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홍범도 장군 전문가’ 장세윤 교수-2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1회에서 이어집니다.>

‘홍범도 장군 전문가’ 장세윤 교수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홍범도 장군 전문가’ 장세윤 교수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 많은 전문가들은 홍 장군을 이회영, 김구 선생 등과 동급으로 간주해왔다. 홍범도 장군, 어떻게 평가하나.

▲ 이회영은 널리 알려진대로 조선시대 양반가, 명문가의 후예로 유명하다. 임시정부를 이끈 김구 주석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다만 김구는 평민 출신인데, 홍범도 역시 평민, 하층민 출신이다. 조실부모하여 매우 어려운 처지에서 거의 무학으로 성장하면서 자신을 성장,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사회나 국가에서는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아무런 사심 없이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희생 헌신했다는 점에서 매우 높이 평가할 만하다. 홍범도처럼 1900년대 초부터 20여 년간 줄기차게 죽음을 각오하고 독립운동, 민족해방운동에 혼신의 정열과 노력을 기울인 인물은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이전에 육사 구내에 설치되었던 이회영, 지청천(이청천), 김좌진, 이범석과 동급으로 볼 수 있지만, 단연 항일무장투쟁에서는 ‘대한민국 최고’라고 평가하고 싶다.
 

- 당시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민족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의외다.

▲ 흔히 알려진대로 ‘일자무식’은 아니었다. 정규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어릴 때 군대에 나팔수로 입대해 수년간 복무했고, 금강산의 절에서 1년 동안 행자승을 지내기도 했다. 따라서 한글은 물론, 상당한 수준의 한자나 한문도 알았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의 문서보관소에 남아있는 편지를 통해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표현을 빌자면 ‘파멸의 시대’에 아무런 사심 없이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희생시키면서 독립운동, 아니 민족해방운동과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죽음을 각오하고 헌신했다는 점일 것이다. 저는 아직까지 (이순신을 제외한다면) 홍범도 장군처럼 극찬을 받아야 할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고 여긴다.
 

- 의열단장 김원봉에 대해서도 한동안 논란이 있었다. 북한과의 연계설 때문에 한국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독립운동과 분리해서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원칙적으로는 독립유공자 포상 검토시 북한 관련 문제를 독립운동과 분리해서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그러나 현재 국민 정서나 국민 감정상 수용하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특히 최근 북한 미사일이나 핵무기 위협문제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남북한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남북한 모두에게,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러시아・미국・일본 등 열강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좀 더 충분한 검토와 다각적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 정권이 다시 바뀌면 흉상도 다시 세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 만약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현행 야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특정 개인이나 정파의 일방적 조치가 아닌, 관계기관이나 전문가들의 충분한 여론 수렴과 중장기적 관점에서 검토한 합리적 대안을 수립・실행하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 이런 논란을 두고 역사학계 분위기는 어떤가. 좌우 이념 대립은 여전한지.

▲ 이번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에 대해 역사학계의 의견은 거의 일치하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육사 교외 이전 설치에 동의하는 역사학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난 9월 13일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반대 역사단체 공동 성명서’가 한국근현대사학회 등 51개 단체 공동명의로 발표되었다. 이는 사실상 역사학계 등 관련 학계 구성원 대부분이 국방부와 육사의 조치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학계도 개인에 따라, 또 관련 연구단체에 따라 성향이나 연구목적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학계에서 진정 ‘좌파’로 분류되는 학자와 그러한 부류의 단체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좌파로 존재하거나 활동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나 갈등, 혹은 소위 ‘뉴라이트(New Right)’ 계열로 평가되는 일군의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에 대한 비판이나 성토, 이와 관련된 대립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학계의 분위기가 드러내놓고 상대방을 비판・논평하거나 열띤 논쟁을 벌이는 분위기는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 국민들이 피곤한 상황이다. 논란이 어떻게 종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 최근 소식에 따르면 육사 구내 독립운동가 5인 흉상 이전 문제는 일단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듯하다. 무의미한 이전 조치를 강행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렇게 해야 작금의 논란이 종식될 것이다. 국방부나 군, 육사는 특정 개인의 주장이나 의견에 구애되지 말고, 중장기적 안목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폭넓은 자문 등을 거쳐 체계적 계획을 수립하여 합리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 논란도 대통령의 발언이나 대통령실의 영향이 아닌가 판단된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특정 이념을 내세우며 국민과 대중을 적대시하고 갈라치기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분열과 갈등이 아닌, 통합과 조화, 포용의 ‘대승적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 대통령은 검사 출신이라 비교적 법률을 잘 알 것이다. 누차 언급하지만,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제5조에서 “1.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2.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호전적’으로 비칠 수 있는 언행을 삼가고,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 준수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또 헌법 제66조 3항은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대통령은 철지난 ‘반공논리’나 지나친 냉전논리의 강조 등으로 국민을 피곤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국방부나 군, 육사 등에서 이번처럼 불필요하게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지 않도록 국군통수권자로서의 의무에 충실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 육사도 난감할 수 있겠다. 육사의 창립 정신과 이런 논란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중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 등 정치인이나 특정 개인, 특정 정당・정파의 이데올로기나 요구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 준수’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육사도 자신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의병-독립군-한국광복군(임시정부)-국군으로의 흐름과 계통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신흥무관학교-임시정부 산하 무관학교-군사영어학교-육군사관학교 등으로의 계통을 좀 더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군정 산하에서 기원을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은 김일성이 창건했다는 매우 유치한 수준의 소위 ‘조선인민혁명군’을 현재 북한 인민군의 선구로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군의 실정은 과연 어떠한가?
 

- 끝으로 정부, 시민사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역사나 역사학, 역사가는 정치나 정치인들과 너무 가까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도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과잉 이데올로기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이러한 사례가 없었으면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역사’는 ‘탐구, 탐구를 통해 얻은 지식, 또는 탐구 결과에 대한 서술’이라는 뜻을 지닌 말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나 해석이 아니라, 나름대로 과학적 조사나 연구에 근거한 과학적 인식의 소산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자의적 판단이나 해석이 아닌 합리적 판단과 나름의 객관적 서술이 절실한 이유이다. 현재 많은 관심과 논란이 되고 있는 홍범도 흉상 이전 설치 문제를 둘러싼 논의도 우리 모두의 ‘과학적 탐구’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홍범도의 소련공산당 입당과 사회주의 조직 관련 행적, 1920년대 중․후반~1940년대 전반기 사회주의국가 소련에서의 말년 행적 등을 현재의 관점에서 무리하게 재단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당시 독립운동 과정에서 나라가 없는 약소민족, 이산 소수민족의 지도자로서 민족운동 방략의 모색과 생존을 위해 선택한 길, 혹은 불가피하거나 자연스럽게 선택한 생존과 투쟁의 한 방편, 그 과정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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