반하는 일이다. 처음 교제를 시작했던 그때의 마음을 잊지 말자는 의미도,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되새기자는 의미도 아닌, 단순히 기념일을 위한 기념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일 뿐이다.

정말 제대로 된 기념일을 제외하곤, 껍데기들을 다 치워버리자.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갖고 산다면, 그런 의미 없는 기념일이 오히려 소중한 것들의 빛깔을 좀먹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기념일은, 늘 고마웠던 분께, 늘 사랑했던 사람에게, 늘 함께하는 모든 사람에게 특별히 그 마음을 표시하는 날로 만들어야한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같은 이유로 마음 따뜻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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