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남자 그리고 여자





인터넷 커뮤니티를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성격의 커뮤니티이든, 그 게시물 성격이 어쨌든 간에, 꼭 이성에 대한 이야기는 빠짐없이 자리한다. 이것만큼은 절대 남자니 여자니 하는 이야기가 끼어들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에도, 억지라도 써서 결국 남녀 얘기가 끼어든다. 하긴 비단 인터넷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언제나 이성에 대한 이야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입에 오르내리니, 그 자체가 이상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은 이상하리만큼 남자와 여자가 대립되어있다. 익명의 공간이라 그런 것일까. 평소 억울했던 점이 폭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용도 대부분 유치하다. 공방이라고 해봤자, 남자의 병역의무와 여자의 출산을 빗대는 것 같은 억지나, 근거도 없이 그저 여자라면 다 의존적인 성격이라고 싸잡아 비난한다거나, 남자들을 쪼잔 하고 자기중심적인 변태로 매도하는, 그 정도 수준의 단체 말싸움이 대부분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는(어쩌면 단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과거에는 이 공방이 댓글 란에서 주로 발생했었다. 댓글이야 유치하지 않은 것을 찾기가 더 어렵고, 억지 쓰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니까, 사실 그런 초등학생 같은 말싸움이 일어나도 그저 그러려니 했었다. 언제부턴가 슬슬 커뮤니티별로 사람들이 묶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여초, 남초 성향의 커뮤니티가 세력을 떨치게 되고 말았다. 여자와 남자의 관심사가 다르니 어쩌면 커뮤니티에 따라 여자가 더 많거나 남자가 더 많은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커뮤니티들이 하는 짓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내 얼굴이 다 붉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성을 비하하는 수준이 도가 지나치다거나, 근거 없는 일반화로 깡그리 ‘이상한 종족’으로 만들어버린다거나 하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난다.

나는 딱히 커뮤니티 활동을 할 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한지라, 보통 포털 메인을 통해 커뮤니티에 접근하는데, 밖에 있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이런 생각은 거의 세뇌수준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한두 번 삐죽거리는 수준이었다면 귀엽게 넘어갈 수도 있지 싶은데, 이건 그 수준을 넘어섰다.

김치녀니 김치남이니 뭐라 해대는 것도 참 우스운 일이다. 사실 서로가 없으면 안 되면서, 그렇게 죽일 듯이 비난하는 건 또 뭔가. 여성비율이 극단적으로 높은 한 카페에서는, 한쪽에서는 남자들은 어떻다느니 비난을 해대면서, 한쪽에서는 남자들한테 잘 보이는 애교스킬을 공유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여자라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상황은 남성비율이 더 높은 커뮤니티가 더 심각해 보인다. 입에 담기 힘든 비속어로 근거 없이 ‘여성’ 전체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회부적응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든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어떤 여자를 싫어할 수는 있겠지만, 그를 일반화 시켜 여성 전체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그들의 대화를 조금 둘러보다가 어쩐지 스물스물 올라오는 불쾌함에 익스플로러 창을 꺼버렸다. 이 사람들 제대로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싶더라. 그때 봤던 비속어들이 손을 타고 기어 올라오는 벌레처럼 소름끼치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얼마 전에 그 커뮤니티에서 ‘인증’이 유행하면서, 그 커뮤니티의 회원들의 정체가 실토(?)되어버렸다. 상위의 학력이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화제가 되었었다. 게시판을 가득 채웠던 그 비속한 내용들이 문득 기억나면서, 전에 없을 만큼 소름이 끼쳤다. 이 사람들이 죄다 사회부적응자라고? 나는 높은 학력과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기보다, 어쩌면 온라인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들이 ‘현실세계의 사람’으로 연결되면서, 내 주변과 그 비속적인 내용이 겹쳐지는 느낌에 그만 아찔해졌던 것 같다.

