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힐링’ 열풍이다. 정체불명의 단어 ‘힐링’이 곳곳을 뒤덮고 있다. 나는 이 힐링의 바다 속에서 그리 머지않은 과거의 ‘웰빙’ 열풍을 떠올린다. ‘웰빙’이라는 단어만 붙으면 마법처럼 수요가 늘어나던 그때.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웰빙’의 물결에 탑승하고자 ‘웰빙’ 푸드를 먹고, ‘웰빙’ 하우스를 짓고, ‘웰빙’을 위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했었다. 당시 최고의 관심사는 단언 ‘웰빙’이었고, 조금이라도 더 ‘웰빙’과 가깝고자 하는 사람들을 사로잡기 위해 이게 과연 직접적으로 ‘웰빙’이란 꼬리표를 달 수 있을 만한 것인가 의문이 생기는 것들도 뻔뻔하게 ‘웰빙’으로 포장되었었다. 미디어에서도 대중의 관심사를 따라 종일 ‘웰빙’ 사례, ‘웰빙’ 상품, ‘웰빙’ 스타일 제안을 떠들어 댔고, 그런 미디어를 접하는 대중들은 점점 더 마법 같은 ‘웰빙’주문에 세뇌되었다. ‘웰빙’하지 않으면 삶의 질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진정한 의미의 ‘웰빙’을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들도 무턱대고 ‘웰빙’의 표상을 좇아 시류에 합류했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난 지금, ‘웰빙’의 위상은 어떠한가. 물론, 경제적인 이유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도 있겠지만, ‘웰빙’의 거품은 이제 거의 사라져, 그 ‘약빨’이 더는 과거의 위용에 미치지 못한다. ‘웰빙’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판매대에 있었던 것들은, 이제는 슬금슬금 ‘힐링’이라는 꼬리표를 달기 시작했다. 자전거 매장에 오랫동안 붙어 있던 ‘웰빙 라이딩’ 라고 쓰인 팻말이 어느순간 ‘힐링 라이딩’으로 둔갑해 있는 것을 보고, 아 정말 이제는 ‘힐링’이 대세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웰빙’과 ‘힐링’이 본질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긴 하다지만, 누가 봐도 이건 ‘상술’의 일종 아닌가. ‘힐링’을 등에 업고 나타난 등산과 캠프시장은 이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과열되고, 또 비합리적인 가격을 자랑한다. 하지만 ‘힐링’에 눈이 먼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비합리적인 소비를 하곤 한다. 뒷동산에 올라가면서 초고가 전문 등산장비를 구매하고, 일 년에 며칠뿐인 캠핑을 위해 전문 텐트, 그릴 등을 고가에 구매하는 것. 그런 전문적이고 고가의 물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것을 보면 진정 이런 물품들을 소비해야 할 만큼 이토록 전문적이고 깊게 즐기는 사람들이 이만큼 많았던가 싶은 생각이 든다.   


# 일러스트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말 지긋지긋 할만치 ‘힐링’이 도배되어 있다. 비율상 내 또래 여자친구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페이스북엔 뭐 업로드 되는 내용마다 죄 ‘힐링’이다.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어도 ‘힐링’, 친구를 만나도 ‘힐링’, 책을 읽어도 ‘힐링’, 여행을 가도 ‘힐링’, 산을 올라도 ‘힐링’…. 그냥 만능처럼 모든 사진 밑에 ‘힐링’이란 단어만 붙으면 본인이 설명하고자 했던 오늘의 행복감이 효과적으로 설명된다는 듯 말이다. 그뿐인가, 사람들이 쓰고 올리는 것도 죄 ‘힐링’인데 텔레비전 속에도 온통 ‘힐링’이다. 내가 TV를 잘 보진 않지만 ‘힐링캠프’니, ‘아빠어디가’ 등등의 프로그램들이 죄다 ‘힐링’을 찾는 사람들의 이목을 붙잡기 위해 고군분투다. 

