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철희의 자연에 살어리랏다> 우공들의 수난시대



황희 정승이 민정을 살피기 위하여 어느 농촌을 지나다가 소 두 마리로 쟁기질하는 농부를 보고 큰 소리로 물었다.
“노란 소와 검정 소 가운데 어떤 소가 더 쟁기질을 잘하오?”

농부가 황희 정승 가까이 다가와서 가만히 귀에다 대고 대답했다.
“검정 소가 더 잘합니다.”

황희 정승이 이상히 여겨 또 물었다.
“거기서 대답해도 될 것을 여기까지 나와서 귀엣말로 하는 이유는 무엇이요?”

농부는 여전히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리 짐승이지만 잘못한다 하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황희 정승은 이에 느낀 바 있어 그 후로는 남의 잘못을 드러내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위의 사진은 전북 부안의 부안댐이 담수되기 전인 1991년, 내변산 백천 인근의 신적마을 풍경이다. 신적은 백천삼거리를 지나 중계쪽으로 얼마 안가서 꽝꽝나무군락지 못 미친 지점에 있었던 마을로 6~7가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안댐에 잠겨 흔적 없이 사라졌다.

어쨌든, 그날 어둑할 때 숙소를 나서 남여치-마상치-중계를 지나 신적마을에 당도하자 감나무 아래에 소가 매어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만으로도 그림이 좋아 삼각대를 펴는데, 이게 웬일? 금상첨화로 소가 목을 위로 쭉 뻗더니 혀를 날름거리며 감을 따먹는, 아주 멋진 그림을 연출해 주었다. 소는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 다니며 식사 삼매경에 빠져들었고, 나는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한참 후 주인을 만나 소가 감을 따 먹더라고 했더니, 주인은 ‘허허’ 웃으면서 “다른 소는 안 그러는데 저놈은 감을 좋아해 일부러 거기다 매 놓은 거예요. 한 번에 서너 접은 먹어 치우지요 아마…” 한다. 

감이 익을 무렵에는 약방이 문을 닫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 몸에 좋다는 이야기다. 동의보감은 “감을 볕에 말린 것을 곶감(白?)이라 하고, 불에 말린 것은 오시(烏?)라 하는데, 약성은 보통 감과 다르다. 오시는 쇠붙이에 다친데, 불에 덴데 쓰며, 새살을 돋아나게 하며 아픈 것을 멎게 한다. 곶감은 장과 위를 두텁게 하고 비위를 든든하게 하며, 오랜 식체를 삭게 하고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고 목소리를 곱게 한다. 한편, 감과 비슷하나 그보다 훨씬 작은 고욤(小?)은 딸꾹질을 멎게 하는데 쓰며, 검푸른 빛을 띠는 감인 먹시감(??)은 술독을 풀며, 심폐를 눅여주고 갈증을 없앤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감이 사람 몸에 좋다면 분명 소에게도 좋지 않겠는가. 그 좋은 감을 먹이로 아낌없이 내주는 주인을 만났으니, 참으로 주인 잘 만나 팔자가 늘어진 소였다. 우공들의 수난시대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모든 동물이 누리는 짝짓기 권리도 박탈당한지 이미 오래다. 수의사가 주물럭거리는 인공수정으로 번식을 한다. 그리고 일생을 우사에 갇힌 채 주인이 일정시간에 주는 일정량의 사료에 의해 사육되다가 적당히 몸집이 불면 도살장행이다. 그런데 초식동물인 소에게 용도 폐기된 동물들, 심지어 병에 걸려 죽은 양의 내장을 사료에 섞여 먹이는 인간의 탐욕에 소들은 속수무책, 결국은 광우병으로 쓰러지는 수난을 겪고 있다.

소들은 그리워 할 것이다. 황희 정승 시대는 아니더라도 인간과 교감하며 거룩한 일생을 마쳤던 그들의 조상들을….

<허철희 님은 자연생태활동가로 ‘부안21’을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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