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편견과 차별, 턱없이 부족한 지원속 죽어가는 노숙인 실태

‘노숙인들의 죽음’을 두고 각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턱없이 부실한 복지지원제도 속에서 극도의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거나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노숙인들이 줄지 않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더욱 깊어지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원인이라고 얘기한다. 특히 지난해 8월 서울역 노숙인 강제 퇴거조치 등도 차별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홈리스행동 등 인권단체들은 노숙인을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고 편견을 가져선 안 된다고 얘기한다. 홈리스행동은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들에 대해 “사회적 편견과 달리 인간다운 삶을 사신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들에게도 인간다운 삶이 있었다. 죽어간 노숙인들의 사례를 이동현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을 통해 들어봤다.




고가도로 아래서 발견된 순덕씨의 주검

박모(39. 여) 씨는 심성이 착해 생전 ‘순덕’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고아원 출신인 박 씨는 성인이 되자 시설을 나와 공장에 다녔다. 경미한 지적장애가 있던 박 씨에게 사회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박 씨를 돌봐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박 씨는 점점 마음의 문을 닫고 아예 말을 하지 않게 됐다. 그러다 결국 공장도 그만두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실패와 절망에 익숙해진 박 씨에겐 잠자리도 중요치 않았다. 박 씨는 영등포역 안의 따뜻한 통로를 욕심내지 않고 20여년 동안 영등포역 주변 공원과 공터에서 생활했다. 자의와 타의에 의해 세상에서 방치된 박 씨는 영등포역 고가차도 밑 공터에서 쓸쓸한 주검이 됐을 때야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미싱사였던 임모(45. 여) 씨.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와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중학교만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핸드백 공장에서 일을 했다. 다니던 공장이 IMF 때 망한 후 가족은 물론 지인들과도 뿔뿔이 흩어지자 임씨는 술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임씨가 찾던 사람은 곁에 없었지만 술은 언제든 옆에서 그를 위로해주었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이 정릉천 다리 밑과 빈집을 전전하며 파지를 주워 생활했다. 임 씨는 그 돈으로 밥 대신 술만 먹었다. 결국 임 씨의 간은 완전히 녹아버렸고, 어느 날 거리에서 술을 마시던 중 피를 토해 병원에 이송됐다. 따뜻한 병원에 온 지 사흘 만에 임 씨는 차가운 주검이 됐다.



노숙인 김모(52. 남) 씨도 얼마 전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김 씨는 지난 90년대 말 불어 닥친 IMF 한파에 사업이 도산한 후 알코올에 의존하게 됐고 가족과의 사이도 멀어졌다. 술 때문에 유일한 가족인 딸과의 연락도 단절된 후 홈리스가 됐다. 이후 김 씨는 쉼터생활 중 동료의 소개로 택시회사에 들어가게 됐다. 운전을 하면 술도 끊을 수 있고 가족과의 재결합도 이룰 수 있겠다는 꿈이 생겼다. 회사 근처 고시원에 묵으면서 택시를 몰 정도로 일에 몰두했다. 번 돈은 함부로 쓰지 않았고 1750만원가량을 모아 쉼터에서 뽑는 저축왕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 씨는 이처럼 홈리스들이 자립의지가 없고 불성실하다는 편견을 깬 인물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경색으로 그의 생명과 꿈이 모두 사라졌다. 그를 기억하는 이동현 위원장은 “남들보다 조금 더 실패했을 뿐, 살려는 의지는 보통사람들과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역에서 만난 노숙생활을 14년째 하고 있는 오모(44. 남) 씨는 3년 전 서울역 근처에서 싸움 중 병에 맞아 목숨을 잃은 노숙인 형을 떠올리며 “그 형이 많이 챙겨줬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 씨는 “아는 사람 중에 작년에만 9명, 2011년에 4명이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사업이 망해 노숙인이 된 이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술을 많이 먹는다”며 “그래서 암으로 돌아가신 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편견 더 심해져