그 바람에 ‘이제 식상한 힐링은 그만!’ ‘힐링’이라는 말만 보면 두드러기가 일어나고 손이 오그라든다는 ‘힐링 공포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여럿이다. SNS에 ‘힐링타임’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유머가 공감을 얻고, 제발 그놈의 ‘힐링’ 그만두라는 누리꾼들의 의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Healing’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숭배하듯 사용하는 것도 우습다는 의견도 많다. ‘힐링’, 치유라는 뜻이다. 달콤한 초콜릿 디저트 사진이나, 네일아트, 쇼핑한 것들 등등의 사진을 올리면서 ‘치유’, ‘치유’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내내 치유나 하고 사는 사람들이냐는 거다. 나는 요즘 SNS를 구독하는 것도 뜸하고, TV는 더더욱 잘 보지 않으니 뭐 그렇게 넌더리를 칠만큼 질리는 일인가 싶지만, 그래도 유행처럼 번지는 ‘힐링 열풍’에 미처 합류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힐링’이란 단어가 만능처럼 숭배 받는 현재 상황이 조금 의아한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힐링’에서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자신이 올리는 ‘힐링’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오늘 내가 겪은 행복? 그 자랑? ‘힐링’이 범람하는 SNS. SNS속 사람들이 죄다 행복해 보이는 것도 아마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힐링’이 지긋지긋하게 많이 등장한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그리고 자주 행복한 경험을 많이 한다는 증거라기보다는, 정말 말 그대로 잦은 ‘치료’가 필요하다는 뜻일 수 있다. 위안이 필요한 것이다. 초콜릿 케이크에 위안을 얻어야 할 만큼 늘 고단하고 외롭다는 뜻 일 수 있다. ‘힐링’이 이렇게 뜨는 걸 보면, 우리 사회에 정말 ‘위안’이 많이 필요하구나 느끼게 된다. 그래서 SNS의 ‘힐링’ 도배글들을 보면 식상한 한편으로 ‘일상에 지친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구나.’ 그런 짠한 마음이 든다. 현대인에게 우울증이란 마치 감기처럼 가볍고 흔한 마음의 병이라고 한다. 그저 기침 조금 쿨럭쿨럭하고, 콧물 조금 훌쩍훌쩍해도 자신이 감기에 걸렸구나 알아채지 못하고 날이 춥네 하고 말다가 독한 감기를 앓게 되는 것처럼, 자신의 우울증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 병세를 키워가는 사람이 많단다. 유독 공포증도 많고, 우울증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은 현대 사회의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오히려 평범한 것이다. 아프다고 호소하지도 못할 만큼, 고통을 덜어내 주긴 커녕 그를 드러내는 것마저 유별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사회. 일상의 작은 숨통인 SNS나 TV속에서라도 ‘위안’받고 싶은 사람들이 ‘힐링’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단순히 누구를 만났고 오늘은 뭐했고 이렇게 행복했다 하는 자랑이 아니라, 나는 늘 이렇게 지쳐 있어요, 하는 SOS신호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베스트셀러 책의 제목이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내 또래 친구들의 입에 붙은 것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것도, 20대의 청춘들이 얼마나 힘든 날을 보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사실 가장 큰 위안을 받는 때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아니고, 예쁜 물건을 샀을 때도 아니고, 단지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다. 혼자가 아니라는 별것 아닌 안심. 그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아프니까 청춘이다. 책을 읽은 사람이든 아닌 사람이든, 이 책의 제목만으로도 삶의 위안을 받은 사람이 꽤 된다. 저 짧은 한마디엔 난 틀리지 않았어. 누구나 겪는 과정일 뿐이야. 다독여주는 것 같은 다정함이 있다. 모두가 바라는 건, 그저 그뿐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길.

어제도 내 친한 친구가 SNS에 커피전문점의 커피와 디저트 사진을 올리며 ‘힐링’을 노래했다. 식상하다는 생각이 일기 이전에, 그 친구가 가지고 있었을 외로움이나 스트레스, 마음의 상처, 방황,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 아마 내가 가진 것들과 흡사한 모양일 그 모든 것들에 공감하며, 또한 알아주지 못한 미안함을 더하여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짠한 마음이 올라왔다. 지나친 투영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오랜만에 걸어 본 전화에서 친구가 통화의 끝에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낸 것 같다고 느꼈다. 요즘 힘들지? 나도 그렇지 뭐. 그래도 우리 힘내자. 별것 아닌 말들로, 나도 친구도, 먹먹하게 물먹은 공감을 느낀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함께 힘내자 말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동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기 마련이다. ‘힐링’이 필요한 사회. 가장 필요한 건 ‘공감’이다. 가장 큰 ‘힐링’은 곁에 있어주는 사람 그 자체니까.

돌아보자. 나는 위안에 목마른 사람인가. 나는 감기를 앓고 있진 않은가. 솔직하지 못하게 ‘힐링’이라는 단어 뒤로 숨지 말자. 사실 우리는 모두 위안에 목마른 사회에 살고 있다.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내밀자. 위안은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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