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중국산





균일가 할인마트에서 1500원을 주고 청소 솔을 하나, 각 1000원씩에 바구니 두개를 구입했다. 이런 것들은 일반 대형 마트보다 이런 균일가 할인마트가 훨씬 싸다. 마트에도 균일가 할인코너가 마련되어 있다지만, 거기서는 이 정도 크기의 플라스틱 바구니가 한 3000원쯤 한다. 바구니 두 개에 솔 하나까지 다 해도 3500원인데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 3500원어치 쇼핑물품들의 포장을 제거한다. 겉을 싸고 있는 비닐과 청소 솔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보호용 플라스틱 캡, 상품의 이름, 이미지, 사용법 따위가 적힌 종이 따위들을 구겨 버리고 나서, 혹시 더 제거해야할 것이 남아 있는가 면밀히 상품들을 수색해본다. 아니나 다를까 뒷면에 스티커가 붙어 있다. made in China. 지금껏 어떻게 떨어지지 않고 용케 붙어 있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아주 쉽게, 흔적도 남지 않고 깔끔하게 떨어진다. 애초부터 잘 떼기 위해 붙여 놓은 것만 같다. 이것도 나름의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한 것이리라. 누구도 자기의 물건 어딘가에 made in China를 새겨놓고 싶어 하진 않는다. 아무리 햇빛 한번 볼 날 없는 바닥면이라 해도 말이다.

예전에는 대개 made in China가 바닥면이나, 뒷면정도에 작게 음각되어 있곤 했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조차도 탐탁지 않아 했다. 중국산은 ‘싸구려 같다’ 거나, ‘튼튼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인식이, 진열대에 놓여 있는 상품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구매한 물품에 대해서도 매력을 반감해버리는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내구성이나 디자인, 그리고 가격의 적정성 등을 합리적으로 따져 구매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made in China’라고 선명히 새겨져 지울 수도 없는 그 음각 앞에, 괜히 어디 보이기 부끄러운 수준 떨어지는 물건을 구매한 듯한 기분이 되어 버린다거나, 뭐 그 정도 까지는 아니어도 그렇다고 딱히 그를 자랑스러워 할 순 없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저렴한 가격과, 그에 대비하여 나쁘지 않은 내구성과 디자인이라면, 합리적으로 중국산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혹은 내구성과 디자인이 다른 상품들보다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다지 디자인과 내구성이 중요하지 않은 소모성 제품이라거나 하는 특징들을 잘 따져보아 중국산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made in China를 제품상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중국산 제품이 ‘저렴’하기 때문에 구매하긴 하지만, 중국산을 드러내는 것은 결국 ‘저렴’한 제품임을 보이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수요에 의해서 made in China는 점점 작아지고, 구석으로 숨고, 심지어는 이렇듯 흔적도 없이 쉬이 떼어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중국산을 나타내는 스티커가 점점 더 흔적 없이, 더 쉽게 뗄 수 있는 식으로 발전되어 가는 것은, 그만큼 ‘중국산’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음을 반증한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오해와 편견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이사 온 당일, 균일가 매장에서 급하게 중국산 미니프라이팬 하나를 산 적이 있다. 며칠 뒤 어머니가 보내주실 짐 속에 내가 사용할 식기들이 있을 테니, 비싼 걸 사긴 그렇고, 그렇다고 안 사자니 찬장이 텅텅 비어 당장 계란프라이도 하나 못 해 먹는 처지였다. 내가 가진 거라곤 달랑 그릇 두 개, 포크 한 개가 전부였다.

그렇게 반신반의하며 산 미니프라이팬은 4000원 쯤 했었나, 그랬던 것 같다. 디자인은 딱히 나무랄 데 없을 만큼 귀여웠다. 불에 닿는 겉면과 손잡이는 상큼한 연두색이었고, 안쪽은 마치 대리석 같은 무늬가 매끄러워 딱히 질이 떨어질 것 같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이 미니프라이팬은 잘못된 선택이었음이 첫 개시부터 드러났다. 계란프라이를 뒤집는데, 어째 너무 많이 탔더라.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계란프라이를 이렇게 새카맣게 태울 군번은 아닌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흰자가 탄 색깔치고는 너무 작위적으로 검었다. 그라데이션이 차차 갈색이 되다가 검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머리카락처럼 약간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코팅이라고 주장하던 것이 내 계란프라이에 묻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 한번쯤 다들 있을 것이다. 싸다고 산 우산이 펼치자마자 뜯어졌다든지, 장난감이 두어 번 작동하고 나더니 건전지를 갈아도 묵묵부답이라든지, 혹은 손잡이가 떨어지고, 녹이 슬고, 색이 변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고, 포장과 내용물이 다르고….

