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철희의 바라래 살어리랏다> 변산바다 봄전령 ‘주꾸미’




육상에서는 변산바람꽃이 변산의 봄소식을 몰고 온다면 바다에서는 주꾸미가 봄소식을 몰고 온다. 주꾸미는 2월부터 어부들이 바다에 던져놓은 소랑패기(소라방)에 들기 시작하여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까지 가장 많이 잡힌다. 이 시기가 바로 주꾸미 산란기라 살이 오동통하니 맛이 좋을 때다. 이 무렵이면 부안은 완전히 주꾸미 세상이 된다. 격포나 곰소 등지는 말할 것도 없고, 부안시장의 어물전, 시장통, 심지어 버스정류장 등 행인이 많은 곳 어디를 가나 좌판대 위에는 주꾸미가 가득가득하고, 제철 주꾸미 맛을 보기 위해 찾는 관광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격포나 곰소, 모항 등지로 몰려든다.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변산 앞바다는 육상에 공단이 없는 청정해역인데다. 금강, 만경, 동진강의 영향을 받아 건강한 하구역갯벌이 발달해 있어 주꾸미들에게는 최상의 서식환경이다. 그러기에 이 무렵에 갯벌에서 노닌 변산 주꾸미는 살이 오동통하니 맛이 좋다. 그리고 주꾸미를 잡는 방법은 낭장망이라는 정치성 어구로 잡아 올리는 방법과 소랑패기를 이용해 잡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변산에서는 대개 소랑패기를 이용해 잡는다. 낙지는 펄 속에 구멍을 파고 살지만 주꾸미는 바다 속 펄 바닥에서 활동하다가 빈 소라껍질이나 조개껍질 등의 아늑한 곳을 찾아 산란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 소랑패기를 이용해 잡는 주꾸미는 낭장망에 걸려 든 주꾸미에 비해 깨끗하고 싱싱할 뿐 아니라 오동통하니 알이 꽉 차 있어서 맛이 좋다.

주꾸미는 먹통(먹물주머니)째 먹어야 제 맛이다. 그래야만 먹물을 고스란히 먹을 수 있고, 덤으로 주꾸미 몸통 속에 꽉 차게 들어 있는 쌀밥(주꾸미 알)까지를 먹을 수 있다. 아무 때나 주꾸미 몸통 속에 쌀밥이 들어 있는 게 아니다. 산란기의 주꾸미라야 몸통 속에 쌀밥이 들어 있다. 단백질이라 그런지 맛도 쌀밥과 비슷하다. 맛있는 주꾸미 요리를 위해선 먹통이 터지지 않게 몸통 부분을 잘라내고, 다리는 고운 붉은색을 내기 위해 소금을 약간 넣고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살짝 데쳐야 연하고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먹통째 잘라낸 몸통 부분은 완전히 익혀야 먹물도 그렇지만 주꾸미 알(쌀밥)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 소라방에 든 주꾸미, 오동통하니 알이 꽉 차 있다.


주꾸미의 먹물 성분은 멜라닌인데 먹물주머니의 안벽에는 케로시나아제와 다량의 구리가 들어 있다고 한다. 또 항암물질도 들어 있다는 학설이 있다. 이쯤 되면 몸에 좋다고 선전해대는 먹물과자도 허위과장 광고만은 아닌 듯싶다.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님들은 어찌 알고 주꾸미를 먹통째 먹었는지 그 지혜가 돋보인다.  

그런데 바다환경의 변화로 인해 주꾸미 어획량이 예전 같지 않다. 예전에는 소랑패기를 5000개에서 1만 개만 담가도 수입이 쏠쏠했는데 지금은 3만~5만 개를 담가도 예전 수입만 못하다고 어부들은 울상을 짓는다. 이에 대해 변산반도 송포에서 주꾸미 어장을 하는 박진순 씨는 소랑패기로만 잡는다면야 주꾸미가 고갈되지는 않을 터인데, 고데고리라는 저인망으로 펄바닥을 모조리 훑어버리는 불법어로가 성행하고 있고, 1~2센티미터 크기의 치어들마저 멸치그물로 모조리 포획해버리는데 문제가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어부들은 스스로 그물코를 줄이고, 그것도 모자라 불법어로를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연이 주는 이자를 포기하고 한꺼번에 원금까지를 바닥내겠다는 어리석음이다. 어부의 도(道)가 바다에 빠진 것이다.

<허철희 님은 자연생태활동가로 ‘부안21’을 이끌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