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엔 어떤 풍경이 나를 반겨줄까?

경북 김천시 구성면 월계리. 속명 ‘골마’라는 곳에서, 전원생활에 푹 빠져 사는 나. 시골댁~~. 언덕위에 위치한 농가의 해발높이가 300m이니 마을지대가 꽤나 높은 편이다. 필자가 사는 농가에 가기 위해서는, 김천에서 25km정도를 거창 쪽으로 가다가, 충북 영동 쪽으로 조금 들어가다 보면 맑은 냇가를 만난다. 올갱이가 살고 있는, 아직은 오염되지 않은 청정 개울을 건너 산중턱으로 오르다 보면 빨간 지붕이 보인다. 1987년도에 대구에서 이곳 월계리로 이사 온 울 아버지. 지금처럼 귀농개념도 없었던 시기에, 젖소 목장을 하시겠다고 들어온 이곳.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는 외로운 삶을 사시다 가신 이곳. 그 당시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정말 척박했다. 김천서 버스를 1시간은 타야 도착하고, 버스길도 비포장이던 그 시절, 그때 마련되어진 이곳 월계리 집. 2009년 아버님의 장례를 치르며 결심했어, 지금 내려가는 거야. 그때는 경기도 일산에 살고 있던 터라 나름 고민 끝에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해 결정하게 되었다. 2010년 10월, 내 나이 50 초반에 물 맑고 공기 좋고, 산세 좋은 월계리로 내려왔고 전통된장을 만들며('장만나는 커피향 항아리’: http://mee5912.blog.me) 하루하루 바쁜 농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드디어 메주 만들기 작업을 시작했다. 원래는 한주 전부터 했어야하는데, 여고친구들의 방문으로 한주 늦게 메주 만들기를 시작한 것이다. 작년에 한번 사용해본 압력 스팀증기찜솥 사용법이 헷갈려서 이집 저집 남정네들의 기술을 모아모아 겨우 기계사용법을 습득했다.

역시 기계 전문 기사보다, 농촌에서 많은 기계를 다뤄본 실경험자의 설명이 더 쏙쏙 귀에 들어왔다. 스테인리스로 된 증기찜솥으로 쪄낸 메주콩은 기막히게 맛이 좋았고, 메주도 예쁘게 만들어졌다. 하루 240kg의 콩을 쪄내고 일과를 마쳤다. 과정이 얼마나 수월한지 힘든지도 모르고 다들 즐겁게 일했다. 여러 명 모여서 수다 떨며 힘을 모으니 순식간에 큰일을 해치울 수 있었다. 많은 양의 무를 썰어 무말랭이 만들 준비도 해뒀다.

겨울엔 갈무리할 일들이 참으로 많다. 무청도 만들고 각종 말랭이를 만드느라 조그마한 건조기가 매일 돌아가고 있다. 겨울햇살이 얼마나 인색한지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아 자연건조는 어려운 요즘이다.

여고친구들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여고 때도 난 6명의 친구가 있었다. 우리 그룹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았을 만큼 우리 6명은 유별나게 친하게 지냈다. 수학여행 갔을 때 군부대 위문공연이 있었다. 그때도 우리 6명의 친구들이 나가 노래 두곡을 불러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었다. 그 참했던 여고시절~~그립다!

세월이 많이도 지났다. 만난 지 30여 년만인 친구도, 늘 연락하며 지낸 친구도 있다. 처음엔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나서 어색하지 않을까?’도 했지만, 그런 기우는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30여 년 만에 만난 친구와 얼싸안고 눈물부터 한번 흘려주고, 우리는 울지 말자, 울지 말자, 서로를 토닥이며 간신히 마음을 추스렸다. 왜 한국 사람들은 반갑고 좋으면 눈물부터 나오는지ㅎ. 한바탕 얼싸안고 그간의 정을 확인한 뒤 여고생 시절로 돌아갔다. 그리고 긴 시간 서로 몰랐던 각자의 생활들에 대해 한명씩 고해성사하듯 얘기를 해나갔다. 너무나 진솔하고 솔직한 이야기도 편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여고 친구들.

한 친구의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엔 모두 같이 힘들어하고, 기쁜 일엔 진심으로 축하해주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 릴레이를 펼쳐나갔다. 6명중 2명은 이혼을, 1명은 사별을, 한명은 외국인과 결혼을, 한명은 결혼 한번 안한 처녀로, 그리고 한명은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 6명은 공부도 곧잘 했고, 엄한 부모님 슬하에서 가정교육도 잘 받고 참하게 잘 성장했는데, 나이 들어 만나보니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 다양한 모습들이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 하시던 말씀이 ‘내가 살아온 이야기, 책으로 쓰면 한권에 못다 쓴다’, 하시던 그 말씀처럼, 우리 친구들 이야기는 정말 대하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자식농사는 다들 잘 지었더군ㅎ. 아주 특별한 직업을 가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대기업에 그리고 그 어려운 교육공무원에, 은행권에…모두 다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요즘 아닌가? 나만 자랑할 자식이 없어서 친구들의 이야기에 장단만 맞추었다. 결론은 우리 모두 잘 살아왔다는 것. 그러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가져온 선물을 보며 한바탕 웃고, 여고때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 이어가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에서는 서로의 기억들을 더듬고 더듬어서 맞춰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새벽녘에는 미국에 있는 친구와 화상통화하면서 또 웃고, 내년에 한국 나오면 꼭 다시 뭉치자고 약속했다.

