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재개발 예정된 ‘백사마을’의 근심 가득한 겨울

과거 노원구 중계동 산 104번지 주변에 형성됐다고 해서 붙여진 백사마을. 창동역이나 노원역에서 1142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 이르면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는 백사마을과 마주할 수 있다. 백사마을 하면 흔히 좁은 골목길, 낡고 기울어진 집, 근심어린 얼굴 등을 떠올린다. 추운 겨울은 이곳 주민들의 무거운 삶을 더욱 짓누른다. 
1960년대 말 용산, 동대문, 청량리 주변에서 도심개발로 밀려난 철거민들이 새로이 터전을 마련한 백사마을. 최근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 되면서 동네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얼마 안 되는 주거 이전비만 받고 이곳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 대부분은 고령의 기초생활수급자들이다.




처지 알아주는 사람은 이웃뿐

1967년 이맘때다. 청계천 등에서 쫓겨난 주민들은 이곳으로 터를 옮겼다. 산자락은 넓었지만 집은 없었다. 전기나 수도 같은 기반시설 역시 없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천막을 치고 다가올 추위에 대비했다. 물이 나올 만한 곳을 찾아 우물을 파기도 했다. 백사마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3000여 주민이 모여들어 마을 하나가 형성되었다. 이른바 국유지에 집을 지어 마을을 형성한 것이다.

마을 어귀, 한 주민이 차가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대문 앞에 주저앉아 있다. 백사마을 터줏대감 박모(74. 남) 씨다. 연탄 배달차를 기다린다는 그는 자신의 집에 기름보일러가 장착돼 있지만 거의 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동안 연탄가스로 죽은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요. 요즘은 덜하지만 지독하게 못 살던 시절만 해도 겨울마다 뉴스에 나올 정도였어요. 80년대엔 일가족이 질식돼 사망한 적도 있고…. 그래도 연탄 때문에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기름이나 가스는 비용이 많이 들어서 쓰기 힘들어요.”

박 씨는 “그동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박 씨의 자녀들은 이제 모두 출가외인. 박 씨 스스로 자신의 한 몸 추스를 일만 남겨져 있다.

“자녀들이 이 동네에서 다 나갔어요. 다들 굶어죽지 않을 만큼은 살죠. 저도 아들 녀석이랑 같이 살 생각도 해봤는데, 고향 같은 이 집을 떠날 순 없었어요. 비록 누추한 곳이지만, 이  곳에서 자식 셋을 키워냈거든요.”



이곳에서 15년째 살고 있다는 박모(67. 남) 씨. 바깥은 영하로 떨어진지 오래고, 실내 기온 역시 소름이 일 정도로 싸늘하지만 연탄 한 장으로 추위와 맞서야 한다.

“폐지 주워서 겨울나기 합니다. 때론 연탄때기도 부담스러워요. 되도록 아끼려고 하죠. 배달 값이 많이 올라서…. 따뜻하게 살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못돼요. 모든 게 워낙 비싸니까.”

이곳에서 생활하는 고령자들의 월 평균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를 포함해 대략 40만원 정도. 소득의 반 이상을 방세로 내고 난방비를 지출하고 나면 생활하는데 쓸 돈은 턱없이 모자란다.

“그나마 싸니까 이렇게라도 유지를 해요. 물론 산이다 보니 외풍이 심해서 늘 감기를 달고 삽니다.”

때론 수도가 얼어 빨랫감도 밀리기 일쑤다.

“지난해 겨울엔 수도가 얼어 빨래도 못했어요. 세탁기가 없다보니 올 겨울에도 손빨래를 해야 합니다. 한파에 혹시라도 수도꼭지가 얼어버릴까 이불로 동여매놓긴 했지만….”



초겨울 가끔 찾아오던 자원봉사자들의 발길도 최근엔 뚝 끊겼다. 하지만 박 씨는 원망하지 않는다. 추운 겨울 찬물에 빨래를 해주길 바라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늙은이가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추운 겨울, 이웃들이라도 있어 그나마 낫죠. 동병상련이라고 제 처지를 알아주는 사람은 역시 이웃입니다. 빨랫감도 조금씩 나눠가져가서 세탁을 해줬죠.”

몸 이곳저곳이 몹시 아프다는 유모(68. 여) 씨도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고생하고 있다.

