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시 구성면 월계리. 속명 ‘골마’라는 곳에서, 전원생활에 푹 빠져 사는 나. 시골댁~~. 언덕위에 위치한 농가의 해발높이가 300m이니 마을지대가 꽤나 높은 편이다. 필자가 사는 농가에 가기 위해서는, 김천에서 25km정도를 거창 쪽으로 가다가, 충북 영동 쪽으로 조금 들어가다 보면 맑은 냇가를 만난다. 올갱이가 살고 있는, 아직은 오염되지 않은 청정 개울을 건너 산중턱으로 오르다 보면 빨간 지붕이 보인다. 1987년도에 대구에서 이곳 월계리로 이사 온 울 아버지. 지금처럼 귀농개념도 없었던 시기에, 젖소 목장을 하시겠다고
땅을 살리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기르는 생태 순환적인 농사 이야기를 청소년 눈높이에 맞추어 알기 쉽게 담고 있다. 어떻게 해야 논과 밭에서 건강한 먹을거리를 키울 수 있는지, 농사가 흙과 미생물 등 생태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작물은 언제 심고 언제 거두는지, 농약과 화학 비료가 반드시 필요한지 등 농사의 원리와 농사로 인한 생태의 순환, 작물 재배법까지 우리 삶과 밀접한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이 책은 농사는 농부만 짓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도시에서도 자투리땅이나 상자텃밭, 옥상 텃밭 등에 모
전북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 하섬 앞 갯벌은 이 지역 주민들의 찬장과도 같은 곳이다. 하섬은 사리 때가 되면 바닷길이 열려 육지와 연결되는 섬인데, 섬 주변은 해안선의 바위지대다. 바위지대를 벗어나 하조대까지는 모래펄갯벌이고, 하조대에서 하섬으로 이어지는 칫등 주변은 자갈과 모래가 섞인 혼합갯벌, 하섬과 진여(긴여) 주변은 조수웅덩이가 발달한 바위지대 등 갯벌 스펙트럼이 펼쳐지는 곳으로 종 다양성의 보고이다. 바위지대에는 굴, 고둥류, 민꽃게, 똘장게(현지어, ‘무늬발게’ ‘풀게’의 통칭) 등의 게류와, 파래, 청각, 톳, 돌김, 쥐
정호승의 시집 에 이라는 시가 있다. 내 집을 떠나 길바닥에 나앉은 것은 푸른 하늘을 끝없이 날던 종다리가 잠시 길바닥에 내려앉았기 때문이요, 봄바람에 흩날리던 민들레 홀씨가 길바닥에 내려앉아 드디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요, 길바닥에 나앉아 마음 놓고 우는 아이만큼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내 너를 떠나 길바닥에 나앉아 밤마다 개미집에 잠드는 것은 개미집에 켜진 조그만 등불 하나가 밤새도록 밤을 밝히기 때문이고, 내 길바닥에 나앉아 눈을 뒤집어쓰고 고요히 기다리는 것
‘가족’이라는 이름큰 길가 유리창에 붙여진 두 뼘 도화지에 초록 크레파스로 씌어진 글씨. ‘빵집’을 쓴 이면우 시인은 그 아이의 글씨 앞에서 자세를 반듯이 고쳐 앉는다. 가족이란 그런 힘을 가진 존재일 것이다.
