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아침형 인간 그리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하루의 기운이 충만한 아침은, 이상하게도 내겐 별로 활기찬 시간이 아니다. 전날 몇 시에 잠자리에 들었든지 크게 상관없이 아침은 내게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다. 졸린 눈은 무겁고, 뇌는 아직 잠에 잠겨있는데다가 이불속은 포근하고 따뜻하다. 먹는 유혹과 잠의 유혹 중 어느 것이 더 크냐 묻는다면, 나는 아마 잠의 손을 들어주리라. 이미 이때는 내 정신이 아니라 반 무의식이니까.

고등학교 때는 날 등교시키기 위해서 어머니께서 한 대여섯 번을 내 방에 들어오셔서 침대에 널브러진 날 흔들어 깨워야 했었다. 깨워서 씻으라고 을러놓고 나가셨음에도 한참을 씻는 물소리도 없이 너무 잠잠해서 다시 들어와 보면 내가 다시 누워 자고 있고 앉아서 졸고 있고.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겨우 욕실로 기어들어가곤 했다.

요즘에도 별로 나을 게 없다. 알람이 자그마치 8개. 알람을 끄고 비밀번호를 맞추고 난리를 치다가 거의 울듯이 욕실로 들어간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 시간이 얼마나 서러운지. 욕실의 썰렁함에 몸서리치면서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간 것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아침엔 여기까지만 견디면 된다. 일단 세수를 하고 나면 잠자던 내 두뇌가 조금씩 깨어나고, 왜 일어나야하는지 조금은 이성적으로 판단이 가능해진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한결 수월해져서 대충 화장도 하고 옷도 입고 할 정신도 챙길 수 있다.

사실 정말 힘들 때는 아침이 아니다. 아침은 서러우나 마나 알람 열 개쯤이면 억지로 기상할 수 있지만, 그렇게 일어나 일과를 시작한 후가 진짜 문제다. 책상머리 앞에서 앉아 있을 때 졸음이 밀려오면 이건 방법 자체가 아예 없다. 찬물을 마셔도, 눈에 힘을 줘 봐도 전혀 소용이 없다. 카페인에 의존해 봐도 정신이 완전히 맑아지는 기분은 아니다. 뇌 속에 안개가 낀 듯, 읽었던 줄을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하루 수면시간은 6시간 정도로 유지하면서 기상 시간은 아침으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면 삶이 활기가 넘치고 절로 건강해지고 생체리듬이 어쩌구 저쩌구 여튼 다 좋다하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이 굉장히 성실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나도 줄곧 도전해 왔다. 1시 취침 7시 기상. 번번이 실패하고 말지만.

잠을 조절하지 못하는 건 꽤나 비참한 기분이다. 내 의지가 고작 이정도인가 하는 생각에 종일 기분이 다운된다. 내 목표치가 그렇게 타이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 비참함을 한층 더 키운다. 하루 수면시간 6시간이라는 기준도 ‘보통의 경우’이고, 시험을 준비하거나 한다면 통상적으로 조금 많이 자는 게 아닌가 하는 정도의 시간이다. ‘4당5락’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고. 하물며 5시간보다도 1시간 더 많은 6시간이다. 근데 나는 이 6시간조차 지켜내지 못하고 더 자기 일쑤인 것이다. 내 자신이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는 생각이 들면 금세 우울해진다. 1시에 자는 건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데 (내게 1시는 그렇게 졸린 시간대는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정말 힘들다. 그것만이면 다행이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종일 잠에 허우적거린다.

한번은 대안으로 짧은 낮잠을 고안해 낸 적도 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중간에 토막잠으로 기운을 보충하고 제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것. 내가 생각하는 아주 이상적인 라이프 사이클이지만, 내게는 이 이상적인 라이프 사이클이 그저 이상일 뿐이다. 나는 토막잠을 자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토막잠 자체는 좋다, 이거다. 낮잠치고는 너무 정신없이 골아 떨어져서, 20분만 자려던 것이 1시간이 되고 2시간이 되고, 한창 밝을 때 잠시 눈 붙였는데 떠보면 밖이 컴컴하다든지 하는 일이 허다한지라, 내가 잠깐 낮잠을 자겠다고 결정하는 건, 오늘은 ‘어쩌면 낮잠을 쿨쿨 자고 밤에 말똥말똥 하게 될지 모르는 일’을 해볼까? 하는 정도의 미필적 고의인 것이다. 그런고로 아침형 인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시키고 싶다면 정말 졸려서 쓰러지는 게 아닌 이상은 낮잠을 잘 마음 자체를 가져서는 안 된다. 

