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 쪼이는 울타리 밑이나 안방에 좌판을 벌리고 앉아 조개를 깠다. 왠만한 사람들은, 아직 채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어린아이들까지도 모두 동원돼 그 행사에 참여해야 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건 농번기를 제외하고 가장 큰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일거리가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번씩 오는 조개장사들에게 그 깐조개를 넘기고 나면 꽤 많은 돈이 손안에 쥐어 쥐곤 했다. 어떤 집은 겨울 한 철 조개를 팔아서 모은 돈이 일년 내내 농사를 지은 것보다 많은 경우도 있었다.

국수를 끓일 때 넣는 조개는 대부분 팔고 남은 허섭쓰레기에 불과했지만 어느 지방에서도 맛볼 수 없는 독특한 향내와 더불어 아주 기막힌 국수 맛을 선사했다.

물론 시골에서는 구경하기조차 힘든 라면의 존재도 한몫을 하는 것이었다.

각설하고 준오는 평상시에도 국수만큼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그릇에 담아달라는 요청을 했었고 그렇게 하다보니 집 안팎으로 '국수도사'라고 소문까지 났던 처지. 그런데 그 날만큼은 아니었다. 세숫대야 정도는 돼 보이는 양은으로 된 그릇에 가득 담아져 나온 국수가락은 그냥 쳐다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였다. 거기다 이미 부엌에서 튀김이며 전 등의 주전부리까지 했던 준오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외숙모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존경스러운 눈으로 '국수박사'의 엄청난 포식행사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준오는 잘 끊어지지 않는 길다란 국수가락을 얇은 젓가락을 최대한 벌려 집은 뒤 입안에 밀어 넣었다. 먹을 만 했다. 그러기를 몇 번, 하지만 다른 때 같았으면 금새 드러났어야 할 바닥이 어디로 가라앉았는지 보이질 않는 것이다. 입안에 넣은 국수가락조차도 스멀스멀 살아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거기다 준오의 그런 행동을 지켜보던 속 모르는 주변 사람들의 말.

"여기 많이 있응게 아끼지 말고 후딱후딱 먹어라이"

한 젓가락을 넣고 나면 목안으로 넘기는 게 문제가 됐고 간신히 넘기고 나면 또 한 젓가락을 넣는 게 문제가 되었다. 배는 곧 터지기 직전의 고무풍선 마냥 부풀어올랐다.

그리고 간신히 이제 국물이 드러날 즈음 지극히도 친절하셨던 외숙모의 배려. "오매…우리 준오가 국수박사긴 박사네"라는 만족스런 말과 함께 한 주먹만큼이나 국수가락이 다시 채워진 것이다. 결국 준오는 다음 젓가락을 들어 입안에 넣다가 우웩, 토하고 말았다. 급히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이미 입안에서 쏟아져 나온 국수가락들은 상위를 덮친 뒤였다. 콧구멍을 타고 흘러나오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눈은 시뻘개진 상태였고 재빨리 뛰쳐나가 몇 차례 더 행사를 치른 뒤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물론 방안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외숙모는 아직 채 반도 먹지 못한 상을 치우고 새 상을 차려야 했다.

"아따….이 바보같은 눔아, 못 묵겄으면 못 묵겄다고 하쟤이."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최소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준오에게 먹을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물론 국수조차도 그 대상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그런 준오가 독한 냄새가 풍기면서 커다란 사발에 가득 담긴 인삼다린 물을 아무런 불평 없이 잘 먹는 것이 어머니로선 여간 신통한 일이 아니었다. 하긴 그조차도 마지막이었다. 이제 잠시 후면 준오는 이곳을 떠나야 했다. 단 한번도 가본 일이 없는 서울로. 그리고 그 덩치 크고 희멀겋게 생긴 서울 놈들과 함께 학교를 다녀야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조금만 더 먹을래, 하는 권유도 다 그런 복선을 깔고 있는 것이었다. 준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쨌든 간에 느그 누나 말 잘 들어야 한다이. 매형 말도 잘 듣고. 가끔 시간 나면 느그 조카 봐 주는 것도 잊으면 안된다이."

서울에는 누나 둘과 이미 유학을 떠난 형이 있었다. 준오와는 약 20여살 차이가 나는 큰 누이는 일찍 서울로 상경, 거기서 학교를 마치고 모병원에서 간호사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한 상태였다. 둘째 누나는 따로 떨어져 나와 살고 있었는데 무슨 공장 같은데서 일한다는 소리만을 들었을 뿐 준오도 정확히 그 누나가 무슨 일을 하는 지는 모르고 있었다. 준오는 큰 누이, 그러니까 결혼한 지 이제 2년여 되었나 딸아이 하나를 두고 매형과 함께 살고 있는 누이네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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