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한 살로 일 년을 살아봤다
마흔 한 살로 일 년을 살아봤다
  • 류승연 기자
  • 승인 2017.12.13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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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 류승연

언제나 그랬듯 영하의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내복을 안 입고 나왔다가 억수로 후회를 한다. 콧물이 주르륵 나오고 온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다. 왕년엔 이러지 않았는데….

2년 전 친정엄마가 자주색 내복을 사서 손에 쥐어줬을 때만 해도 색깔이 이게 뭐냐며 질색을 했는데, 옷장 어딘가에 틀어박혀 있을 그 내복을 당장 꺼내 입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이가 들었음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덜덜 떨리는 한기에 나이를 실감하는 것이다.

마흔 한 살의 나이로 일 년을 살아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처음 마흔 살에 들어섰을 땐 40대로 살아간다는 것에 감이 오질 않았다. 마흔 살의 준비과정을 거쳐 마흔 한 살에 들어서자 비로소 본격적인 40대가 시작된 느낌이다.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157@weeklyseoul.net

 

실제로 경험한 40대는, 한 여성의 일생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전혀 늦은 나이가 아니었다. 30대까지는 개미처럼 열심히 살고 40대부턴 평안한 삶을 살게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30대까지의 인생경험을 토대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가 40대였다.

풋내 나는 어리숙함은 없다. 능숙하고 세련된 사회성 기술을 갖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든 업무를 컨트롤 할 줄 아는 일처리 능력도 갖추고 있다. 40년의 세월을 밥만 먹으며 살아온 건 아니란 얘기다.

40대를 규정하는 단어에 ‘왕성한 활동력’이란 단어가 포함되고 나니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해야 할 일도 하게 된다. 진정한 인생의 절정기를 향해 달려 나갈 준비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왜 30대가 아닌 40대일까? 체력적으로 보면 30대가 월등한데 말이다.

남자는 다른지 모르겠는데 여자 입장에선 40대인 게 이해가 된다. 아이들 때문이다. 30대에는 어린 아이들을 돌봐야하기에 나만의 시간이란 걸 가질 만한 여유가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을 하고 집에 오는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하는 40대부턴 엄마의 자유도 시작된다.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는 날개가 등에 돋아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날고 싶은 욕구는 일반 엄마들보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서 더 많이 발견된다. 여러모로 발달이 늦은 아이를 키우느라 다른 엄마들처럼 몇 년 만 고생하면 육아전쟁이 끝나는 게 아니라서 ‘나만의 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들은 온 몸으로 느끼며 산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난 뒤 소파에 누워 홈쇼핑을 보며 뒹굴 대거나 동네 아줌마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걸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가 않다. 아이가 하교를 하는 그 순간부턴 또 다시 육아전쟁이 시작되기에. 평생 동안 육아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몸이기에. 귀하게 주어진 ‘나만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충실히 보낼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고자 한다. 보람된 일을 해보고자 한다.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하고,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가능한 게 40대 부터다. 비로소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가기 시작하는 나이랄까.

나는 지적장애인 아들이 속해있는 이 사회를 ‘발달장애 업계’라 부르곤 하는데, 이 세계를 알아 가면 갈수록 멋진 여성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발랄한 아가씨였다가, 아내가 되었다가, 갑자기 장애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난 후, 새로운 분야에서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해 나간 여성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자조모임을 꾸려 열심히 공부하고 지역사회에서 발달장애 아이들이 살아나갈 기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한다. 누군가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어 발달장애 아이들이 일하고 놀고 즐길 공간을 제공한다. 누군가는 전문가가 되어 후배 부모들을 위해 지혜를 나눠주고 상담을 한다. 누군가는 부모회에 소속되어 법과 제도,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를 언제 낳았느냐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40대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엄마로서가 아닌 한 여성으로서 제 2의 삶을 시작했다. 그 삶은 본격적이고 진지했으며, 왕성한 활동력을 기반으로 많은 것을 이뤄나간 보람된 삶이다.

