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부활’ 미 대선 향방은?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행보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도 성향 당원과 무당파 유권자들의 ‘반란’이 예상됐던 미국 공화당의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독주가 이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3일 치러진 뉴햄프셔 경선에서 유일한 도전자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를 물리치며 대선 후보 자리를 거머쥐기 위한 완전한 독주 체제를 굳혔다는 평가다. 아이오와에 이은 유례 없는 역사적 2연승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팽배했던 대세론에 정점을 찍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위클리서울/ 문재인 정부 청와대 홈페이지

“공화당의 역사 새로 쓴 인물”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시작 전부터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비롯해 다른 대선주자들을 2~3배 격차로 따돌리며 유례없는 독주를 이어갔다. 하지만 경선 시작을 전후해 반(反)트럼프 성향 당원들과 중도 성향의 비(非)당원 유권자들이 헤일리 전 대사를 중심으로 집결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한때 대세 구도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번 경선에서는 중도 성향 당원과 무당층이 두꺼운 뉴햄프셔에서 헤일리 전 대사가 거세게 추격하며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면서, 향후 전체 판도를 읽을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런 차원에서 트럼프의 이번 두 번째 경선 승리는 경쟁자 헤일리의 추격 가능성을 초반에 도려내며, 공화당 경선에서 잇따라 절반이 넘는 지지율을 확보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힘을 확실히 과시하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역대 공화당 경선에서 현직 대통령을 제외하고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잇달아 승리한 후보가 없고, 초반 두 경선에서 모두 이긴 후보는 예외 없이 본선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본선행은 이제 기정사실로 봐야한다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NYT)는 “뉴햄프셔 승리로 트럼프는 공화당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로 남게 됐다”며 “트럼프 이전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모두 승리한 공화당원은 현직 대통령 뿐”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가 아닌 누군가가 이길 가능성이 그나마 있는 것으로 보였던 지역이 헤일리의 뉴햄프셔 승리였다”며 “사실상 (공화당 경선은)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혐오 발언은 여전

트럼프 전 대통령은 23일 승리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경쟁자인 헤일리 전 대사를 특유의 비아냥으로 사퇴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 그는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석달간 ‘덜 떨어진(crooked)’ 조 바이든에게 모든 여론 조사에서 앞섰다”며 “그러나 헤일리는 그렇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헤일리 전 대사를 겨냥해 “전형적인 승리 연설은 아니겠지만, 오늘같이 최악의 밤을 맞아 놓고도 승리했다고 행세하게 하지 말자”며 후보 사퇴를 종용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근들도 한층 더 노골적으로 헤일리 전 대사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슈퍼팩(Super 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인 ‘마가’(MAGA)의 테일러 부도위치 대표는 성명을 통해 “이제는 통합의 시간이고, 민주당과 싸울 때”라며 “니키 헤일리에게 지금은 사퇴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미 결과가 예견되는 당내 경선에 매몰돼서 쓸데없이 힘을 빼지 말고, 일찌감치 바이든 대통령과의 본선에 대비하는 전략으로 서둘러 옮겨가자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공화당 경선에 출마했다 사퇴한 비벡 라마스와미는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축하 연설에 함께 등장한 뒤 “오늘 우리가 본 것은 '아메리카 퍼스트'가 '아메리카 라스트'를 이긴 것”이라며 “만약 여러분이 미국을 뒤에 놓고 싶다면, 조 바이든이나 여전히 공화당 경선에 남아 있는 다른 후보에게 가면 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 같은 강세의 배경에는 그가 강점을 보여온 경제와 이민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보고 있는 표심이 주효하게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이번 공화당 프라이머리 출구조사에서 투표자의 10명 중 3명은 경제와 이민 문제를 가장 심각한 현안으로 지목했다. 낙태 및 외교안보 정책을 꼽은 사람은 10명 중 2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지난 15일 아이오와 코커스(당원투표) 당시 응답자의 38%와 34%가 경제와 이민 문제를 가장 큰 현안으로 꼽은 것과 유사한 흐름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승리 연설에서도 “이민이 가장 큰 문제”라며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흘러들어오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감옥, 정신병원 등에서 오고 있으며, 그들이 우리나라를 죽이고 있다”고 이민 혐오 발언을 이어갔다.
 

트럼프 자신이 경쟁자?

트럼프 전 대통령 독주 체제가 굳어지며 남은 경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쟁자는 본인 자신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크게 발목을 잡는 것은 ‘사법 리스크’다. 그는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를 비롯해 모두 4차례에 걸쳐 91개 혐의로 형사 기소된 상태이며 일부 주에서는 그의 대선후보 자격에 대해 시비를 걸어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그가 대선 투표 이전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대선 국면은 또 한 번의 격랑에 휩싸일 수 있다. 다만 이번 뉴햄프셔 출구 조사에서 공화당 프라이머리 유권자의 과반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대통령직에 적합하다고 답했다. 아이오와에서도 이 같은 답변은 전체 응답의 3분의 2에 달했다. 따라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전에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유지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 본선에서 무당파나 중도파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본선 경쟁력에는 결정적 타격을 줄 수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실상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굳힌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 보니 러닝메이트 부통령 후보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선 후보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공화당 내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인 팀 스콧 또는 낸시 메이스 하원의원의 가능성을 지목했다.

공화당 하원 의원단 의장인 엘리즈 스테파닉 하원 의원, 당내 대표적인 강경 보수 성향의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도 거론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러닝메이트에 대한 질문에 “말할 수 없다”고만 답했다. 그는 “매우 좋은 사람이고 표준적인 인물”이라며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 같지는 않다”고 언급한 바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위클리서울/ 문재인 정부 청와대 홈페이지

“이보다 더 큰 위기는 없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뉴햄프셔주 공화당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승리한 데 대해 “이보다 더 큰 위기는 없다”고 직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는 것이 이제 분명하다”며 “이보다 더 큰 위험은 없다는 것이 나의 메시지”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의 민주주의, 낙태에서 투표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모든 자유가 위기”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후보로 등록하지 않은 뉴햄프셔주 민주당 프라이머리에서 지지자들의 수기 투표 덕분에 자신이 1위를 차지한 데 대해 “오늘 저녁 내 이름을 써 준 모두에게 감사한다"며 "이는 민주적 절차에 대한 헌신을 보여준 역사적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3일 오후 11시 8분 기준 33% 개표가 진행된 가운데 67.3%의 득표율로 민주당 프라이머리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 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내달 3일 예정된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첫 공식 경선지로 선정했음에도, ‘첫 프라이머리 개최’를 주(州)법으로 못 박은 뉴햄프셔주가 이에 반기를 들고 23일 경선을 강행한 데 따른 결과다.

이에 뉴햄프셔주 민주당원들 사이에서는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어도 바이든 대통령 이름을 투표용지에 수기로 적어 내자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20년 대선 당시 아이오와주에서 4위를 한 데 이어 뉴햄프셔에서 5위를 기록, 초반 대세론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백인 위주로 구성된 이들 2개 주로는 미국 전체 민심을 대변하지 못한다며 첫 경선 지역 변경을 요청했다. 한반도와 국제 정세에 중대한 영향을 줄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11월5일)가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리턴매치’로 치러질 가능성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전 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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