이처럼 수많은 노숙인들이 턱없이 부실한 복지지원제도 속에서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거나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011년 8월부터 서울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강제퇴거조치도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위원장은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는 홈리스에 대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때를 가리지 않고 강제퇴거를 강행하는 특수경비용역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노숙인 등 위기계층에 대한 복지지원을 위해 서울역 내에 사회 취약계층 지원기구를 설치하고 허울뿐인 노숙인 복지지원제도와 일자리 대책 개선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홈리스뿐만 아니라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바란다”며 “이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지금까지 집계된 노숙인 사망자수는 2000년 142명에서 2009년 357명으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홈리스 측은 정식 집계된 이외에도 더 많은 수의 노숙인들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노숙인구의 사망률은 전체 인구집단에 비해 2배가량 높다. 사망원인은 손상, 중독, 외인성 질환이 많았고 다친 후 제대로 조치를 받지 못한 사례가 가장 흔했다.



이 위원장은 “쉼터에 머무르지 않는 노숙인들은 생사여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며 “현실이 이러한데도 노숙인 현황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미비하고 응급 의료지원도 턱없이 부실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올해 서울에서 사망한 노숙인수는 집계한 것만 따져도 90여명에 이르고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본다”며 “노숙인 한 사람당 100만원의 지원금이면 충분히 자활을 도울 수 있는데도 정부는 그들을 쫓는 데만 급급해 예산을 거꾸로 사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노숙인 스스로가 퇴거조치에 따른 무력감으로 정신적 손상을 입고 자활의지를 상실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 1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60%가 퇴거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거 과정에서 이들은 정신적·물리적 손상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이 위원장은 “노숙인을 사회와 동떨어진 범죄자처럼 여기는 인식이 무엇보다 개선돼야 한다”며 “실제로 만나본 그들은 욕구도 적고 학습된 무력감으로 위축돼 있는 경향이 강하다. 한마디로 생존을 위해 이리저리 옮겨 다닐 뿐”이라고 말했다.

노숙인 추모제 열려

한편 노숙인 인권단체 홈리스행동, 인권운동사랑방, 전국홈리스연대 등 55개 단체로 구성된 공동기획단은 지난 12월 2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2012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를 열었다. 2001년부터 1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에 맞춰 매년 추모제를 열고 있는 공동기획단은 “밤이 길수록 노숙인들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며 “이에 맞춰서 하는 것도 긴 밤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잃은 노숙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작년 사망한 노숙인들의 삶을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되짚은 ‘홈리스 생애사’, 51명의 서울역 노숙인이 선정한 ‘2012 홈리스인권 10대 뉴스’ 등을 전시해 노숙인 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추모제에서는 노숙인 풍물패 ‘두드림’이 추모공연과 주영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의 추모사가 진행된 후 발언 등이 진행됐다. 이어 추모제에 참석한 100여 명은 행사 후 노숙인들이 생활하는 서울역과 서울역 지하도 등을 돌며 추모행진을 했다.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장모(남. 45) 씨는 “나도 쪽방촌 생활을 한 지 몇 년 째라 남의 일 같지 않아 추모제에 왔다”며 “쪽방촌에서도 올 한 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으신 분들이 꽤 된다. 지원받을 수 있는 것도 몰라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홍보가 잘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정부에서 이것저것 하는 것은 많더니 달라지는 게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라며 “앞으로 더 추워질 텐데 최소한 이들에게 기본적인 삶이라도 보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동기획단은 이날 ▲서울역 노숙인퇴거 특수경비용역 폐지 ▲서울역 내 사회취약계층 지원 기구 설치 ▲노숙인 의료보호 개선 ▲일자리대책 개선 등을 촉구했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15일부터 올해 3월 15일까지 ‘겨울철 노숙인 특별보호대책’을 24시간 가동한다.

서울 거리에서 위기에 처한 노숙인을 발견시 ‘1600-9582’로 전화하면 곧바로 지원이 이뤄지며 겨울철 노숙인의 동사를 막기 위해 제공되는 응급잠자리도 1인·가족·여성 등 다양한 형태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공되고 있다. 또한 알코올 중독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노숙인을 위한 정신과 전문상담팀도 운영하고 있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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