지난 가을부터 나는 “저 좀 만나 주세요”를 외치고 다녔다. 발달장애 업계에 있는 멋진 여성들에게 연락해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와 그들이 이뤄놓은 역사를 듣고 다녔다. 앞선 선배들의 경험을 통해 배울 것을 배우고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아직도 “저 좀 만나 주세요” 시리즈는 끝나지 않아서 아들이 겨울방학을 하는 그 날까지 만남은 계속 될 예정이다.

나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많은 것을 배운다. 어느 인생에서나 고비는 있고 어려움은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고비나 어려움이 몰려올 때면 잠깐 쓰러지기도 하고 한참 울기도 했다가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다.

중요한 건 앞으로 나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다르게 살아보기로, 이 삶을 이렇게 끝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삶을 다르게 이끌었다. 마음을 먹고 한 발을 내딛기 시작하면서부터 이후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저 좀 만나 주세요”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내 나이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녀들처럼, 이제부턴 내 삶을 개척해 나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마흔 한 살인 게 좋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이들. 딸은 학원까지 마치고 오면 5시에 집으로 오고, 아들도 활동보조 선생님이 5시까지는 거뜬히 아들을 돌봐 주신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날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다. 올해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도 씹어 먹을 나이인 30대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어디 그 뿐이랴. 마흔 한 살의 나는 이제 세상사에도 전처럼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름의 고집이 생긴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일희일비 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덕이다.

물론 아직도 감정조절이 안 돼서 욱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이젠 “그러려니~”하며 넘기는 것도 많아지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전보다 더 편하다. 전에는 누구나가 나를 좋아해야 했다. 누구나가 나를 좋아했으므로 나를 좋아하지 않는 누군가는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40대부턴 그럴 수 없다. 그런 곳에 허비하는 에너지조차 아까운 나이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가 않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40대는 그런 나이다. 주름 짜글짜글한 아줌마가 누구에게나 사랑받기 위해 아양을 떨 때는 아니라는 얘기다.

40대가 되어 여성성이 없어진 탓일까? 이젠 남자들만 있는 곳에 가도 아무렇지도 않다.

원래도 남자들과 일하는 게 더 편한 성격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금의 난 반은 여자, 반은 남자인 것만 같다. 내가 알고 싶은 것들을 알기 위해 기꺼이 아빠들만 모이는 장소에 참석해 술자리에 끼기도 한다. 이때의 난 엄마가 아닌 아빠다.

사실 아빠라 해도 큰 무리는 없는 게 마흔 살이 넘어가면서부터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노화의 과정인지 다리에 남자털이 나기 시작했다. 팔다리에 솜털만 나있는 매끈한 피부가 젊을 적 자랑이라면 자랑이었는데 이젠 내 종아리에서도 남편 다리에서나 볼 수 있는 굵은 남자털이 꼬부랑거리는 걸 볼 수 있다.

처음에 그 털을 발견하곤 낙담하여 뽑아내곤 했는데 이젠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둔다. 그래. 이제 나는 내면만이 아니라 외면까지 남자가 되어가고 있는가 보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해 버리니 편하다. 더 이상 남자여자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필요에 따라 남자도 됐다가 여자도 될 것이다. 여성성을 버린 그만큼 내 사회적 범위가 넓어졌다.

이 글을 읽으면 친구들이 난리칠 지도 모르겠다. 네가 무슨 마흔 한 살이냐고. 친구들은 마흔 두 살이기 때문이다. 얼마 뒤 마흔 세 살이 되는.

76년생 친구들과 학교를 같이 다닌 ‘빠른 77년’생인 나는 두 개의 나이를 같이 사용한다. 나이에 따른 서열이 필요할 때는 한 살 올려 마흔 두 살인 척을 하고, 나이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때는 원래 나이인 마흔 한 살을 고집한다.

그래. 엿장수 맘이듯 내 나이는 내 마음이다. 오늘의 나는 마흔 한 살이다. 마흔 살부터 40대를 준비해 올해부터 본격적인 제2의 삶을 찾아가기 시작한 나는 마흔 한 살이다. 마흔 한 살이라는 내 나이가 너무나 좋은, 그런 40대 초반의 아줌마다.

이제 얼마 뒤 다가올 마흔 두 살의 나이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의 진짜 절정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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