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파업 장기화’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의료 대란이 한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정부의 의대생 증원 정책이 기폭제가 되면서 의사들의 반발이 이어져 왔다.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와의 마찰이 장기화 되면서 지난 26일엔 의대 교수들의 무더기 사직이 본격화 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서울대병원을 찾아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등 의정 협의에 나서기로 했으나, 여전히 구체적인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서 의료 현장 혼란과 환자 불안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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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사직

대전·충남권 거점 병원인 충남대는 의대 교수 78%가 사직에 동의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사직서를 제출한 정확한 인원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비대위) 측은 "의대 학생이 단체로 유급을 당하거나, 전공의가 실제로 사법 조치를 당한다면 교수 자유의사에 따라 사직하겠다고 밝힌 인원"이라며 "사직서는 교수 개인이 자율 작성해 오는 29일까지 비대위에 제출하면 취합해 학교와 병원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충남 순천향대천안병원에서는 전날 오후 교수협의회 측이 교수들의 사직서를 취합하거나 개별적으로 병원장 또는 병원 인사 노무팀에 직접 제출했다. 사직서 제출 인원은 이 병원에서 근무 중인 의대 교수 233명 중 100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대 의대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진은 교수 550여명을 대상으로 사직서를 제출받고 있다. 교수협의회는 전날부터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오세옥 교수협의회장이 사직서를 모아 부산대에 일괄 제출하기로 했다.

충북에선 도내 유일 상급 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과 충북대 의대 소속 교수 200여명 중 약 50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충북대 의대·병원 교수회 비상대책위는 의대 증원 확대 등 필수 의료 패키지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은 이어질 것 같다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경북대 의대 일부 교수들도 지난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숫자나 신원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영남대 의대 교수들도 사직서 제출에 뜻을 모았지만, 구체적인 제출 시기 등은 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계명대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피해가 갈 경우 사직서를 내겠다는 뜻을 모으고, 27일 사직서를 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교수들은 개별적으로 사직서를 쓰고 이를 모아 한꺼번에 의대나 대학본부에 제출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90%가 사직 의사를 밝힌 대구가톨릭대 의대 교수들도 교수비상대책위원회 등에 사직서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전남대와 조선대 의대 교수들은 전날 오후부터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다. 전남대 의대 교수는 283명인데 20여명이 비대위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는 오는 29일까지 받기로 했으며 의대 행정과에 일괄 제출할 계획이다. 조선대 의대는 전날까지 161명 교수 중 15%가량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강원의대와 강원대병원 비대위 임시총회 결과 전국의대 교수협의회 입장문·비대위 성명서와 같이 정부에 의한 입학 정원 배정 철회가 없는 한 이날부터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또 의료진의 누적된 피로뿐만 아니라 환자 안전을 위해 주 52시간 근무, 중증 환자·응급환자 진료를 위한 외래진료 축소를 내달 1일부터 시작한다.

경남 경상국립대에서도 의대 교수 260여명 중 25명가량이 사직서를 냈다. 교수들은 오는 29일까지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할 방침이다. 전북대 의대와 전북대병원, 원광대 의대와 원광대병원, 제주대 등에서도 사직서를 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충남 을지대와 천안 단국대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 제출을 논의 중이다. 인천지역과 경기 치의과학대학교는 아직 사직서 제출을 비롯한 집단행동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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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 불안은 계속되고...