내 어릴 적의 겨울은 다음 몇 가지 기억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눈썰매타기, 연날리기, 눈사람 만들기, 군불 때기, 벙어리장갑에 방울 모자를 눌러 쓰고 산토끼를 쫓던 일, 아랫목에 누워 동화책 읽기, 질화로에 군고구마 구워 먹기 들이 그것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에도 그때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세월의 더께는 나의 유년 시절을 놀라울 정도로 복원하고 있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즈음, 나의 뇌리에서 유독 떠나지 않는 기억이 있으니 바로 온돌방에 얽힌 이야기다. 저
화롯불에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먹었다면 모를까, 조개를 구워 먹었다면 의아해들 할 것이다. 그러나 의아해할 게 없다.원래 조개류는 구워 먹어야 제 맛이다.양념을 할 필요도 없고, 간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아궁이 불이나 화롯불에 조개의 꼭지부분을 넘어지지 않게 잘 꽂아두고 한참 있으면 ‘피이~’ 소리를 내며 조가비가 쫙 벌어지는데, 이때 화롯불에 떨어지는 조가비 속의 국물로 인해 살은 온통 재를 뒤집어쓰기 마련이다. 은박지가 흔한 요즈음이야 은박지에 싸서 구우면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재 닦아내며 먹는 이 조개 맛은 일품이다.이런
내가 사는 이곳 고창에도 해태 양식장이 있다. 그것을 가공하는 김 공장도 여럿 있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고창에도 김 양식장이 있다는 얘기는 마치 고창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다는 주장과도 같아서 믿어지지 않았다.내 고향 고창에는 없는 것이 없다는 게 평상시 내 생각이기는 했다. 없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품질도 대부분 최상이다. 흙이 좋아서 무엇이든 심었다 하면 명품이 된다. 복분자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더니 수박이 그랬고, 무와 배추 그리고 호박고구마가 황토와 어우러져 별
우리 시대의 민체(民體) “벌어먹겠다고 구루마에 정성들여 써붙인 글씨 ‘군고구마’, 그 이상 잘 쓸 수 있겠어?”서예가이기도 했던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이 생전에 했던 이 말씀은 장삼이사들의 손글씨 간판에 바쳐진 빛나는 헌사. 손글씨 간판에 흐르는 건강한 민중심성과 생업의 엄중함을 한데 꿰뚫은 애정 깊은 통찰이다. 그에 따르면 손글씨 간판이란 ‘벌어먹겠다고 정성들여 써붙인’ 것. 하여 일필휘지와는 거리가 멀수록, 마음으로 꾹꾹 눌러 쓴 기색 역력할수록, 삐뚤빠뚤 허술할수록, 맞춤법 따위에 주눅들지도
오일장의 호박“가다가 주저앙거불었어. 넘의야여. 팽야 우리 유재 사람인게 조까라도 벳겨주고 갈라고.”아짐 할매들마다 손톱 밑이 까매져서 감자대(고구마줄기를 여기서는 다들 그리 부르신다) 벗기기 삼매경에 든 순창장.장 보러 나온 이순자(58·순창 유등면 건곡리) 아짐도 꽃무늬 고운 양산을 장바닥에 내려놓고 그 위에 하나둘 벗긴 감자대를 쌓아가는 중이다. 손이 시나브로 물들어간다. 이 물든 손이 오늘 순창장에선 우리가 ‘유재 사람’이라는 것의 증거. “지비도 얼릉 와서 벳기랑게.”지나던 아짐이 자꾸 보태지고 왁자한 웃음소리는 더욱 커지
찾아내면 횡재, 나누면 기쁨“갈 직에 다무락(담) 욱에 호박 따 갖고 가시오. 잉!”당부하던 할매. 행여 안 따 갈까봐 호미자루 놓고 따라 나온다.“아, 호박 가져가란께.”낑낑 꼰지발 딛고 호박 하나 따고 그 곁에 싱싱한 호박잎 하나 뚝 끊는다. 여리디 여린 호박 하나 널찍한 초록 잎 위에 얹어 내미는 손길. ‘없어도 그만’인 호박잎 하나 굳이 보태어 치장하는 그 여유. 곤고한 삶에서도 지켜온 미감이기에 더욱 고웁다.성암떡 할매(화순 동복면 가수리)뿐이랴. 밭에서 고샅에서 만난 할매들이 언제 본 적 없는 사람의 손 안에, 품 안에
대둔도 구석구석물때다. 바람만 고요하다면 모다들 미역바위에 가서 미역을 뜯고 있을 것이다.“뺀질뺀질 솔찬히 많이 질었어. 큰여 바우 가상이 빤들빤들하드란께.”이 세상엔 절경도, 선경도, 비경도,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도 많지만 시방 오리 아짐들 마음이 달려가는 곳은 빤들빤들 미역줄기 너풀거리는 미역바위. ‘언수엄 오짐싼디’의 내력“오리는 앞뒤로 해변가가 좋아갖고 전에는 그런 것 해오문 장굴(자갈밭)에다 널었어. 짜갈짜갈 돌멩이 위에다가. 지금은 도로가 나서 판판하고 널룬께 거그다 널제. 차도 안 댕긴께.”오리 어매들이 평상 위에
경기도 우수 친환경농산물과 지역특산품을 한 번에 접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경기도는 오는 10일~11일 안양 평촌 중앙공원에서 ‘2016년 추석맞이 경기 농산물 큰잔치’를 개최한다. 농산물 큰잔치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다.추석맞이 경기농산물 큰잔치에는 여주 땅콩·고구마, 화성 포도, 시흥 연근, 가평 잣 등 도 내 친환경농산물과 지역특산품 등 44개 농가 및 단체가 참여한다.도민들은 일반 소비자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우수한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다. 또한 에코백 만들기, 전통 탈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마련됐다.
