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칼럼> 두레와 품앗이

정으로 똘똘 뭉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상부상조(相扶相助)를 아주 소중하게 여겼다. 이 바탕에서 생겨난 게 두레와 품앗이다. 이웃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주었다. 이런 아름다운 전통은 예나 이제나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고 따듯하게 해주고 있다.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든 요즘 농촌은 그야말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일을 기계로 하니 일손은 그만큼 덜게 되었지만 바쁜 건 매한가지다. 기계가 하는 일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어서 사람 손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모든 일을 사람이 해야 했던 옛날에 비하면 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농사철이 시작되면 일손이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젊은이들이 다 떠난 지금 농촌도 그때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좀 큰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은 농기계가 거의 대신해 줘 우리 농민들이 확실히 딴 세상에 살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계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21세기 농촌과 거의 모든 일을 사람이나 짐승(소)이 떠맡아야 했던 저 7․80년대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농촌에서 나고 자란 중년 세대들은 이런 변화를 보고 허전함과 함께 진한 향수를 느낄 것이다.

농기계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새로운 농사법이 속속 등장하게 되면서 농촌 생활은 일대 변혁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람이 하면 며칠씩 걸리던 일을 하루만에 끝냄으로써 농부들의 짐은 그만큼 가벼워졌다. 그러나 그런 편리함은 농부들에게 많은 비용을 요구하였다. 농기계를 사려면 그 값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농부들은 빚을 내서 구입하기에 이르렀고, 이것은 어려운 농촌 살림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 당시, 마을 어른들은 모자라는 일손을 덜기위해 서로 돌아가며 일을 도와주는 품앗이를 통해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품앗이는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농촌 풍습이다. 이른바 ‘노동의 교환’을 통해 이웃은 더욱 가까워지고 나눔과 정이 새록새록 싹트게 된다. 품앗이는 노동 교환을 통해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경제적인 가치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는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하겠다.

품앗이의 ‘품’은 일, 즉 노동이라는 뜻이다. 더 정확하게는 <품(勞力) 앗이(受)>에 대한 <품갚음(報)>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농촌에서 모자라는 노동력을 다른 사람에게 빌리고 빌린 노동력을 자신의 노동력으로 대신 갚는 것이다. 그렇다고 품앗이가 항상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젊은이들이 다 떠난 농촌에서 품앗이 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품앗이 일꾼이 없어 다른 마을에서 데려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일 년 중 5, 6월은 품앗이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기다. 논농사 밭농사가 본궤도에 오르기 때문이다. 시기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연중 이루어지는 게 품앗이지만 특히 모내기철이 오면 마을마다 난리법석을 떨었다. 못자리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볍씨 뿌리기, 비닐 씌우기, 도랑 만들기, 모 찌기, 모가 잘 자라도록 거름을 주는 일, 그리고 모를 본 논에 옮겨 심는 일까지 한 해 벼농사는 이렇듯 시작부터 힘든 노동을 필요로 한다. 이제는 각종 제초제 덕분에 웬만한 잡초는 자랄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그 시절 모가 어느 정도 자라면 어김없이 피(잡초) 뽑기에 들어갔다. 허리를 굽히고 손으로 논 전체를 훑어야 하는 이 일도 여간 어렵지 않아 품앗이를 통해 해결했다.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한 모심기는 단순한 농사일을 넘어 공동체 의식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공동노동이다. 이 땐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모심기는 이런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왁자지껄하던 풍경은 간 곳 없고, 여기저기 모를 자동으로 심는 이앙기만 보일 뿐이다.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80년대 초만 해도 기계로 모를 심는 농가는 아주 드물었다. 어쩌다 이앙기로 모를 심는 것을 보면 그게 어찌나 신기했던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던 일이 생생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낙후된 농촌에도 변화의 바람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이앙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새로운 농사법이 속속 등장하였다. 농기계가 보급되면서 농촌 생활은 일대 변혁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품앗이에 불려간 사람은 하루 꼬박 그 집에 가서 일을 해 줬는데, 며칠 혹은 몇 달 후에 그 일을 해준 품(노동)을 되받는 게 바로 품앗이다. 품앗이는 비단 농사일에만 한정되지 않고 생활 전반으로 퍼져 나갔다. 가령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이웃의 누가 상여를 메 주었으면 나도 언젠가 반드시 그 일을 해줌으로써 아픔을 같이 나누었고, 김장철이 오면 김장하는 날을 잡아 서로 품앗이를 하면서 김장을 담갔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 도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빛나는 우리의 전통이 바로 품앗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마음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정’이 깔려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뭔가를 바라는 계산적인 속셈이 숨어 있다면 진정한 품앗이라고 할 수 없다.

