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통진당 해산 사태 진단> '민변' 최병모 변호사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 박탈 등 헌정사상 첫 해산 명령을 받은 통진당 사태로 한국사회가 들끓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유력 언론에서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9일 법무부의 청구를 받아들여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헌재 결정으로 정당이 해산된 첫 사례다.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에 반한다며 정당활동금지가처분과 함께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다. 법무부와 통진당은 지난달 25일까지 18차례에 걸친 공개변론을 거치며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여왔다. 그동안 법무부는 2907건, 통진당은 908건의 서면 증거를 각각 제출했다. 이 사건의 총 기록은 A4 용지로 약 17만쪽에 달한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돼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헌재는 통진당 해산 근거로 목적과 활동 모두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에 충실한 조직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통진당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핵심강령으로 도입한 이른바 민족해방(NL) 계열 인사들이 북한 추종세력이라는 데 주목했다.

용어 자체가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주도세력의 인적구성과 실제 활동을 통해 파악해보니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 통진당의 최종 목적이라는 게 헌재의 결론이다. 헌재는 주도세력 상당수가 과거 민혁당이나 실천연대·일심회 등에서 활동하며 북한 주체사상을 추종하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옛 민주노동당 시절의 ‘사회주의’ 강령을 ‘진보적 민주주의’로 대체한 세력은 민족해방 계열이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한 법무부는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김일성의 1945년 강연에서 비롯된 북한 건국이념이고 통진당이 이를 계승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헌재는 또 민족해방 계열의 역사인식이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뿌리를 둔다고 판단했다. 헌재에 따르면 통진당은 남한사회를 천민자본주의 또는 식민지 반자본주의, 특권적 지배계급이 민중을 수탈하는 불평등사회로 보고 민족해방·민중민주 혁명을 통해 현 체제를 대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헌재는 이 과정에서 ‘진보적 민주주의’가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기 체제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런 목적을 위한 통합진보당의 활동 역시 폭력적·비민주적이어서 우리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와 근본적으로 충돌한다고 봤다. 이는 이석기 의원이 주도한 이른바 ‘RO’로 여실히 드러났다는 게 헌재의 설명이다. 아울러 내란음모 회합이 곧 통진당의 활동으로 귀속된다고 판단했다. 통진당이 경기동부연합을 중심으로 한 ‘RO’와 그 비호·묵인세력으로 구성됐다는 법무부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헌재는 비례대표 부정경선과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지역구 여론조작 사건 등 그동안 통진당의 활동이 법치주의와 선거제도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폭력과 위계까지 동원돼 민주주의 이념에 반한다고 봤다. 헌재는 내란음모 회합을 언급하면서 “표현의 자유 한계를 넘어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구체적 위험성을 배가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현재의 이 같은 결정에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비롯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석기 의원의 변호인이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역임한 최병모 변호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떤 정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그걸 목표로 할 것을 가정한다 하더라도 해산해선 안 된다”며 “서로 다른 주장이 허용되는 게 민주주의 아닌가. 예를 들면 의회를 표결로 장악하면서 사회주의 방향으로 가고 싶다는 그런 강령을 가지고 있더라도 해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이석기 사태의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헌재 결정은 대법원에 대해 일정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꼴이다. 대법원 판결 나기 전에 빨리 해산시키겠다는 의도”라며 “대법원에서 만약 이석기를 무죄로 판결했다면 정부도 헌재도 난처해졌을 것이다. 이제 대법에서 이석기가 유죄 판결 확률이 높아졌다. 그래야 통진당 해산도 정당해지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분석했다.

최 변호사는 이번 사태를 ‘파시즘 시대의 서막’이라고까지 했다. 그는 “민주주의 후퇴 문제가 아니라 파시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르겠다. 더 이상 무슨 얘기하겠는가. 혁명적 변화가 와야 한다”며 “폭력혁명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제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고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시행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최병모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통진당이 결국 해산됐다. 이번 사태 어떻게 보고 있나.

