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까지 공개, 진보당 극력 반발 속 여야 사태 주시


모든 것이 멈췄다. ‘이석기 쓰나미’로 불리는 사태에 정치권은 모두 ‘차렷’ 분위기다. 국정원 댓글의혹 국정조사를 둘러싸고 치열했던 여야의 공방도, 민주당의 장외 투쟁도 모두 후순위로 밀려나게 됐다.
국정원은 압수수색 이틀만에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해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 의원의 강연이 포함된 진보당 RO(혁명조직) 회합의 녹취록까지 공개되면서 여야 모두 숨을 죽인 채 사태의 추이만 주시하고 있다.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 이석기 사태가 향후 미칠 파장을 예상해 봤다.





정치권이 대혼돈 상태에 들어갔다.
가장 큰 핵심은 내란음모 혐의의 입증 여부다.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진보당은 존폐의 기로에 설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총선 때 야권연대를 결성했던 민주당도 불똥을 맞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국정원의 무리수임이 드러난다면 청와대와 집권 여당은 거센 역풍을 맞을 수 밖에 없다. 이미 선거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엔 거대한 메스가 가해질 수도 있다.

이 의원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끝난 후 진보당 의원들은 ‘황당한 소설’, ‘국정원의 정치공세’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이번 사건의 민감성을 고려해 최대한 대외적 언급을 자제하면서 수사의 향배를 주시하며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9월 정기국회 ‘대혼돈’

여야가 국회로 넘어올 체포동의안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관심사다. 이 의원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됨에 따라 법원은 조만간 법무부를 통해 국회에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서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현역 의원은 ‘회기 중 불체포특권’이 인정된다. 현재 8월 임시국회의 회기 중이고 공백없이 내달 2일부터 정기국회가 소집되기 때문에 이 의원을 체포하려면 국회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사흘 앞으로 다가온 정기국회가 제대로 순항할지도 미지수다. 장외투쟁 중인 민주당이 이른바 ‘종북 논란’에 등 떼밀려 국회에 다시 나오더라도 의사 일정에 협조할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공안정국으로 올 하반기 정국이 장기간 냉각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과거의 공안사건 전례에서 보듯 수사, 기소, 재판 과정을 거치며 현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의 특성상 사건을 키워나갈 가능성이 높고, 진보당 해산을 요구하는 보수단체의 색깔론 덧칠도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20여년 전으로 돌아간 듯”

이번 사건의 배경을 놓고 박 대통령의 인사 문제도 수면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결국 ‘청와대’도 안전지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번 사태를 놓고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20여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공교롭게도 이번 수사는 김기춘 비서실장, 홍경식 민정수석 등 검찰 출신 공안통들이 청와대 핵심 요직에 포진한 직후 터져나왔다. 국가정보원은 또 수사 내용과 공개?강제수사 착수 시점 등을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김기춘 실장을 지목했다. 김 실장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1989년 서경원 의원 방북 사건 당시 ‘좌익 발본색원’을 총지휘한 인물이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터졌을 때는 법무부 장관으로 수사 방향을 최종 결정했다.

1992년 대선 때는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역감정을 조장하기로 모의한 초원복국집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홍경식 민정수석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거쳤다. 이들은 모두 대형 공안사건이 정국에 어떤 파장을 낳고, 어떻게 활용 가능한지를 잘 안다는 공통점이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역시 검사로 재직할 당시 공안 이외 업무를 해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대표적 공안통이다. 검찰은 현재 국정원 수사를 지휘하는 한편, 이후 추가 수사와 기소를 책임지게 된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별명이 ‘육사 3년생도’일 만큼 군에서도 강경보수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강경파 공안통 출신 중용이 공안정국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번 사태엔 결국 청와대의 의중이 깊숙이 담겨 있다는 게 야권의 시각이다.

정국을 ‘빙하기 시대’로 돌려놓은 이석기 사태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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