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화예술계 한 획 그어가는 ‘앤드락씨어터’ 김성만 감독

 

한 달에 문화생활을 몇 번이나 즐기는가? 언제나 공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의미를 준다. 그 짧은 장면과 한 편의 스토리에서 때로 큰 교훈을 얻기도, 혹은 나를 투영시켜 보기도 하며 우리는 간접적으로 삶의 경험을 넓힌다. 부르주아, 부유층의 전유물인 것만 같았던 예술이 평범한 사람들의 휴식처로 넓혀진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얘기다. 지금은 누구나 손쉽게 문화생활을 접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곧 나라의 국력이 되었다. 정치와 경제를 막론하고 모든 활동에는 문화가 스며들게 마련이고, 정부와 민간 모두 이 문화를 주도하기 위해 손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화예술 분야는 아주 척박하다. 단순히 재력이 있을 때 잠깐의 유흥을 위한 수단을 넘어 인간과 사회를 연결하는 소통의 장으로 문화계를 개척하고자 큰 포부를 꿈꾸는 공연기획사 ‘앤드락 씨어터’의 대표이자 연출 기획 및 배우까지 다재다능한 능력을 선보이고 있는 김성만 감독을 만나 그만의 예술관에 대해 담소를 나누어봤다.

 

 

▲ ‘앤드락씨어터’ 김성만 감독

 

-지금도 배우 생활에 결코 소홀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배우로서 기억에 남는 공연 에피소드를 듣고 싶다.

▲군대를 제대 후에 무대로 복귀한 첫 작품이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귀천무회극’이었다. 중심 배우는 대사부인 무월대사, 그 밑에 풍운, 그의 부하 화산, 설산이 있었고 여기서 풍운의 역할을 맡았다. 풍운이 무월대사의 산에서 수련 후 완장한 독립투사의 모습을 갖춘 뒤 본토로 내려와 설산과 화산를 포함한 독립투사와 함께 일제에 저항하는 대략적인 내용이다. 전통적인 수련 무예극이 연상되어 도복이라도 입을 것 같지만 풍운은 중절모 쓰고 있었다.

극본대로라면 풍운이 설산을 만나고 조명이 켜져야 술잔을 기울이며 “그래 요즘 흐름은 어떠한가”라는 대사를 치는 장면이 있었다. 술잔을 들려는데 불이 확 꺼지는 게 아닌가. 이건 안전사고랑 직결되는 위험한 사태로 커질 수 있는 문제다. 연강홀 전체 극장에서 전기가 내려갔는데 군대 복귀하고 초연이었던 본인 뿐 아니라 위에 나이와 경력도 많던 선배들까지 전부 ‘멘붕’ 상태였다. 조명이 들어와야 대사를 말할텐데 선배들도 아무 말도 조치도 못한 채 얼어 있었다. 순간 뭐라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그저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관객에서 술렁거림이 들렸다. “이런 나쁜 쪽바리들 이제는 전기까지 내려놓네” 하고 선수치니 앞에 있던 설산역 배우도 그제야 맞받아쳤다. “전기도 가끔 이렇게 꺼집니다.” “이런. 우리는 전기가 없어도 촛불로 충분히 독립운동을 할 수 있네. 일어나세!” 그 뒤 무대 뒤로 돌아가 좌초지종을 들었다. 큰 극장에 필수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보조 전기까지 내려간 상황에 무대 뒤도 난리법석이었다. 너무 큰 딜레이를 막기 위해 작업등 하나를 촛불인양 들고 무대로 재입장했다. “자 촛불을 켰으니 얘기를 하세.” 희미하게나마 밝혀진 무대에서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관객의 박수소리를 들었던 그 때가 잊히지 않는다. 아직도 조마조마하면서도 뿌듯한 경험이다.

 

-예술을 해오면서 고달픈 점은 없었나.

▲공연 하나를 준비하는 것에도 작게는 몇 천만 원이 투입된다. 상업 목적과 비상업 목적의 공연을 구분하고 싶지 않지만, 모든 공연에는 그만한 투자비용이 요구된다. 그러나 한국에는 아직까지 비-메이저 극단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역시 ‘어떻게 해야 좋은 공연을 만들까?’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어느 공연이건 공연은 결국 관객과 소통하기 위함이다. 보는 이가 공감하며, 때론 그들의 정체성을 더하고, 그들의 다른 모습을 간접적으로 발견하는 것이 공연의 의미가 아닐까. 그렇기에 예술-공연 시장의 공급은 문화 수준을 한 단계씩 높여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예술은 전문가 앞에서 보이려는 작품이 아니지 않는가. 지극히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함께 웃고 울면서 공감을 주고 자신을 찾아가는 공연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공연을 기획하고 구상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배우도 하고 기획연출 감독과 대표를 모두 아우르기 힘들 것 같은데, 다양한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 따로 자기계발에 힘쓰는 부분이 있는 건가?

