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봅시다] 국악지킴이 ‘소리꾼 신정혜’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 춘향가中 사랑가

판소리에 관심이 없는 이라도 한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구절이다. 수많은 국악인에게 불린 노래이지만 ‘소리꾼 신정혜’에게 오면 남다른 박력감과 품격이 두루 갖춰진다. 국악을 사랑하는 젊은 대중들 사이에서는 단연 으뜸이라는 평가다. 신정혜 씨(40)는 고 성창순 명창의 제자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와 심청가 이수자이다. 지난해 제22회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에서는 대상인 대통령상의 영예를 안았다.

 

ⓒ위클리서울/ 개인제공 및 국립무형유산
소리꾼 신정혜 ⓒ위클리서울/ 신정혜 제공

신 씨는 국악 불모지 대구에서 12살 때 대구시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인 이명희 선생을 사사하며 국악계에 입문했다. 이어 주운숙 선생에게 심청가를, 성창순 선생에게는 심청가와 흥보가를, 송순섭 선생에게 적벽가를, 유미리 선생에게 춘향가를, 그리고 안숙선 선생에게는 수궁가를 사사했다.

이명희 선생을 시작으로 주운숙 선생, 성창순·송순섭·유미리·안숙선 명창을 사사하며 유파를 넘나드는 전천후 국악인으로 성장한 신 씨. 그는 전통과 창작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침체 일변도인 국악을 대중화 하겠다는 남다른 야심을 가지고 있다.

“타장르에 비해 대중화가 덜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전에 비해서 송소희, 송가인 씨 같은 국악스타와 이날치밴드와 같이 한국전통음악으로 창작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이 등장했다. 덕분에 많이 알려지고 대중에게도 가까워진 거 같다. 대중음악에서도 전통 음악풍을 많이 선호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대중화를 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젊은 국악계의 대표격이라는 평가에 손사래 치는 신 씨. 하지만 그의 다채로운 이력을 보면 그런 평가도 과언은 아니다. 신 씨는 제10회 전국남도민요 경창대회 일반부 대상, 제22회 KBS 국악대경연 판소리 차상, 제22회 전국판소리경대회에서 명창부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국립극장 차세대명창 공연, 창작판소리공장 바닥소리에서 창작판소리극 ‘닭들의 꿈’, 잔혹 판소리극 ‘해와달’, 국악 뮤지컬 ‘대한제국 명탐정 홍설록’과 판오페라 ‘흥부와 놀부’에 참여했다. 정동극장 아라예술단 단원을 비롯해 ‘The 광대’, ‘이스터녹스’, ‘김덕수 판’, ‘김덕수 일렉사물놀이’, ‘남여울’ 객원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앨범으로는 ‘따로 또 같이’가 있다.

현재는 배연형 판소리학회장이 이끌고 있는 고음반연구회 ‘선영악회’ 동인,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서울중구지부장, 오케스트라 ‘아리랑’ 단원, 유대봉제 백인영류 가야금산조 보존회 회원, 예인집단 ‘가시’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소리꾼 신정혜’와의 일문일답이다.

 

소리꾼 신정혜 ⓒ위클리서울/ 신정혜 제공

- 어렸을 적부터 소리에 관심이 많았는지. 국악의 길로 가게 된 계기는.

▲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반학생들에게 단소와 농악을 가르쳐주신 것을 시작으로 국악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 후 5학년 때 방과후 민요반을 통해 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피아노도 배웠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전통음악 수업은 늘 기다려지고 재미있었다. 당시 민요반에서 단체로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개인적으로 판소리를 배워 보지 않겠냐 권유했고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선생님을 따라 ‘산공부’(국악에서는 심취해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의미)를 처음 가게 된 것이 국악의 길로 간 계기가 된 것 같다. 그 분이 판소리의 첫 길을 열어주신 故이명희 선생님이다. 어릴때부터 흥이 많아서 휴지나 보자기로 살풀이 춤 같은걸 흉내 내서 추기도 하고 노래부르는 걸 특히 좋아했다. 중학교 때는 가야금을 가르쳐주신 최옥희 선생님께서 국악 전공을 반대했던 부모님을 설득해주셨고, 국악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 길을 갈 수 있게 열어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항상 감사드린다.
 

- 국악은 다른 장르에 비해 대중화가 덜 되었다. 좀 더 대중화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 타장르에 비해 대중화가 덜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전에 비해서 송소희, 송가인 씨 같은 국악스타와 이날치밴드와 같이 한국전통음악으로 창작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이 등장했다. 덕분에 많이 알려지고 대중에게도 가까워진 거 같다. 대중음악에서도 전통 음악풍을 많이 선호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대중화를 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저는 얼마전까지 이달의 소녀의 PPT, 임영웅의 아비앙또 사물버젼의 피쳐링으로 참여하고, 창작오페라, 국악동요 작사, 에니메이션 음악참여를 해 왔다.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
 

- 평소 공연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개인적으로나 전반적으로나 관객들과 소통이 잘 되는 편이라 생각하는지.

공연의 성격에 따라 관객 성향에 따라 공연판에 맞는 레퍼토리를 준비하고 관객과의 소통을 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판소리라는 장르는 관객들과 소통이 중요하고 현장의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게 관건이다. 그것이 소리꾼의 역량인 거 같아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면 공연에서 추임새 소리를 알려드리거나 우리 음악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도 나누고 판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견인하고 있다.
 

- 스스로를 전통파라고 생각하는지.