교수 집단 사직 우려가 현실화 되자 일선의 환자들은 절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뇌경색을 앓고 있는 박모(58·충북 괴산) 씨는 "뉴스를 볼 때마다 울분을 토한다"며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환자들은 어떡해야 하냐"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 씨는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발생하기 열흘 전 수술이 시급하다는 전문의 진단을 받고서도 전공의 이탈 영향으로 지금껏 수술 날짜를 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박 씨는 "정부가 표 의식하지 말고 의사들과 적극 대화에 나섰으면 한다. 저보다 더 상태가 심한 환자들도 지금 수술을 못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간 이식 수술을 받고 경북의 한 병원에서 전문의 진료를 주기적으로 받아온 70대 환자의 보호자 정모(42) 씨는 "아버지가 수술 후 징후도 좋지 않아 전문의 진료가 필수적이다. 선생님들이 사직하면 환자들은 누가 돌보냐"고 불안감을 토로했다.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까지 병원을 이탈하면서 의료 현장 혼란은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입원 병상 가동률은 전국적으로 70%대에서 40%대로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특히 신생아 집중치료실과 응급실은 남은 의료진들이 잦은 당직 근무를 서가며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대 정형외과 한 의사는 "관절 수술을 담당하고 있는데 전공의가 없어 보름 간 수술을 제대로 못 했다"며 "신규 외래 환자도 못 받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의료계에 '모든 안건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며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의협 차기 회장 후보들이 모두 대정부 강경투쟁을 예고하고 있어 앞으로 정부와 의료계의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주최로 열린 '의사인력 증원, 이렇게는 안된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노조원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주최로 열린 '의사인력 증원, 이렇게는 안된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노조원들 ⓒ위클리서울/(사진=연합뉴스)

“공공의료가 핵심”

의대 증원을 두고 정부와 의사 간 대립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시민들 사이에서는 "문제의 본질은 사라지고 허구적인 갈등만 남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증원 추진이 분노·증오 등의 부정적 감정을 활용한 포퓰리즘적 대결 정치 양상을 띠며 의료 형평성과 공공의료 강화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전날(26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는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칼날 위에 선 한국의료 개혁 과제와 대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자로 나선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은 "정부와 의사들의 대립은 허구적 대립"이라며 "실제 문제는 지역·진료과목·의료기관 간 의료 접근성과 형평성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 논의는 사라지고 의사 수 증원이 참이냐 아니냐는 단순한 진리 게임만 남았다"고 밝혔다.

이 연구위원은 '진짜 문제'인 의료 공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사 수보다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정치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위원은 "시장에 의료 규제를 맡기는 방식은 실패했으며, 강력하고 유능한 정부가 개입해 서비스 계획과 배분을 책임져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의대생 선발제도 혁신·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의료기관 내 의사 권력 독점 체계 타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정희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정책위원장도 "그동안 정부는 의료공급과 관리를 시장과 민간에 내맡기고, 병원은 수련해야 할 전공의들을 돈벌이에 이용한 것이 핵심 문제"라며 "잘못된 보건의료·의료인력정책 문제를 솔직히 인정하고 책임질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전공의들을 향해서는 "미래에 병원 원장을 할지 봉직의가 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공급 숫자가 많아져 자기 상품성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는 것이라면, 그런 의식 속에서 나와서 시민들과 함께 토론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경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은 의·정 대치 속에 병원노동자와 시민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정부와 의사, 두 권력의 싸움에서 시민이 공공병원과 공공의료 인력(공공의사)을 투입하라고, 간호사가 의사 일을 대신해서 의사 부족을 해결할 수 없다고, 이 사태로 인한 손실을 노동자들이 메꾸게 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특히 현 정부의 의대 증원과 의료 개혁 방식은 실제 발생하는 문제점의 해결 방안과 거리가 멀며 '공공의료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자문위원장은 "현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는 재정낭비적이며 상호 모순적이기까지 한 의료민영화"라며 "수익이 남지 않는 의료취약지에 존재할 수 있는 건 공공병원뿐인데 그 확충방안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공공의료는 정치권력의 방치와 시장의료 확대로 만신창이가 됐고 지금의 화두는 공공의료의 복원"이라며 "지역 내 거점이 돼 지역 의료를 소화할 수 있는 국립대병원, 공공병원을 만들고 여기서 활동할 의사·간호사·치료사 등을 배치할 공공적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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