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문지연의 나 홀로 동유럽 유람기 2회> 여행의 시작 ‘베를린’



빛바랜 공산정권의 흔적이 감도는 회색빛 도시. 과거 동유럽을 떠올리면 스치는 이미지였다. 동유럽에 대한 막연한 관심이 샘솟았던 이유도 신문지면에서 발견한 회색빛 전운 때문이었다. 전쟁의 긴장을 부인할 수 없는 한반도에 살면서 어떤 동질감이 자극된 연유였을 것이다. 동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 흔적이 사라진 뒤에도 필자의 머릿속에는 한동안 이와 같은 우울한 이면들이 뿌리박혀 있었다.
서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발전했고 여행 지역으로 덜 조명 받고 있다는 호기심과 개척 정신 또한 여행지로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동유럽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펼쳐진 도전은 또 다른 나를 만드는 그릇이 되었다.
독일을 시작으로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루마니아, 그리스, 터키에 이르기까지 9개국을 홀로 거닐었던 시간들을 꺼내어 본다.




# 고층에서 내려다본 베를린 시내의 모습. 옛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조화를 이뤄 종종 시공간을 초월하는 느낌이 들었다.


결코 흐르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드디어 출국 당일. 오후 11시5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 했다. 유럽에서 펼쳐질 화려한 시간들에 대한 전조인가. 애써 긍정해보며 설레는 마음 떨리는 마음, 두려움과 걱정스런 마음을 끌어안고 한참이나 빗길을 뚫었다.

비 때문인가, 8번째 늑골이 엄청나게 쑤셨다. 이날로부터 5일 전, 생전 관심 없던 스쿠터를 타보겠다고 시도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엉덩이를 붙이려던 찰나 성질 급한 손이 엑셀을 먼저 당기는 바람에 스쿠터가 질주본능을 터뜨렸다. 그런데 아뿔싸, 불과 20미터 앞에 연식이 좀 돼 보이는 검정색 세단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멋스럽게 불법주차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걸 들이 받았다가는 유럽 여행은 끝나겠구나.’ 순간 정신이 번뜩였다. 정확히 세단 앞으로 돌진하는 스쿠터를 온 몸으로 막았다. 그러면서 스쿠터의 핸들이 필자의 8번째 갈비뼈를 강하게 내리쳤다. 세단을 살리며 필자의 갈비뼈를 헌납한 살신성인(?)의 순간이었다. 그나마 언덕배기여서 달리는 스쿠터를 쫓아갈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다음 날 병원에서 의사는 “엑스레이 상으로 이상이 없다”고 진단했다. 다만 “부러진 흔적이 20일 지난 뒤에 나타날 수 있으니 추후에도 계속 아프면 그때 다시 병원을 찾아라”고 덧붙였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에 확인한 바로 당시 갈비뼈가 부러진 것이 확실했다. 결론적으로 의사의 ‘괜찮다’는 한 마디가 여행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됐던 것이다.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효능이 없는 거짓 약을 환자에게 진짜라고 속이고 복용케 했을 때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였다.

거친 빗속을 뚫고 달리는 자동차의 머리 위로 ‘인천공항’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또렷했다.


# 비가 오락가락한 흐린 날씨의 베를린. 많은 수의 경차가 눈에 띈다.

‘가만, 역류성 식도염 약은 챙겼나? 위염 약하고 신장 약은 어디에 뒀더라. 무릎 관절통을 잘 참아야 할 텐데. 그나저나 엉덩이 종기 때문에 앉지도 못하겠고. 에고 쑤셔라, 갈비뼈야.’

그랬다.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사용할 짐 중 절반 이상이 약이었다. 짐 가방의 반을 차지하는 약 때문에 공항 검색대는 제대로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걱정과 두려움, 긴장과 설렘이 묘한 줄타기를 하는 사이 서서히, 미지의 대륙으로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비행기 좌석에 앉으니 떨림과 기대감이 강렬하게 요동쳤다. 졸지에 외로움도 밀려왔다. 여러 가지 감정들은 밤이 새도록 묘한 줄타기를 해댔다.

그러는 사이 기내에서 두 번이나 밥을 먹었다. ‘정말 멀긴 멀구나.’ 부러진 갈비뼈 때문에 이리저리 뒤척이며 선잠을 자다보니 어느새 동이 트는 것도 느껴졌다.