▲ (웃음)할 말이 없다. 파시즘 사회의 도래라고 밖엔….

- 헌재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핵심강령으로 도입한 이른바 민족해방(NL) 계열 인사들이 북한 추종세력이라고 판단했다.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 이들의 목적이라고 했는데.

▲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떤 정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그걸 목표로 할 것을 가정하더라도 해산해선 안 된다. 국가체제를 뒤엎는 폭력혁명이 아니라면 말이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주장이 허용되는 게 민주주의 아닌가. 예를 들면 의회를 표결로 장악하면서 사회주의 방향으로 가고 싶다는 그런 강령을 가지고 있더라도 해산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 헌재는 이석기 의원의 이른바 ‘RO’ 사태로 폭력 활동이 드러났다고 했다. 그런데 이석기 의원의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 변호사는 이석기 사건의 재판을 담당하고도 있는데.

▲ 대법원에 대해 일정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꼴이다. 대법원 판결 나기 전에 빨리 해산시키겠다는 의도로 비춰진다. 대법원에서 만약 이석기를 무죄로 판결했다면 정부도 헌재도 난처해졌을 것이다. 이제 대법에서 이석기가 유죄 판결 확률이 높아졌다. 그래야 통진당 해산도 정당해지니까 말이다.

이석기는 1심에서 전부 유죄 받았다가 항소에서 대부분 무죄 받았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1심 판결이 엉망이었다는 뜻이다. 선전선동은 유죄를 줬지만, 사실 그것도 항소심의 모순이다. 내란이란 게 두 사람이 소주마시며 ‘우리 내란 하자’고 해서 죄가 되는 게 아니다. 한 지방을 교란해서 폭동상태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내란예비음모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내란하자고 쓰거나 말한 것은 아무런 죄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모든 게 정부와 국정원과 검찰의 작품이다.

- 헌재의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 헌재 결정은 단심제라 아무런 방법이 없다. 헌재를 해산하기 전엔 안 된다. 헌재를 해산해도 이미 나온 결정이다. 통진당 입장에선 방법이 전혀 없다. 정부는 애초 해산청구 했을 당시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후폭풍을 예측했을 것이다. 그러나 받아들일 것이라고 자신감과 확신에 차있었고, 결국 이렇게 밀어붙였다.

- 국제 정세에 맞춰봤을 때 통진당 해산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나.

▲ 의미고 뭐고 간에 파시즘 사회가 도래한 것 아니겠는가. 정당 해산이라는 게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잘 모르겠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엔 없었던 것으로 안다. 히틀러 시대 독일에서 공산당 해산 결정을 한 적 있다. 독일사회가 극우 쪽으로 기울면서 벌어진 일이다. 후속조치로 수 만명에 달하는 이들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우리도 어쩌면 통진당 해산 이후 그런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이석기 사건은 부정선거를 덮으려고 시작했던 것 같고 통진당 해산은 정윤회 사태를 덮으려는 목적이 있지 않았겠는가. 아무래도 청와대가 궁지에 몰려있으니까 통진당 해산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려 했을 것이다. 아마 정윤회 사태가 계속 시끄러워지면 통진당 당원 검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박근혜 정부 들어 전교조, 통진당 등이 탄압 받았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나.

▲ 박정희 대통령에게 배운 수단이 통용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통용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힘이 없으니 견제세력도 없다. 자신과 반대되면 일단 무조건 처단하고 본다. 다음 차례는 아마 새정치민주연합 해산일까(웃음). 사법부까지 이제 휘청거리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과거 조봉암 사건,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형, 인혁당 사건 등이 떠오른다.

- 국민들은 예상외로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통진당이 해산돼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수 있었다.

▲ 현실 생존의 문제 때문에 뒤돌아 볼 여유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보자면, 우리나라가 사실상 친일청산을 못했던 역사를 봐야 한다. 반민특위를 통해 불과 몇 사람만 유죄판결을 받았다. 북쪽에 있던 친일파마저 남쪽으로 내려왔다. 참 기이한 역사다.

