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회색 빛. 멀리서 들려오는 새벽의 소리는 대청 마루 위를 한 바퀴 돌더니 이내 꽁꽁 닫혀있는 방문에 부딪쳐 고꾸라지고 말았다. 대신 빛이 되어 아직 몽롱한 준오의 의식을 타고 이마를 거쳐 눈으로 전해졌다.

씨발.

욕이라도 한마디해야 할 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채 한숨도 잠을 청하지 못한 준오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른 새벽을 다 채우지 못하고 생명을 다해 버린 부엌 아궁이의 불꽃 때문에 아까부터 준오는 등에 독한 한기를 느껴야 했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귀 언저리에서 잠시 머문 눈물은 목을 거쳐 베갯잇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떨어져 내렸다.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시린 설움이 뭉개 뭉개 피어났다. 인후부로 눈물이 들어갔는지. 컥, 소리가 나며 목이 메었다. 꿀꺽, 하고 침을 삼키려는데 코로부터 매운 고통이 엄습한다.

눈빛 때문인가? 방문이 환하게 밝아있다. 해가 뜬 건가? 바로 옆에선 둔탁해 보이는 실루엣 하나가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다. 아버지다. 살이 찌지 않았는데도 기형적으로 튀어나온 배가 숨을 쉴 때마다 씰룩씰룩 거리는 것이다. 준오는 새삼 결코 작지 않은 그 요동에 눈길을 주다가 이내 쓰윽, 이불에 얼굴을 문질렀다.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저건 춥지도 않나? 다른 동물들은 겨울만 되면 전부 다 동면에 들어간다는데. 그런데 이전에 듣던 그것과는 뭔가 다르다. 준오는 토끼 귀를 해 가지고 원인 파악에 나섰다. 잠시 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에디슨도 전기를 발견했을 때 바로 이런 소리를 냈을 것이다. 그건 전깃줄의 울음소리였던 것이다. 아직 채 익숙해지지 않은 탓에 부엉이 소리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이제 넉 달이 지났나. 동네에 전기가 들어온 게. 그런가보다. 지난 가을 추수를 할 무렵이었으니까. 그때까진 암흑이었고 그 이후는 광명이었다. 그 아무것도 아닌 게 세상을 그렇게 바꿔버릴 수 있는 건지가 신기할 정도였다. 처음 한두 달은 이틀에 한번 꼴로, 그것도 밤 10시까지만 들어오던 전기는, 이후부터는 가끔 바람이 불거나, 날짐승이 감전되거나 하는 때 등을 빼고는 머리 위에서 항상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절대 아니었다. 어떤 일이든 시작은 또 다른 시작을 낳는 법. 어머니의 잔소리거리 하나가 더 늘어난 것이었다. 불꺼라. 아침에 눈을 뜨면서 시작되는 그 잔소리는 저녁이 되어 전등이 켜지면서 다시 이어져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계속됐다.

문 앞이 어느새 훨씬 더 밝아져 있었다. 이제 진짜로 해가 뜨려나 보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준오는 문득 기계적 행동을 반복하는 실루엣의 바로 옆자리를 보았다. 비어 있다. 언제 일어나셨지?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대청마루 밑에 만들어놓은 겨울용 닭장에서 닭들의 후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꼬꼬대엑 하는 수탉의 기상나팔소리는 들리지 않은 지 오래였다. 언제부터인가 닭들은 소리를 잃어버렸다. 대신 간밤에 몸에 묻어난 흙과 그들의 푹신한 깃털 사이에서 기생하는 부쩍 커버린 벼룩을 터느라 날갯짓을 해댈 뿐이었다.

준오는 행여 아버지의 씰룩거리는 배가 잦아들기라도 할까봐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로세로 격자무늬로 아로새겨진 창호문의 창살이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준오는 다시 한번 눈을 훔쳤다. 말라버린 눈물 자국이 손등에 와 닿는다. 흔적을 없애야 했다. 채 흘러내리지 않고 남아있던 눈물의 잔해가 손끝에 묻어 나왔다. 방문을 열었다. 갑자기 찬바람이 가슴팍의 단추 하나가 떨어진 준오의 내복 안으로 스며들었다. 가슴이 시려왔다. 재빨리 문을 닫았다. 덜커덩하는 소리가 이른 새벽의 고요를 무참하게 깨뜨렸다. 고개를 돌려 아버지 쪽을 보았으나 기척이 없다. 밤늦게까지 동네 몇몇 어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더니 아주 깊은 잠에 빠진 모양이다.