깊은 한숨 몰아쉬며 차창 밖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반갑게 맞았다. 동유럽 유람의 첫 시작을 알리는 태양이었다.  

‘미지의 대륙에도 반드시 동은 튼다. 태양은 어느 곳도 차별하지 않는다. 유럽에서 맞이하는 첫 해와 함께,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 역무원도 개찰구도 없는 지하철역 안의 모습. ‘시민의 양심’으로 운행되는 지하철에서는 표를 따로 확인하는 과정이 없다. 가끔 검표원의 검문으로 무임승차가 적발될 시 벌금을 문다고 한다.

드디어 12시간이 넘는 운항을 마치고 비행기가 터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발을 내밀었다. 코끝으로 터키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스며들었다.

이제는 독일 베를린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비행기 안에서 또 한 번의 기내식을 먹고 3시간가량 영혼 빠진 몸을 말았다 폈다를 반복하며 지루한 고통을 이겨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이 나라 저 나라 공항을 오가는 데만 장장 20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비행기 안의 에어컨 바람 때문에 비염이 도저 감기에 옴팡 걸리고 말았다. 빈사 상태였다. 정말이지 지치고 힘에 부쳐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24일 오전 9시께. 베를린 테겔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짐을 풀기 위해 한국에서 예약했던 한인민박으로 향했다. 독일이 분단됐던 시기, 동독 구역이었던 곳에 위치한 숙소다.

택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느 대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였다. 특징이라면 한국산 차가 굉장히 많다는 점이었다. 자동차 강국 독일의 땅을 누비고 다니는 한국 차들을 보니 마치 내가 만든 것처럼 묘한 뿌듯함이 샘솟았다. ‘역시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구나.ㅎㅎ’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몸을 대자로 뻗었다. 여행이고 뭐고 일단은 내 몸부터 살리고 볼 일이었다. 그런데 이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땅으로 하염없이 꺼지고 꺼져, 기어이 깊은 지하에 도달할 것만 같은 요상한 침대로 인해 갈비뼈가 으스러질 듯 아팠다. ‘아, 괴롭다!!’


# 베를린 시내를 누비는 트램.

잠깐의 쉼을 접고 서둘러 베를린을 둘러보기로 했다. 베를린에 머물 시간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가지고 온 옷 서너 벌을 겹겹이 껴입은 채 밖으로 향했다. 어떤 사람은 털 부츠에 무스탕을 걸치고 있었다.

지하철역은 꽤 작았다. 역무원도 없었다. 전차도 6량 정도로 작았다. 필자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인 화장실도 없었다. 이후 다녔던 유럽 대부분의 지하철이 그러했다. 우리나라처럼 화장실, 유실물센터, 쇼핑센터 등이 자리한 대규모의 역이 아니라 짧은 구간을 오가는 작은 정류장 같은 느낌들이었다. 대체로 개찰구가 없는 것도 특징이었다. 확인하지 않아도 알아서 표를 구매하고 탑승하라는 의미라고 했다. 시민의 양심을 믿는다는 것이다. 가끔 검표원이 나타나 티켓을 구매했는지 확인하는데 그때 발각되면 벌금을 문단다.

독일은 과연 맥주의 본고장다웠다. 객차 안에서 맥주를 즐기는 이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럼에도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는 이는 없었다. 또 서울의 곳곳을 엉망으로 만드는 과음의 흔적인 토사물 따위도 없었다. 간간히 2리터짜리 페트병으로 소위 ‘병나발’을 부는 요주의 인물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필자가 목격한 순간에는 문제가 될 만한 별다른 행동은 없었다.

객차 안은 물론이고 거리 곳곳을 거닐면서 햄버거와 빵을 먹는 이들이 많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다중시설을 함께 이용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로 음식물 섭취를 삼가는 우리나라와는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한 손에는 맥주를 한 손에는 소시지를 들고 걸어 다니며 음식을 먹는 이들도 굉장히 많았다. 거리 곳곳에 큰 개가 많고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시선을 끌었다.

어느새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빗줄기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굵어졌다. 그렇다고 필자의 발걸음을 제지할 수는 없었다.

<베를린 편 다음호로 이어집니다.>

ohora88@naver.com<문지연 님은 언론인이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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