1박 2일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나니 할 일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제일 먼저 청국장 만들기를 했다. 증기찜솥에 쪄낸 콩은 청국장이 너무나 잘되어서 다음부터는 눈물 흘려가며 가마솥에 불을 때야 하는 일이 없게 됐다. 옛것만 고집할 것이 아니고 신기술을 잘 받아들이는 융통성을 발휘하면서 발전해 나가야겠지.

어느 날은 MBC 작가의 전화를 받았다. 우사 리모델링한 우리 집을 취재하고 싶단다. 타 방송에서 이미 여러 번 소개했던 터라 사양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기도 했다.

방송을 몇 번 찍어보니 3~4분 방송분량에 적어도 3~4시간은 매달려서 촬영을 해야 하더라.

그리고 처음엔 신기하고 재미가 있었지만, 똑같은 이야기를 3번씩 하고나니 나 스스로도 시들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2년 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촬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근데, 이번엔 엄청 바쁜가 보다. 월요일 오후에 전화를 걸더니 수요일 방송이란다. 그러면 화요일 하루 남았는데 나를 붙잡고 통 사정이다. 미리 잡혀있던 곳이 펑크가 났나? 여러 번 나왔던 집을 뭐하러 자꾸 하려고? 하는 생각이었지만 자꾸 전화를 해대니 넘어가게 되더군.

된장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꼭 넣어주면 하겠다는 작은 협박을 하고, 선심 쓰듯 촬영하기로 했다. 하긴 전에도 된장 만드는 모습이 방송됐지만, 그 이후 주문이 쇄도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전원생활’이라는 잡지에 실렸을 때는 연락이 꽤 많이 왔었다. 그래서 난 방송보다 인쇄물을 더 좋아한다는ㅎ.

그리고 수요일 MBC ‘오늘아침’ ‘농가 리모델링’ 편에 우리 집이 나왔다. 화면발이 잘 먹혔는지 우리 집은 실제보다 더 좋아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내 얼굴. 어쩜 그리 늙어 보이지?

우리 집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 축 처진 내 얼굴만 슬프게 다가왔다.

2년전 방송에 나왔을 때보다 더 여유로워보인다는 내동생의 성의 있는 위로. 예기치 않던 사람들로부터 방송 잘 봤다는 연락을 받았다. 몇 시간의 수고로 즐거운 이야기꺼리가 되니 이 역시 좋지 아니한가. 이번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리모델링한 우사 촬영은 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앞으로는 ‘맛있는 된장, 명품된장을 찾아서’ 이런 프로그램에 우리 장만나는 된장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연말이 되니 주변이 바쁘게 돌아가고 나 역시 마무리 할 것이 참으로 많다. 메주 만들기 작업도 두 번은 더 해야할듯하고, 청국장도 두 번 정도 더 쑤어서 분말을 만들어야 한다. 무섭게 오르던 콩값이 다행이 내리고 있다. 올해 정부의 콩 수매가가 너무 낮게 책정되면서 농가들이 직접 시장에 콩을 내고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어쨌거나 콩을 구입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다행한 일이다.

농산물 가격 비싸다 불평하지 말고 사야 된다고 했던 내가 콩값이 내리니까 이리 즐거운 것은 무슨 심보란 말인가? 놀부심보? 농부님네들에게 깊은 사죄를 드립니다. 두부 체험 이벤트를 열고 1년 내내 청국장을 만들려면 많은 콩을 비축해야한다.

강소농 현장학습의 일환으로 안동과 예천에 다녀왔다. 온라인상에서 유명한 쌀아지매 농장을 방문하고 파파야 농장, 그리고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농가맛집 화련도 들렀다. 농장주들의 체험담을 듣고, 아이디어를 얻고, 화련에서 맛난 점심을 먹었다.

겨울엔 눈 내리는 것이 제격인데, 어떤 날은 여름 소낙비처럼 비가 좍좍 내렸다. 기후변동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어디를 돌아다녔던 건지 우리 둥이녀석, 집 나간 지 이틀 만에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몸에는 상처가. 도대체 고양이들의 암컷 쟁탈전이 얼마나 치열하기에 둥이녀석은 늘 저렇게 상처를 안고 돌아와서는 내리 잠만 자는지. 오늘도 제자리에서 동그랗게 몸을 만 채 깊은 잠에 빠졌다. 아무리 깨워 봐도 게슴츠레 뜬 눈은 금방 감겨버리고, 널부러진채 몸까지 흔들거릴 정도로 끙끙대며 잠을 잔다. 녀석을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니 웃음이 난다.

처마에 매달린 풍경소리 요란한 밤이다. 눈이 올까, 해서 큰길에 차를 내려놓았는데 다행히 눈이 내리지는 않는다. 한편으론 아침에 눈 떴을 때 온천지가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었으면 하는 기대도 해본다. 겨울, 나의 마음은 늘 두 가지다. 눈이 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새하얀 눈으로 덮인 온 세상을 바라기도. 내일 아침엔 어떤 풍경이 나를 반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