그 많은 사람들을 죄 사회부적응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그 커뮤니티의 생각이 모든 남자들의 생각이냐 하면 그것도 아닐 것이다. 그 커뮤니티의 회원들이 사회통념상 지나치게 비속적이거나, 지나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어쩌면 그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진짜로 그렇게 비속적인 사람이거나 분노를 가진 사람이라기보다는, 그 커뮤니티에서만 나타나는 독자적인 인격인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한마디로, ‘재미로’ 그러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물론 지나치게 과장된 부분에 대한 이야기고(자신을 여성 혐오정도로 표현한다든지 하는 부분), 실제로 이성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다.

나는 나로 태어나서 평생을 나로 살다가 나로 죽는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은 아무리 가깝다하더라도 결국 어떤 존재인지 완벽하게 알 수 없다. 단지 내 입장에서 추측해볼 뿐이다. 그러다보니 나의 입장에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상대에 대해서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성격이 다르거나, 특성이 다르거나, 여러 가지로 나와 다른 점이 많은 사람과는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라는 것은, 같은 사람이지만, 마치 종족이 다른 것처럼 차이점이 많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생활양상도 다르고, 주어진 삶의 형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건 남녀평등과는 다른 이야기다. 남자든 여자든 차별 없이 우리는 모두 소중한 존재이지만, 그건 그거고, 다른 건 다른 거다.

나도 여자 친구들을 만나면  주변 남자애들(정확히는 남자친구들)의 흉을 볼 때가 있다. 남자애들도 아마 그럴 거다. 하지만 우리 모두 결국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모두 그걸 알고 있다. 필요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포용해야만 하고, 그걸 제대로 해내기에는 아직 덜 성숙한 우리들은 어린애들처럼 서로를 헐뜯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들을 완전히 미워한다면, 그래서 우리에게 그들이 필요 없는 존재라고 완전히 배척한다면, 우리가 그들을 헐뜯는 대부분의 사항들은 애초부터 불만이 되지도 않는다. 남자친구가 눈치도 없고 센스도 없다고 징징거리는 여자애가 정말 그 친구를 증오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그 사람이 센스가 없든 눈치가 없든, 하등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좋아하는 여자애를 괜히 괴롭히는 남자애 같은 어린 마음이다.

이게 문제가 되는 때는, 이 어린 마음을 이상한 쪽으로 발전시켜버리는 경우일 것이다. ‘그 남자’가 아니라, ‘남자들’을 향해 비난을 시작하고, 이쪽을 ‘나’가 아니라 ‘우리 여자들’로 묶어버리게 되면 이상한 공방이 시작된다. 의미도 목적도 불분명한 싸움. 이 유치한 싸움이 계속되면 ‘내가 포용하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너희들이 이상해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일부의 문제는 마치 전체의 문제인양 확대해석 되고, 반쯤은 재미로 임했던 말싸움이 정말 내 가치관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게 되어버릴 때도 있다. 말싸움은 점점 커진다. 지겹고 유치하게 계속 이어진다.

우리는 서로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자 전부’, ‘여자 전부’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적대감만이 커진다. 남자친구의 단점을 흉 볼 때처럼, ‘서로를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전제로 깔리기 힘들다. 결국은 비속한 내용이 난무할 때까지 증오만을 키웠다.

우리는 평생 남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평생 ‘나’라는 틀에 갇혀있는 운명이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나’라는 틀을 타인에게까지 확장시켜야하는,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모두는 ‘나’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어렵고도 힘든 시도를 계속해야한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의 속성에 화가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그 사람을 내 인생 안으로 초대한 이상, 그마저 포용해야 한다. 쓸데없이 갈등을 양산하는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소화해내기 어려운 단점을 일부러 부풀리는 일을 하는 만큼 어리석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남자, 여자, 이렇게 집단으로 다가가면 서로 증오만 키우는 꼴이 된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걸 알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런 유치한 공방을 계속할 것인가. 그저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내 곁에 소중한 그 사람도, 남자고 여자다. 부모님도, 형제도, 친구도, 연인도 모두 남자고, 여자다. 우리에게 그들이 소중한 만큼,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발전적이다. 의미도 목적도 없는 싸움을 그만두자. 우리, 이제 그만 싸우자. 화해하자. 남자랑 여자는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도 네가 필요하고, 너도 내가 필요한데, 이제 정말, 화해하자.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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