우리는 또 잔혹한 식민통치를 당했다. 이런 가운데 친일파들이 6.25 이후 다시 득세했다. 그 친일파들이 국내에 뿌리가 없었던 이승만과 야합했다. 4.19 이후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박정희는 민주당이 아닌 자유당 사람들과 당을 만들었다. 그 이후 새누리당이 이어져 온 것이다.

그동안 60년 통치 기간 중 계속되어 온 과거청산의 부재, 이것이 국민들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비판의식? 비판해봐야 안 바뀐다고 믿고 있다. 이러다 끝나지 뭐가 바뀌겠는가, 하는 불신이 있다.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의 자포자기 심정이 지금까지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 통진당도 마찬가지지만 소수 정당은 힘없이 사라지거나 목소리를 못내는 형국이다. 대안이 있다면.

▲ 민주주의 후퇴 문제가 아니라 파시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르겠다. 더 이상 무슨 얘기하겠는가. 혁명적 변화가 와야 한다. 폭력혁명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제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소수정당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시행해야 한다.

지금 국회의원들이 국민이 원해서 뽑힌 의원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식의 단순 다수제를 깨려면 비례대표제가 만들어져야 한다. 비례대표제를 만드는데 있어선 헌법 개정도 필요 없다. 국회법 조항 한두 개만 고치면 된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이 궤멸되고 있는 건 어찌 보면 잘 된 일이다. 궤멸되고 정신 차리고 이러다가 우리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겠다 싶으면 진보정당과 연합해서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면 된다. 사실 국회의원 선거제는 우리나라 제도 중 가장 나쁜 제도다. 이건 박정희 정부 시절 만들었고 87년에도 고치지 못했다. 어느 순간 이 선거제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오고 바뀌게 되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대한민국이 바뀔 수 있다고 본다.

- 최 변호사는 그동안 국가보안법 문제 등 시국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끝으로 진보 진영의 종북 문제, 사회주의 문제 등을 어떻게 생각하나.

▲ 소위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공산주의자로 매도된다. 공산주의 사상 자체를 입에도 올려선 안 되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의 상황이 이렇다. 북한에 대해 공격적인 발언을 안 한다는 것 자체가 범죄로 매도된다.

사회주의 사상은 어찌되었든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상 중 하나다. 그것을 무조건 덮어놓고 들여다보지 말라는 건, 그 자체로 문명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사회주의로부터 받아들인 제도도 많다. 소위 노동조합제도도 사회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흔히 자유를 강조하면 보수이고, 평등을 강조하면 진보라고 본다.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가치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데 그게 지금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여기엔 또 분단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진보가 북과 연계된다는 논리다. 사회주의 얘기하면 보수 쪽에선 북한과 연계시킨다.

논리적으로 보면 북한은 독립국가다. 누가 뭐래도 독립국가다. 공안검사들이 아무리 반국가단체라고 100번을 말해도 북한이 국가인 건 변함이 없다. 북한이 아니더라도 탈레반 정부라든지 비합리적인 종교적 열정에 의해 통제된 사회가 있다. 아프간 비판하지 않으면 넌 진보고 나쁜 놈이다? 이렇게 말하진 않는다. 왜 유독 북한 비판만을 강요하는가. 그런 강요된 사회에 살고 있고, 북한을 기준으로 공안몰이가 계속되고 있다.

진보 쪽에서 북한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건 아니다. 다만 북한은 북한이고 우리는 우리다. 왜 끌고 와서 대답하라고 강요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진보 진영 내에 북한에 대한 내재적 관점도 있다. 북한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지금 저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그게 종북이나 범죄가 될 수는 없다. 황당한 건 진짜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들은 오히려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정치적 이유로 예외 없이 다 사면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쪽 사람들과 연계된 국가보안법 사건은 대부분 조작이고 가공된 사건이다. 이번 통진당 사건, 이석기 사건도 마찬가지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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