▲ 전통의 판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편이다. 전통 판소리와 예전의 판소리인 중고제 판소리 복원이나 씻김굿, 가야금산조 등 전통의 레퍼토리를 보여드리고 있고 앞으로도 전통을 이어나가고 소리에 더욱 정진하고 싶다. 한없이 깊고 넓은 전통의 세계 속에서 좌절도 하지만, 학습해나가는 과정 그 속에서 감사함과 행복을 느끼고 많이 깨우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무궁무진한 전통의 소리를 사랑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날로그적인 면이 있어 SNS와도 친하지 않고, 매년 스케줄을 다이어리 북에다 펜으로 쓰는가 하면, 가사도 손글씨로 써야 눈에 잘 보이는 거 같다.
 

- 요즘 퓨전 국악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 전통을 하고 있지만 타장르의 협업이나 열린 마음으로 우리음악을 다양한 모습으로 시도해보고 싶다. 우리 전통음악을 여러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통을 고수하면서 우리음악의 대중화와 이 시대에 전통소리에 대해 앞으로도 고민하겠다.
 

- 따로 소속된 곳은 있나. 소속된 곳이 있다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 지금까지 창작판소리공장 바닥소리, 여성국극, 국립창극단 객원, 다양한 국악팀들과의 공연을 했고, 前 정동극장 예술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국내외 다양한 공연을 했다. 현재는 사)판소리보존회 중구지부장, 선영악회 회원 , 사)한국중고제진흥원 회원, 판소리학회 회원, 세계판소리 협회 정회원, 유대봉제 백인영류 보존회 정회원, 예인집단 가시 대표 등을 통해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 최근 경남 산청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고 한다. 자평하자면.

▲ 산청 기산국악당 국악상설공연에 초청되었다. 가무악을 통해 입체적으로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는 전통공연 프로그램을 구성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통공연만으로도 관객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고, 그날 공연에 관광객 외국인분들이 많아서 우리음악을 알릴 수 있는 자리여서 좋았다.
 

- 전국팔도, 해외를 넘나들고 있다. 일정을 소화하려면 몸관리도 중요할 것 같다.

▲ 지방이나 해외로 공연을 다니면서 새로운 곳에서 공연을 하면 그 과정이 여행하는 기분이 들고 매번 새롭다. 즐겁게 공연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소리꾼 신정혜 ⓒ위클리서울/ 신정혜 제공

- 몇해전엔 판소리 완창 발표회를 가졌다. 완창, 어떤 의미인가.

▲ 말이 거창해 보이지만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자리가 아니다. 말 그대로 대회가 아니라 발표회이다. 개인의 공부를 위해 정진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준비과정도 힘들고 공연과정도 힘들다. 당연히 체력소모도 많다. 그래도 보람된 부분이 크다. 완창판소리는 개인적으로 큰 도전이자 소리 인생에 있어 터닝포인트였다. 소리에 더욱 집중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소리 이외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소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왜 소리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부분들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 있었다.
 

- 국악 안에도 장르가 많다. 이런 부분들과 관련 대중들에게 책을 읽혀가며 소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통하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 스포츠와 채육수업이 분리되어서 학생들이 각각 선생님께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것처럼, 우리음악도 서양음악과 분리되어 전통음악 전담 선생님이 있으면 바람직할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음악을 접하면 대중과 소통이 되고 국악의 개념도 어렸을 때부터 자리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국악이라는 용어는 일제시대에 생겨난 것인 만큼, 국악이라는 용어 대신 우리음악이나 한국전통음악이라고 불려졌으면 좋겠다.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나아가 존경하는 국악인인 있다면.

▲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이수자로서 적벽가와 심청가에 애정을 갖고 있다.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 한 분 한 분 존경한다. 존경하는 국악인 한 분만 말씀드리기가 쉽지 않다(웃음).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 新자청비가라는 작품인데 평소 해녀에 관심이 많아 만든 작품이다. 해녀의 이야기를 판소리극으로 담고 있는 1인극이다. 1인 7역에 도전하기도 했다. 좀 더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작가님과 함께 제주도에 가서 직접 해녀체험도 해보고 제주 칠머리당굿도 배워보고 해녀삼촌(제주도에서는 해녀를 삼촌이라고 칭한다) 댁에도 묵으며 공연작품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했다.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해 애정이 있다. 작곡가님과 이 작품으로 며칠 동안 같이 밤을 새며 곡을 쓰기도 하고 소품에 필요한 전복껍데기를 구하러 죽집을 찾아다니는 등 많은 추억이 있는 작품이다.
 

- 향후 공연 계획은 어떻게 되나. 그리고 ‘소리꾼 신정혜’, 긴 세월간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며 앞으로 포부가 있다면.

▲ 올해 판소리를 한지 30년 정도 되었는데 우리음악을 알려고 하면 할수록 잘 모르겠다. 그래도 좋아하는 판소리를 업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현재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나이 육십 정도가 되었을 때 저의 소리를 기대하며 소리꾼으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잘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겠다. 스스로의 장점을 찾아보자면 소리를 놓지않고 꾸준히 걸어온 것이다. 지난해 명창부 대통령상이라는 큰상을 받았는데 이후에 소리에 대한 책임감이 더욱 생긴다. 예전 선생님들처럼 악가무를 두루 익힌 예인의 모습을 닮아가고 싶다. 부족하지만 가야금 전바탕연주도 8월 말에 있고 춤도 꾸준히 배우고 있다. 또 학문적으로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자 박사학위에도 도전하려 한다. 좋은 소리 들려드릴 수 있도록 안과 밖을 가다듬고 묵묵히 정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신정혜 이력>

- 학력
국립국악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국악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문사졸업(석사학위)

- 최근 수상실적
제 22회(2022년) 공주 박동진 명창•명고 대회 대통령상 수상
제 48회(2022년) 대한민국춘향국악대전 명창부 최우수상(국회의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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