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이산가족 상봉’ 남북관계 개선 물꼬 트나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에 전격 합의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사실상 첫 단추를 꿴 것이란 평가다. 북으로서는 최근 잇따라 유화 메시지를 내놓은 데 따른 진정성을 대내외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게 됐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9월 이산가족 상봉이 돌연 무산됐던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북한이 이번 실무 접촉에서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패키지로 요구했던 금강산 관광 재개 협의를 전제하지 않았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번 상봉 자체가 남북 모두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향후 금강산 관광, 남북경협 문제 등의 실마리를 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산가족 상봉의 의미와 남은 과제에 대해 짚어봤다.
 







남북이 오는 20일부터 5박 6일간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기로 합의한 가운데 우리 측은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예상과 달리 북한이 우리 측 제안을 대부분 받아들이면서 상봉 행사가 3년 4개월 만에 다시 열린다. 통일부 한 관계자는 “그동안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이라고 한 데 대해 북한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답을 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 정부도 이산가족 상봉을 관계 개선의 모멘텀으로 삼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DMZ 세계평화공원 연내 시작”

이런 가운데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국방부에서 열린 2014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해 대북, 통일정책에 대한 실질적 성과를 거둠으로써 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통일시대를 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다. 류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작업과 관련해서도 “연내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사업 시작 시점에 대한 첫 정부 발표다. 특히 통일부는 경제협력에 무게를 뒀다. 개성공단 제도개선 등을 통해 국제화 여건을 조성하고, 북한 주민의 생활 향상을 위한 농축산,산림 협력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는 등의 계획이다.

또 지난해 박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추진이 본격화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북한과 러시아 간 ‘나진-하산 물류사업’ 지원방안도 강구하기로 했다. ‘부산-나진-러시아’로 이어지는 남,북,러 물류 활성화 체인 구축이 목표다.

유라시아 철도 연결사업과 관련해선 새누리당 의원 20명이 참여한 ‘유라시아철도 추진위원회’가 발족한 상태다. 위원회는 박 대통령이 지난해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실현방안으로 밝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토대로 국책사업으로 지정한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건설 계획을 뒷받침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로 명명된 유라시아철도 건설사업은 부산에서 출발해 북한, 러시아, 중국, 유럽을 관통하는 철도 길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위원회는 오는 21일 국회에서 관련 정책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정부는 이미 우리 기업의 참여를 지원해 나가기로 했다”며 “일단 우리 기업의 현장실사를 위한 방북 등을 지원해 나갈 예정이며, 향후 투자계약 등 구체적인 사업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각 사업추진 단계에 맞추어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산가족 상봉으로 북한 역시 얻는 게 적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달 1일 신년사와 16일 국방위의 ‘중대 제안’ 등 일련의 대화 공세가 위장평화 공세로 의심받던 상황에서 ‘진정성’을 부각하는 동시에 장성택 처형 이후 각인된 공포 통치 이미지를 완화하는 효과도 노려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성장 세종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장성택 숙청에도 불구하고 경제 부문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친 장성택’ 인사를 계속 기용하는 등 김정은 체제 안정의 한 축으로 경제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라며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강경파가 득세한 북한 내에 온건파의 입지를 다시 넓히기 위해 남북경협 등을 통한 연결고리 강화가 필요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수용한 만큼 향후 금강산 관광 재개와 비료, 쌀 등의 식량지원을 위한 협의를 우리 측에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산상봉 행사의 성공 개최로 남북간 신뢰가 형성된다면 우리 정부가 준비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본격 착수될 전망이다. 정부는 사회문화교류, 인도지원, 대북 간접투자 확대 등의 방식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점진적으로 터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남북경협 가능성은?

개성공단과 함께 남북경협의 양대 축이었던 금강산관광 재개의 실마리도 잡혔다. 20일부터 진행될 이산가족 상봉 장소가 우리 주장대로 금강산 관광의 핵심이었던 금강산호텔과 외금강호텔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금강산관광과 DMZ 평화공원을 연계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원광대 총장)은 “설악산과 금강산 사이에 DMZ국제평화공원을 만들고, 남쪽으로 평창, 북쪽으로 마식령까지 포함하는 동해안 국제관광지구를 구상해야 한다”며 “이 경우 산과 바다와 눈이 만나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관광지가 된다. 어떻게 통일대박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남북한 각각의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산가족상봉에 이은 금강산관광, 남북경협 확대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북한이 핵무장 해제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 한 유엔의 대북 금수조치, 5.24 조치(대북경협중단) 등의 경협 빗장을 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리고 이미 지난해 개성공단 가동중단 사태로 확인됐던 북한 내 사업의 연속성 보장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정 전 장관은 “남북경협이 제대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북한에 진출해야 하는데 당장 북한에 대한 직접투자도 유엔 결의로 막혀 있고, 설령 투자한다고 해도 북한 당국이 사업지속성을 보장할지 불투명하다”며 “남북한 신뢰만 확실히 구축된다면 경협을 위해 정부가 기업의 등을 떠밀지 않아도 기업 스스로 새로운 사업기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무엇보다도 이달 말 존 케리 미국무장관의 한중 양국방문, 4월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북한이 명절로 쇠고 있는 2월 16일 김정일 위원장 생일을 전후해서 억류하고 있는 재미동포 케네스 배를 석방하면 북미 사이에 작은 신뢰가 만들어질 수 있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새로운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합의 뒤집긴 힘들 것

한편에선 지난 6일 북한이 ‘최고존엄’ 비방 중단과 한미군사훈련 중지 등을 요구하며 합의 이행을 재고할 가능성을 거론한 만큼 이산상봉 과정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이달 20∼25일 전체 상봉 기간에서 키리졸브 한미군사훈련과 겹치는 24∼25일의 상봉이 무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북한이 올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강하게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될 것으로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신중론이 지배적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가 5일 서해 상공에 출격했다면 북한 국방위원회가 묵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방위가 침묵한다면 최고지도자에 대한 ‘불충’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이 강한 어조로 경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당장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무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성명은 이산가족 상봉의 무산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남한의 추가 적대행위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북한은 큰 틀에서 올해 신년사와 국방위원회 ‘중대 제안’을 바탕으로 대남 유화공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고 내다봤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무게가 실린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한 정부의 태도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성사될 수도, 무산될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며 “남한이 ‘최고존엄 모독’을 중단하고 적어도 이산가족 상봉 기간에는 한미 군사훈련을 중지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이산가족 상봉 합의 하루 만에 이런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북한 내부의 혼선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이산가족 상봉이 예정된 이달 20∼25일 중 한미군사훈련과 겹치는 기간의 상봉은 무산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을 반대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합의도 재고할 뜻을 밝힌 것은 이산가족 상봉을 정세 전환을 위한 수단으로 최대한 활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북한의 입장에서 이산가족 상봉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수단일 뿐이며 목적은 ‘평화’를 내세워 남한에 군사훈련 중지를 압박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나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필요로 하는 만큼 ‘진정성’을 의심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산가족 상봉 합의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향후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기까지 북한이 오늘처럼 다양한 구실을 들어 남한을 압박함으로써 상황의 유동성을 키울 가능성은 커 보인다”고 말했다.

장 선임연구원은 “결국 상봉을 고대하는 이산가족들만 마음을 졸이게 됐다. 정부는 북한의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 성명에 대해 유감만 표명하고 그칠 것이 아니라 적십자 실무접촉과는 별도로 당국간 대화를 제의하는 등 정치적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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