준오는 희미하게 보이는 벽을 짚어가며 나란히 박아놓은 못들 위에 걸어놓은 옷을 찾았다. 얼마 전 구정 때 서울에 있는 누이가 사들고 온 두꺼운 솜이 누벼진 점퍼가 손에 잡혔다. 그 점퍼 덕분에 한동안 그는 동네 아이들 앞에서 어깨에 힘 꽤나 줄 수 있었다. 전체 바탕이 노란색으로 된 그 점퍼는 손목과 목 부분의 칼라에만 파란색의 줄이 처져 어딜 가던 준오를 돋보이게 해주었다. 추리닝 한 벌로 몇 해를 보내야 했던 대다수의 동네 아이들에게 솜이 잔뜩 누벼져 다소 뚱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점퍼는 마치 신이 내린 축복과 같은 것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한번 입어보자는 소리는 감히 하지도 못하고 그저 조심스럽게 만져보는 것만도 대단한 영광으로 여겼다. 준오는 바지를 찾는 건 포기하고 밖으로 나갔다. 대청마루는 마당과 아무런 장애물 없이 그대로 닿아 있다. 바람에 실려온 눈발이 나무로 된 대청마루 이곳저곳에 희끗희끗 그림을 그려놓고 있었다. 마당엔 눈이 아직도 수북했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날 수 있는 길만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을 뿐. 어젯밤엔 눈이 오지 않은 모양이다, 고 생각하며 준오는 대청 마루 밑으로 쑤욱 들어가게 집어 넣어둔 검정 고무신들 중 하나를 골랐다. 신발을 털자 그 소리를 듣기라도 했다는 듯 저만치 벽 가운데 나있는 부엌문이 열리면서 어머니가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50대 중반 초로의 어머니. 분명 아직 정정한 나이임에도 그녀는 너무 늙고 초라해 보였다. 17살 때 아버지를 만났다고 했던가. 그 옛날 그녀는 상당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실제로 결혼한 이후 아버지와 친정의 정원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본 일이 있었는데(얘기 듣기로는 이미 누나 둘을 낳은 상태였으니 아마도 20대 중반은 됐을 거였다) 그 속에서 그녀는 주변에 장식된 어떤 이름 모를 꽃들보다도 화사했다. 검정 치마에 대비되는 흰색 저고리를 입은 그녀의 얼굴은 그대로 부잣집 셋째 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얀색 저고리에 햇빛이 반사되었기 때문인지, 이제는 거의 닳아져 군데군데가 찢겨져 나간 사진 속에서도 그녀의 얼굴은 마치 니스 칠이라도 해놓은 듯 빛났다.

그리고 40여 년의 세월. 그 세월은 굳이 어머니의 푸념을 빌리지 않더라도 가혹한 것이었다. 일단은 그녀의 지나칠 정도로 달라져 버린 얼굴이 그 모든 걸 얘기해주었다. 외갓집의 보증수표나 마찬가지였던 훤칠한 이마는, 꼴을 제대로 먹이지 못해 기진맥진한 소가 주인의 채찍에 강요당해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쟁기질을 한, 제멋대로의 밭고랑 같은 굵은 주름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머리에선 윤기가 나던 흑발은 이제 찾아보기조차 힘들고 마치 초가을 내린 때 이른 서리를 온통 뒤집어쓴 듯 백발만이 가득했다. 술은 입에도 대지 못했던 그녀.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도 막걸리 타령을 하곤 하셨다. 그리고 그런 횟수는 자주 늘어갔다. 술상(그래봤자 먹다 남은 막걸리 주전자에 김치 나부랭이가 전부인 상이었지만) 머리에서 그녀는 항상 '아이고 내 팔자야'로 시작되는 사설을 늘어놓곤 하셨는데 물론 그 결론은 아버지였고 또 채 자라지 못한 자식들이었다. 때론 내가 진작 떠날라고 했는디도 니놈들 때문에 발목이 잽혀갔고 이 지랄이다, 라는 식의 얘기도 서슴지 않는 그녀였다. 하긴 그런 소리가 나올 만도 했다. 1남 4녀의 당신 친정은 앞에서 얘기했듯 그 지역 일대에선 누구한테도 굽히지 않을 만큼의 재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물론 이전에 비하면 그 재산이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었지만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거기다 망한 것도 아니었으니, 준오가 장성한 지금까지도 그 위세는 여러 곳에서 감지되었다. 그 집의 외동아들, 그러니까 준오의 외삼촌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이후 다시 귀향, 고향에 있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전전하며 교편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른 형제들 중 언니 둘 역시 명망 있는 집안에 시집을 가 그럭저럭 호위호식하며 살고 있었는데 단 하나 딸 중에서 막내인 동생만 어머니와 비슷한 처지가 되어 다소 불행해 보이는 삶을 산다는 얘길 들었던 터였다. 특히 두 언니는 사는 지역도 그리 먼 편이 아니어서 자주 친정에 들르곤 했는데 그런 날일수록 어머니의 푸념은 심해지곤 했다.

"우리 아들 일어났는가잉."

한껏 정이 배인 당신의 목소리는 애써 감추려하던 준오의 슬픔을 다시금 들춰내고 말았다. 준오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간신히 응, 이라고만 대답했다.

"일루 와바라잉."

유독 사투리가 심한 어머니가 몇 번의 마른기침 끝에, 이제 막 떠오른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눈빛에 애써 시선을 던져놓고 있던, 준오를 불렀다.

준오는 벌써 그렁그렁해져,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눈물을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며 대답만 간신히 알았어라, 내뱉었다.

눈치를 챘음인지 어머니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 들은 준오는 얼른 고개를 부엌께로 돌려 다시 한번 시선의 부재를 확인하고 눈물을 닦아냈다. 꼬꼬꼬, 하는 닭들의 아침식사를 재촉하는 소리가 한줄기 차가운 바람에 실려왔다. 귀찮기만 했던 그 소리가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준오는 새삼 정말 이곳을 떠나는구나, 하는 사실을 상기했다. 마당 한 가운데로 난 눈길을 따라 몇 발자국, 쌓인 눈 사이로 거뭇거뭇 잘리고 남은 옥수수 밑둥이 보였고 늘 상 그랬듯이 몇 차례 주위를 둘러본 뒤,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이 없음을 확인한 뒤, 노란색 점퍼를 올리고 내복바지를 내렸다. 차가운 바람이 준오의 몸을 사시나무 떨 듯하게 만들었다. 약 20센티미터는 족히 쌓인 눈 위로 검은색의 그림이 깊게 그려졌다. 김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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