"매일 찬물로 씻고 있어요. 가끔 연탄불에 물을 데워 사용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몸이 불편해 그것도 힘듭니다.”

유 씨는 없는 사람들일수록 병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관절, 당뇨, 천식 같은 병 때문에 한달 약값으로만 15만원 정도를 써요. 그리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죠. 움직이는 게 힘들다보니 연탄을 가는 것도 힘에 부칠 때가 많습니다.”


주거 이전비 받고 쫓겨나

진행되고 있는 재개발과 관련 주민들은 한숨만 내쉬었다. 2009년 이 지역이 노원구 중계본동(18만8899㎡) 재개발구역에 포함되면서부터 불안감은 증폭되기 시작했다. 백사마을에선 내년 가을 본격적인 철거를 앞두고 현재 지장물 조사가 한창이다. 1200여 가구 가운데 땅주인이 있는 600여 가구는 빈집이 된지 오래다. 2000년대 중반 부동산 투기붐에 편승해 외지인의 지분투자가 많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평당 적게는 300만∼400만원, 많게는 1000만원이 넘는 돈을 손에 쥘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곳은 저층주거지를 보전ㆍ관리하면서 아파트를 건립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전면 철거식 개발을 지양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택철학이 반영됐다. 개발 콘셉트는 ‘원형보존’이다. 기존 지형과 골목길 등을 유지하면서 자연지형에 따라 형성된 저층주거지를 리모델링과 신축을 통해 보존?관리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또한 저소득층 원주민과 세입자들의 재정적 부담을 줄이고 재정착률을 높이기 위해 일반분양 아파트를 늘렸다.

문제는 600여 가구에 달하는 세입자들이다. 땅주인과 달리 이들에게는 ‘주거 이전비’가 지급된다. 가구원 수에 따라 월평균 가계 지출비를 기준으로 4개월치를 준다. 그러나 저소득층인 이들이 손에 쥘 돈은 가구당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이 고작이다. 주민들은 “그깟 돈 가지고는 어디서도 월세 보증금조차 못 낸다”고 했다.



남아있는 사람 대부분은 고령인데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이다. 내년 거취 계획을 묻자 금세 얼굴빛이 어두워진다. 5살 된 손자와 살고 있다는 오모(75. 여)씨는 어린 손자를 위해서라도 집을 구해 나가고 싶다고 했다. 

“저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애는 어떡해요. 지금 형편으론 다른 곳 가서 월세 얻기도 힘들어요. 보상금이 쥐꼬리만큼 나온다는데 어디에 어떻게 집을 얻어야 할지 막막하죠. 반평생 철거민으로 살아온 것도 힘든데 이제는 길바닥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가 막힙니다.”

최모(77. 남) 씨는 2009년 재개발 계획이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편하게 잠든 날이 없다고 했다.  

“자기 땅 가진 사람들은 없어요. 오래전에 막 지은 집들이죠. 전기세, 수도세야 내지만 등록된 주소가 아닙니다. 그런데 재개발한다고 하니, 당연히 쫓겨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서죠. 무슨 역사를 살린다느니 정취를 살린다느니 하는데 당장 쫓겨날까봐 불안에 떠는 주민들 입장에서 그런 게 귀에 들어오겠어요. 여기 살면서 역사나 정취, 이런 것 느끼는 사람들 없어요. 당장 입에 풀칠할 궁리만 하죠.”



문모(57. 여) 씨는 세입자들에 대한 권리 보장이 터무니없다며 향후 자신의 가족 역시 철거민 신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업성이 충분한지 아닌지는 더 이상 우리가 알 바 아니에요. 어차피 쫓겨날 사람들인데 무슨 미련이 있겠어요. 다만 세입자 권리가 어떻게 보장되는지, 세부적으로는 금전적 이득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들은 맨 몸으로 나간다는 얘긴데, 결국 철거민 신세로 전락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달동네마다 재개발이나 공동체마을 개발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그 방식을 두고도 여전히 입장이 엇갈리며 곳곳에서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백사마을도 주민들을 위한 개발이 순탄하게 진행될 지는 미지수다.

최승섭 경실련 부동산감시팀 간사는 “정부와 서울시에서 마련한 임대주택도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며 “영세민들이 최소한의 보금자리라도 마련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야한다”고 말했다. 향후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백사마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만의 독특한 정취가 살아 있는 마을로 재탄생하게 될지, 상처뿐인 훈장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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