▲삶이 한 편의 극이라면 요즘 사람들은 1인 다역 세대다. 때로 관리자의 영역 분절이 조직 관리의 비효율성을 낳곤 한다. 여러 분야에 지혜를 갖춰야 감독이라 할 수 있고 지혜는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면 배울 수 없다. 그리고 짬짬이 한 권이라도 책을 더 읽으려고 노력한다.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즐기는 걸 목표로 하지만 자꾸 심리학 서적으로 손이 가게 된다. 공연은 결국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음악치료를 통한 심리치료도 같은 맥락이다. 예술은 4대로 분류할 수 있는데, 1대 예술은 예술의 근원적 소통인 언어 즉 음악, 2대 예술은 몸짓 즉 무용이며, 3대 예술은 벽화 그림에서 비롯된 미술, 4대 예술은 음악 무용과 미술이 결합된 연극이다. 연극 역시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위해 등장한 통합적인 차원의 예술이다. 그 궁극적인 지향점은 아주 보편적인 사람의 마음에 닿아 그 마음 속 억압을 해방시켜주거나 새로운 통찰로 확장시켜주는 것이다. 최근에는 심리음악학의 클래식이 가진 힘을 연극 및 공연에 접목시키는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심리학은 주로 아동기에 초점을 두는 학문인데 예술인 부모를 둔 딸아이도 예술적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다. 자신의 자녀가 장래에 배우나 감독으로 예술 분야에 뛰어들겠다고 하면 반대하는 예술가도 많지 않나?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 딸이 예술적 꿈을 갖는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생각이다. 자아가 완전히 형성되기 전인 아동기에 많은 경험적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부인은 현재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보니 아이와 함께 무대 곡을 모니터링 하는 일이 많다. 딸아이에게 태교 때부터 들려주던 클래식, 뮤지컬 팝 등을 아직도 즐겨듣는다. 걷고 장난치기 시작한 딸이 이제는 음악에 맞춰 조금씩 무용 몸짓을 시작했다. 예뻐 죽겠다. 딸바보를 넘어 더 심한 말도 듣는다. 딸과의 유일한 교감시간이 목욕이었는데, 조금 더 커버리면 목욕시켜 주는 걸 제지당할까봐 걱정이 된다. 아내와 아이가 산후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아기 목욕 담당을 자처했는데, 목욕 시간마다 틀어놓고 놀던 클래식 노래를 아이가 기억하고 옹알대는 걸 보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최근에 에릭 번이 쓴 책 ‘심리게임’에 따르면 우리 자아는 부모자아, 어른자아, 아이자아로 이뤄진다. 부모자아는 독립적인 자아가 형성되기 전 무방비 상태에서 권위를 지닌 부모의 가치 개입으로 형성된 자아이고, 아이자아는 본능에 충실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추구하며, 어른자아는 앞의 두 자아의 충돌을 중재하는 절충적 중간 자아라 하겠다. 결국 딸아이의 미래 모습에 미치는 부모의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소리인데 예술이든 그 외의 분야에서든 자신의 역량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정말 많은 경험을 함께 제공해주고 싶다.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극단 창단 경험이나 공연 기획사의 운영 목적, 모두 먼 미래의 발판으로 생각한다. 정말 꿈같은 얘기겠지만 재능을 타고난 또는 예술적 갈망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는 학생들이 등록금 걱정 없이 전액 국비로 운영되는 전문 예술학교를 설립하고 싶다. 꿈은 그렇다. 들어오기도 쉽지 않지만 졸업하기도 어려운, 전문적으로 예술인을 양성하는 학교 말이다. 이제 세계적으로 국가의 문화는 곧 국력이다. 문화를 주도하는 인력자원을 창출하며 한국만의 전통예술을 창조하고 외국예술을 수용, 융합하며 새로운 문화의 장이 중심이 되는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제 인생의 최종 목표다. 대학생기자 <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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