‘싼 게 비지떡이구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만든 그런 경험이, ‘중국산은 싸구려’라는  생각을 머리에 깊게 박아 놓았던 것이다. 중국산이 저렴한 이유는, 원자재를 비롯하여 인건비, 물품 생산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관세 역시 저렴하다.

상품의 가격이라는 것은 실제 상품의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그 상품을 구매하는 그 순간까지의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이 전부 산정되어 책정되는 가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산은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이라서’라는 것보다 오히려, 여러 가지 이유로 저렴한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국산 제품의 가격이 저렴한 것이다. 같은 조건에서 가격을 낮추기 위해 품질을 포기하는 경우와는 조금 다른 케이스다. 중국산은 한국의 제품과 똑같이 생산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특성들로 인해 가격 경쟁력이 생기게 된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정말 디자인이나 질이 좋은 중국산 제품들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정말 중국산의 가격이 저렴한 것이 질이 나쁘기 때문만은 아니라면, 실제로 중국산의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함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생산자가 양심이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윤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중국제품 중에는 이러한 생산자로부터 만들어진 제품이 꽤나 많다. 당장 겉모양만 그럴싸하게 만드는 것에 급급한다. 자신의 상품이 어떤 식으로 평가 받고,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효용을 제공하고 하는 등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생산자로서의 어떤 자긍심 같은 것도 없이, 단지 어떻게든 많이 남기려고만 하다 보니 온갖 사기가 동원된다. 심지어는 소비자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방법을 통해 이윤만 많이 남길 수 있다면 거리낌 없이 행하기도 한다.

검은 물감으로 코팅한 듯한 내 미니프라이팬도 그렇다. 그것이 어떤 성분인지 모르나, 혹 모르고 섭취했다면 분명 몹시 해로웠을 거다. 물고기에 납을 넣고, 식품에 유해성분을 첨가하고, 위생이 열악한 곳에서 쓰레기나 다름없는 재료로 상품을 만들어내고, 자칫 합선의 위험이 있을 정도로 조악하게 땜질을 해놓고…….

중국산이 질이 떨어지는 싸구려라는 것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우리의 편견이 만든 것만은 아닐 것이다. 중국산이라고 하면 장바구니에 넣기가 왠지 꺼려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양심적이고 정당하게 경쟁한다하더라도 ‘가격 경쟁력’이라는 카드로 충분히 메리트가 존재함에도 불구, 중국이 이러한 행태들로 스스로 자신들의 국제적 이미지를 그리 만들고 있는 셈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사대주의’라 하여 중국의 문화를 우리의 것보다 더 높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 정도로 당시 중국은 각종 사상과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중국을 통해 다양한 사상과 문화를 전해 받았다.

중국은 우리보다 앞서 서양 문물과도 교류하였고, 그들의 문화는 서양에서도 상당히 높게 평가 되었다. 특히 중국의 도자기에 대하여 서양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그 빛깔이나 형태의 아름다움이 장인의 혼이 배어있는 듯하였기 때문이다. 도자기가 영어로 ‘China’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높은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상품들은 하나 같이 사상을 반영하고, 신중한 장인 정신을 통해 빚어지는 것들이었다. 그림 한 폭을 그리는 데에도, 앞서 자신들의 마음의 티끌을 다 쓸어내고, 자신의 인품을 다 정리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림에 세상을 비출 수 있다고 보았다. 인품(人品)이 곧 화품(畵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단지 그림과 도자기와 같은 예술뿐만 아니라, 무엇을 만들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그 이전에 스스로를 다스리던 문화가 있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상인은 상인으로서의, 학자는 학자로서의, 생산자는 생산자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이를 지키기 위한 삶을 살아갔다. 긍지로 만들어진 문화가 세계적으로 높게 평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에는 중국의 것이라 하면 최고의 것이었는데, 현재에 와서는 made in China 라는 것이 질 떨어지는 싸구려라는 것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될 정도로 중국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이러한 긍지와, 자신의 긍지를 지키려는 신념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식품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이를 지키려 노력한다면, 어떻게 이윤이 조금 더 남는다고 해서 값싼 저질의 원료를 쓰겠는가?

긍지를 잃은 중국의 오늘날이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긍지를 잃고 얻는 것은 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크게 잃는 것이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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