밤늦게 잠들어도 6시면 째깍째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 4시간을 자고도 거뜬하게 자기 할 일을 해내는 사람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나는 보통 7시간을 잔다. 의지가 굳건한 날이나 5시간 조금 넘게 혹은 진짜 간신히 간신히 6시간을 자고 일어난다. 6시간을 자고 일어난 날에는 종일 좀비가 따로 없다. 다크서클이 퀭해서, 누가 보면 한 3시간밖에 못자는 사람인줄 알거다. 그냥 내버려두면 12시간도 거뜬히 자버린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보고 징그럽다고 했다. 내가 봐도 징그럽게 오래 잔다.

그러다 보니 사실 7시간을 자고서도 미련 없이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게 아니다. 수많은 갈등과 유혹사이에서 미간 한번 찌푸리고 마음 다잡은 뒤에야 일어난다. 7시간을 잔다, 이렇게 말하면 ‘학생이 참 많이도 자네’ 싶지만, 나로서는 이게 지속가능한 수면시간으로는 최선인 셈이다. 사실 7시간도 종종 오버다. 4당5락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남들 두 배 가까이 자는 놈이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 생각이 자꾸 마음을 무겁게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돌아보면 6시간을 잘 때보다 7시간을 잘 때의 효율이 훨씬 높다. 조금이 아니라, ‘훨씬’ 높다. 쉬이 지치지 않고, 그저 졸면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짧다. 뭐라고 해야 할까, 잠을 적게 잔 날은 내 스스로가 젖은 나뭇가지 같아서, 아무리 부싯돌을 열성적으로 부딪쳐 보아도, 아무리 날카로운 스파크를 팡팡 튀겨 봐도 마음에 불이 잘 옮아 붙지 않는다. 할 일을 하기 위해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 있었던 시간도, 졸음과 싸우기 위한 인내도 더 많이 들었건만, 실상 하루를 마감할 때 보면 마무리 된 것이 미미하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서 뭔가 많이 한 것 ‘같은’ 뿌듯함으로 가려진, 비효율의 이면이다. 내가 이런 힘든 계획을 지속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별로 의지가 굳건한 사람이 못된다. 5∼6시간을 계획하다가 자괴감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시작하는 하루를 며칠씩 보내고 나서, 한동안 수면시간을 아예 계획하지 않는, 방탕(?)한 생활을 했다. 이러다간 정말 망할 것 같아서, 다시 수면시간을 조정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남들이 말하는 적정 수면시간 같은 걸 따를게 아니라, 내 스스로 제일 효율적인 시간을 찾아보기로 했다.

1시 취침 7시 30분에서 8시 사이 기상. 이게 내가 제일 ‘잠에 시달리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적정 수면시간이다. 알람은 7시 30분부터 울기 시작하지만 거의 백이면 백, 8시가 약간 넘어서 일어난다. 오전 8시라는 시간은 아주 이르지도 아주 늦지도 않은 오전시간이라, 아주 일찍 일어난 기분은 아니더라도, 뭔가 사람들도 다 출근을 하고 있고, 겨울이라고 해도 밖이 컴컴하거나 하는 일 없이 하루를 시작하기에 그렇게 나쁘지 않은 아침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해서, 일과 중에도 많이 졸리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늦지 않게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이 사이클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때로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학생이 아니라면야 이 정도로 과하진 않지만, 역시 수험생이라고 생각하면 어딘가 불안해지는 것이다.

남들이 다 옳다고 하는 기준에서 벗어나 서있는 것은 정말 확고한 믿음이 있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다. 내 생각이 옳은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다른 사람의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만큼 미련한 일이 없다. 모두에게 일반적인 일이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때로 미래에 본인을 힘들게 만들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도 나를 걱정하는 가까운 사람들이나, 혹은 내 스스로가 내게 건네는 우려의 목소리에 의연하기가 힘이 든다. 수험생이 일곱 시간씩 자서 뭘 해내겠냐,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 하는 그런 걱정들이 다 나를 위해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아니까 단순히 나를 모르고 하는 말이구나 하고 쉬이 넘기지 못하겠다. 물론 타인의 충고를 쉬이 넘겨서도 안 될 일이다. 근거 없는 고집이 아닌지, 혹은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경계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기준을 객관적으로 설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모두 옳다고 하는 기준은 나에게도 옳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내 스스로의 검토와 반성 없이 그런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벌레를 잡지만,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새에게 잡아먹힌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기준은 자신의 신념으로 한 번 더 검토하고 다시 설정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한 만큼,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할 때 정말 중요한 것은 수면시간이 아니라 정말 집중해서 공부하는 시간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7시간을 잔 사람이, ‘4당5락’을 비판 없이 그저 받아들여 4시간을 잔 사람보다 더 알찬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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