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어보기>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어디까지…

 

“말할 힘이 있는 자가 그 사회를 지배한다(Those who tell the stories rule society).”

플라톤의 말처럼 일찍이 옛 현인들은 역사가 승자에 의해 기록되는 것을 경계해왔다. 역사는 현재의 정치권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의식이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역사를 권력의 붓으로 재구성하려 하는 이들이 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은 역사를 손에 넣으려 하는 걸까. 왜 과거로 회귀하려 하는 걸까.

 

 

누가 시계를 거꾸로 돌리나

최근 현역 여당 대표의 입에서는 “역사 교과서가 좌파세력에 선동되어 어린 학생들이 부정적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며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연이은 김 대표의 강경발언은 박근혜 정부가 강력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국정화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어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지난 2일 현역 역사 교사 2255명 및 서울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34인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교육부에 전달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것은 반헌법적이고 비민주적이다. 민주화와 함께 폐기된 유신의 잔재이고 이를 다시 살려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정부가 주도하는 하나의 역사해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역사교육의 본질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국정교과서의 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역사교과서 제작의 자율성을 더 보장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서울대에 이어 부산대, 연세대 역사학과 교수들의 반대 성명도 잇달았다. 전국 각계의 지역·시민·사회·노동단체 및 정당들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 대표의 강경 주장으로 야기된 최근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은 교육계와 역사학계 등은 물론 정치권도 술렁이게 하고 있다. 새정치 의원들은 ‘친일·독재’, ‘유신시대’ 등을 언급하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반면, 새누리당에서는 “역사에는 공과 과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며 필요성에 대해 강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23일 발표된 ‘2015 개정 교육과정 교시’에선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이 빠진 상태. 이날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법적 효력을 갖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정식 고시(제2015-74호)했다. 이 고시는 ‘시행시기’ 규정에서 “2017년 3월 1일-초등학교 1·2학년, 2018년 3월 1일-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1학년…” 등으로 분명하게 적었다.

당초 고시 내용에 담길 것으로 예상된 ‘국정교과서의 경우 2017년 적용’이란 규정은 빠지고대신 ‘자유학기제와 전문교과 2016년 3월 1일 조기 적용’ 등의 초중고 학년별 예외 사항은 따로 들어가 있었다.

이 고시에 따르면 현 정부가 중고교의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강행하더라도 초중고 학년별 시행 규정에 따라 2015 교육과정이 중고교에 적용되는 2018년 이후에서야 가능하게 됐다.이에 따라 ‘국정교과서를 2017년에 적용한다’는 황우여 교육부장관의 발언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 임기 마지막해인 2017년으로 앞당겨 국정교과서를 배포하려는 정부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날 고시된 교육과정을 ‘수정 고시’하는 방법도 있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 기도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지난해 8월 교학사가 출판한 한국사 교과서가 진통 끝에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검정의 심의 결과 최종적으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의 교학사 교과 채택율은 거의 0%에 가까웠다. 사대주의와 친일을 우회적으로 옹호하는 등 역사 왜곡과 사실 오류가 문제시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논란이 야기될 때마다 역사학계와 교사들은 강하게 반발해왔다. 특히 현역 교사들 10명 중 7명이 반대할 정도로 현장에서의 거부 반응은 거셌다.

지난해 교학사의 역사교과서 채택 문제를 “역사관의 ‘다양성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며 채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불과 1년도 안돼 한 가지 역사관으로 통일한 획일화된 국정 교과서 정책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 남이 하면 불륜이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인 셈이다.

새누리당 및 보수단체에서는 국정화의 이점으로 “첫째, 다종 교과서 난립으로 인한 논란이 없어짐으로 수능 시험의 부담이 경감된다. 둘째, 하나의 통일 된 역사를 교육함으로써 국민 사이의 혼란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교과서 국정화는 교육의 다양성을 해치는 정책”이라며 맞서고 있다. 수학처럼 수식이나 답이 정해져 있는 과목이 아니라 보는 시각과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역사이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관이 심어져 있는 교과서로 공부한다는 것은 독재의 회귀일 수 있다는 것.

역사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쉽게 왜곡, 축소되어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 정권에서 강요된 역사관은 독재정권에서 국민들의 의식화를 위해 사용되는 방식이다.

 

 

 

역사는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서

최근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사도’는 영조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아들과 자신의 정치권력과 정조의 왕권 확립을 위해 친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왕이자 아비의 입장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 노론과 소론의 정쟁에 휘말린 영조가 자신의 정치권력을 지키기 위해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월, 뙤약볕 쏟아지는 숨 막히는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음에 이른 사도세자는 치열한 권력 싸움으로 인해 친부와 친모, 부인에게 버림 받았다. 그는 수세기 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비운의 왕세자’로 각인되어 왔다. 하지만 비단 이것만이 진실의 전부는 아니었다.

▲ 영화 ‘사도’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친모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묘사된 사도세자는 100여명의 나인 및 신하들을 잔인하게 죽인 희대의 살인마였다. 역대 왕 중 가장 폭력적인 왕으로 손꼽히는 연산군조차도 자기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는 않았다. 반면 사도세자는 손수 칼을 휘둘러 신하들을 죽였고 그 방법도 참혹했다. 머리를 참수하는 등의 엽기적 행각을 벌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낳은 후궁을 죽였고 급기야는 생모인 영빈 이씨까지 살해하려 들었다. 이와 같은 살인행각이 부각되지 않고 사도세자가 ‘비운의 왕세자’의 상징이 된 데에는 아들인 정조의 힘이 컸다. 정조가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아버지 사도세자의 엽기적 행태를 모두 삭제해버렸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있으니까 ‘승정원일기’엔 없어도 된다는 논리였는데 아들 정조 덕분에 사도세자의 구체적인 죄가 후대에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정조가 ‘승정원일기’를 삭제한 것은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던 아비를 측은히 여기기도 했고 친부가 살인마라는 사실이 후대에 알려지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역사엔 당대에만 판단할 수 없는 명암이

이와 같이 역사란 한쪽 면만 봐서는 알 수 없는 복잡한 시대상황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역사란 당대에는 판단할 수 없는 명암이 존재한다. 그래서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하고 이해하고 건강한 논쟁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의 기록을 한쪽의 입장에서만, 더욱이 권력을 가진 이들의 입장에서만 기술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이와 같이 편협한 역사관을 강요당하게 되는 획일성을 경계하고 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할 지니 과거는 현재의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 조정된다.(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18세기 극작가 조지 오웰은 독재 권력으로부터 역사를 보호하라고 시민들에게 역설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현인들의 말을 가장 잘 듣고 실천하는 이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 앞으로도 권력을 계속 지키고 싶은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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