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나랏일이란 원칙에 따라 수많은 벼슬아치들이 각 분야의 직책을 맡아 온갖 재능을 다 발휘하고 모든 정성을 바쳐 일할 때에만 제대로 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재는 한정되어 있고, 옳고 바른 인재를 고르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때문에 어떤 직책에 적격자인 적임자를 찾아내는 일은 인사권을 지닌 통치자의 필수적인 임무입니다.  

일국을 통치하는데도 반드시 국가적인 쓸만한 인재가 발탁되어야 하지만, 군현을 맡은 목민관들, 또한 목민관을 돕고 보좌할 쓸만한 인재를 발탁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그 나라에 능력과 인격을 갖춘 통치자가 나오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성군(聖君)이 나와야만 성인의 통치가 가능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조선 오백 년에는 몇 분 훌륭한 임금이 나왔던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조선 초기에 세종대왕이요, 조선 후기에는 역시 정조대왕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법제를 개혁하여 집현전이라는 인재 재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참으로 많은 인재를 양성해내어 세종 치세를 이룩했습니다. 우선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를 발명하여 문자와 과학기술의 시대를 열 수 있었습니다. 

정조대왕 또한 규장각이라는 인재 재교육기관을 설치하여 정약용을 비롯한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시켜 정조 치세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역대 임금들의 통치를 살펴보면 그때마다 쓸만한 인재 한두 명은 반드시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같은 장수가 없었다면 조국의 현실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선조·광해·인조 연간의 어려운 시절에 이원익 같은 어진 재상이 없었다면 어떤 세상이 되었겠는가요. 모략과 중상에 시달리면서도 정조의 정약용 발탁이 없었다면 한강의 배다리가 놓이고, 수원의 화성이 그렇게 적은 경비로 축조될 수 있었겠는가요. 정약용이 없었다면 기중기·거중기 등의 기계의 발명이 있어, 그 정도로 견고하고 아름다운 화성의 축조가 가능했겠는가요. 역시 쓸만한 한 사람의 인재가 해낸 역할이 얼마나 컸던가는 금방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이원익이 했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생각도 그와 같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딱 한 사람의 인재를 얻어 좌수(座首)로 삼았다. 모든 일을 그에게 물어서 행하면 되지, 내가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결재만 할 뿐이다(我得一人爲座首 凡事問而行之 吾何爲哉 ?諾而已:用人)”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70년 벼슬살이에 40년 가까운 정승으로 재상의 벼슬만 지냈지만, 청렴하고 공정한 정사를 폈던 이원익은 젊어서 안주(安州) 목사(牧使)를 역임한 바 있습니다. 그런 시절에 이원익이 안주를 다스리며 고을의 좌수 한 사람 쓸만한 사람으로 충당했더니 자신은 할 일이 없다고 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인재이고, 모두가 쓸만한 인재라면 좋겠지만, 최소한 한 사람의 진짜 인재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니 인사권자라면 깊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찾아내야만 합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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