 

 

품앗이는 사람끼리만 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보다 몇 배나 힘을 더 쓰는 소는 밭고랑을 내고 논을 갈 때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소를 키우는 집에서는 소가 없는 집에 하루 품앗이로 빌려주었고, 그 대가로 사람이 이틀 정도 소를 빌려준 그 집에 가서 일을 해줬다. 1: 1로 교환한 사람의 품앗이와는 달리 소와 사람은 2: 1로 교환하였던 것이다.

동틀 무렵 외양간에서 나간 소는 어두워서야 돌아왔다. 논밭을 가는 일은 이제 농사철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들판 여기저기서 소를 부리는 모습은 참으로 평화로운 정경이었다. 콧바람을 씩씩 몰아쉬며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거칠게 소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 신기할 정도로 잘 따라 움직였다. 모를 심으려면 쟁기질이며 써레질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걸 소가 도맡아 했으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이와 같이 옛날 농사 방식은 거의 전부가 힘을 요하는 일이었다.

품앗이는 원래 ‘두레’에서 나온 생활 풍습이다. 품앗이가 개인과 개인으로 맺어진 것이라면 두레는 마을 사람들이 더불어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든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 이런 공동 노동은 모내기, 물대기, 김매기, 벼베기, 벼타작에 이르기까지 경작 전 과정에 걸쳐 이루어졌다. 특히 한꺼번에 많은 품을 필요로 하는 모내기와 김매기에는 거의 반드시 두레가 동원되었다. 두레가 끝나면 술 노래 농악 등으로 풍년 농사를 비는 마을 잔치가 벌어지기도 했다. 명확한 계산과 엄격한 계약관계의 사회에서 두레와 품앗이는 ‘마음의 빚’으로 남게 된다. 노동의 수고를 돈으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기에 그 이면에는 너그러움과 정이 숨어 있다.

논둑에 꽂힌 농기(農旗. 두레기)는 두레의 의미를 잘 살려주었다. 두레기는 옛날에는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농사가 기계화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마을의 상징이었던 두레기는 지역에 따라 농기, 서낭기, 용기 등으로 조금씩 다르게 불렸다. 커다란 기에 ‘농자천하지대본’, ‘신농유업’, ‘용기’ 같은 글귀를 써서 논둑에 세워두었는데, 농업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담고 있다. 두레기는 농사일뿐 아니라 마을 제사나 농악놀이 같은 질펀한 놀이판에도 어김없이 등장해 그 뜻을 한층 더해 주었다. 말을 타고 가던 양반도 두레기 앞에서는 반드시 내릴 정도로 신성 그 자체였다. 바람에 펄럭이는 농기와 신명나는 농악놀이, 일꾼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구성진 농요를 부르며 모를 심어 나갔다. 품앗이나 두레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새참이다. 마을 아낙네들은 집에서 준비한 먹을거리를 잔뜩 가져와 풀어놓았다.

“새참 가져왔어요. 어서들 나오세요.”

일의 능률을 위해서도 새참은 꼭 먹어야 했다. 새참은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챙겼는데 돌돌 말은 국수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힘이 솟았다. 일꾼들은 점심이나 새참이 제때에 나오지 않으면 노래로 비꼬기도 했다.

“늦었다오 늦었다오/ 점심참이 늦었다오/ 일즉었네 일즉었네/ 오늘 아침 일즉었네(일찍 먹었다는 뜻)./ 남산이라 저 모롱이/ 점심이라 더디 오네/ 미나리라 시금초라/ 맛보니라 더디 온다.”

함안 지방에서 내려오는 이 노래는 새참을 기다리는 일꾼들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우리의 품앗이 문화. 어느 민족이나 상부상조의 문화가 있겠지만 특히 우리 민족의 서로 돕는 문화는 외국인의 눈에도 남다르게 비친다. 나만 챙기는 각박한 사회에서 두레와 품앗이는 더불어 살아가는 정신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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