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규의 새마갈노> 농부가 자연에서 발견한 소소한 풍경들




여뀌

가을 찬 이슬에
더욱 선명한 빛으로 살아나는 여뀌,
서리가 내려서 잎이 붉어질 때까지
여뀌는 그 작은 꽃들이 모여서
버려진 빈터, 허전한 땅을
지상에 내려온 겸손한 은하수로
수놓을 것이다. 
 


▲ 양돈장 사료탱크 앞에 있는 정원수에도 깨끗한 이슬이 내렸다.


▲ 들깨꽃송이에 이슬이 짙게 들어찼다.

아침 산책길

느티나무 가로수 길을 걷는다.
가을 아침 햇살이 나무 사이를
뚫고 들어온다.
갑자기 우두둑 비가 내린다.
나뭇잎에 머물던 이슬이 녹아서
일제히 내린다.

그 내림의 시간은
기적처럼, 우연처럼 1-2분 만에 끝났다.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으로 찍었더니
내가 마음에 원하던 물방물의 쇼는
전혀 찍히지 않았다.
그저 무심한 가로수만 있을 뿐이다.

내 눈이 발견하는 것을
무심한 카메라가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아미蛾眉 그믐달

새벽 5시 20분,
동녘이 희미하게 밝아온다.
그믐달이 처연하게 아름답다.
미인의 선연한 눈썹을 아미蛾眉라 한다지.
맞다, 저 그믐달이 아미달이다.
내일 그믐날 새벽에는
어떤 모습으로 널 볼 수 있을까?





▲오늘 아침 집 앞 굴참나무에서 잠깐 주운 굴밤. 내 어릴 적 우리 동무들은 저걸로 짤짤이도 하고 구슬치기를 대신하기도 했다.

가을 산에 오르려면…

아무 생각도 없이
가을 산에 올라가지 마라.
행운과 불행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단단히 준비해서 가라.

도토리, 밤, 버섯, 다래, 머루, 으름…
행운을 마음껏 담을 큰 자루와
독사와 독침 가시,
낙엽으로 뒤덮인 숨은 함정,
이끼가 미끄러운 바위…
불행을 쳐낼 막대기를 가지고 가라.

언제 어디서 뜻밖에
행운을 만날지,
불행을 만날지는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는 것이니,

아무 느낌도 없이
가을 산에 올라가지 마라.
무디어진 너의 오감을
차고 깨끗한 물로 씻어서
감각의 날을 곤두세우고 가라.




▲ 2007년 가을 중국 길림성 길림시 외곽에서 살 때  찍은 것이다.

농촌 그림은 좋은데…

짧은 바지를 입고 맨다리로
잠깐 마당에 나갔다가
독이 오른 가을 모기에 융단폭격을 당했다.
눈에도 안 띄는 작은 스텔스기라서
나의 레이더에 포착이 되지 않았고
고도의 정교한 비행기술로 다가온
그 넘의 정적(靜寂) 접근을 무방비로 허용해버린 것이다.
그 넘의 폭격기술은 아주 탁월하여
따끔한 작은 아픔조차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20분 뒤에 미치도록 가려웠고
손톱으로 박박 긁은 자리마다
울툭불툭한 봉분이 솟아올랐다.
그림이 좋아서 낭만을 느끼고
농촌에 살러왔던 어떤 분이
벌레 때문에 괴로워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는
그런 시시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송인규 님은 농사를 짓는 목사입니다. `새마갈노`는 자연생태 인터넷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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