국세청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개별소비세와 법인세 등 지난해 도박회사인 강원랜드가 납부한 세금이 역대 최다인 2968억 원이었다고 한다. 강원랜드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매년 사상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다는 발표도 있었다. 도박 사업은 망하거나 위축되는 법이 없이 당당하게 꾸준히 정부 당국자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는 얘기이다.이런 개떡 같은 뉴스를 접하고 있노라니 문득 ‘금 따는 콩밭’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콩을 심은 밭에서 금맥이 발견되었다는 환각으로 콩밭을 모조리 파헤치는 등의 ‘미친 짓’을 했지만 금은 안 나오고 빚쟁이만 되었다는,
지석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마을 앞숲이 좋다. 화순 도곡면 덕곡리 덕산마을. 나주 남평과 인접한 이 마을은 지석강이 지척인 마을이다.원래는 마을 바로 앞으로 강이 흘러 남평 드들강으로 흘러갔다. 이 강을 따라 조금만 더 내려가면 나주 남평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보를 막아 강물을 대서 농사를 지었다. 그 보를 마을 사람들은 ‘짜구보’라고 했는데 물론 지금은 없어졌다.마을 앞으로 제방을 막으면서 짜구보는 없어졌고 해마다 홍수가 잦았던 마을은 물난리 걱정을 잊고 살았다. 마을 숲 속에는 삼효정(三孝亭) 자리해덕곡(德谷)리의 지명은 덕산
거문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있는 섬이다. 여수와 제주도 중간에 위치한 다도해 최남단 섬이다. 서도, 동도, 고도 3개 섬으로 이뤄져 있다. 지리적 여건으로 열강의 침입을 받아왔다. 대부분 암석해안과 해식애로 이뤄져 있다. ‘거문도 뱃노래’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주요 농산물은 고구마, 감자, 마늘, 유채, 양파이고 연안에서 삼치, 멸치, 도미, 갈치 등이 잡힌다. 자연산 굴, 미역, 조개류가 채취된다. 특산물은 자연산 미역, 갈치, 갈치창젓이다. 문득 거문도 사람들의 애환이 묻어난 ‘거문도 뱃노래’가 떠오른다. 섬사람
“마을 할머니들 보면 멋있어요.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아요. 힘닿는 데까지 농사지으면서 내 한 몸 건사하며 독립적으로 살고 싶어요.”20년 전 귀농했을 때만 해도 “농사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는 최경미 씨, 지금은 농사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단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삶을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하고 싶다. 그녀는 귀농이라는 말이 잘 쓰이지도 않던 때 전남 해남에 왔다. “서울에서 회사 다니며 친구들과 노는 게 다였던” 그녀의 인생은, 농사를 짓고 싶은 남편을 따라 귀농하면서 180도 바뀌었다. “잔잔한 물에
정동임(71) 할매도 ‘밭의 부름’을 받았다.“꽤가 바짝바짝 커분께 시방 소꽈줘야제. 밭이 불러, 오라고.”따가운 봄볕이 쟁글쟁글 내리쬐는 밭. 어정 건들 지나가는 바람 한자락의 공덕도 예사로 여기지 않는다.“아이고 시원허네, 바람 안 불문 숨이 꽝꽝 막히제.”할매는 “인자 올해만 허고 안헐라요”라고 말한다. 작년에도 했던 말이다. 서울 인근에 살다 고향으로 내려온 지 8년.“여가 아저씨 고향이제. 나도 팽야 요 근방이여. 서울서 일하다 정년퇴직해분께 할 것이 없더라고. 둔눱고 잡겄어. 일하고 잡제. 내려온께 좋아. 서울서는 일함시
1980년 5월, 광주에서 역사의 진보와 반동 사이에서 끔찍한 죽임의 행렬이 시작됐다. “왜 광주였을까?”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5월 광주의 뜨거운 맹세는 그 뒤로도 많은 의로운 이들을 고뇌와 방랑 그리고 죽음으로 몰아넣었다.5월 광주민중항쟁이 진압된 때, 한국 사회는 총과 칼 앞에 오랜 침묵이 지배하던 암흑의 시기였다. 그러나 광주에서 의로운 시민과 학생들이 참혹하게 학살당하는 현장을 목격했던 김의기는 고립된 도시 광주를 알리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광주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과 작성한 유인물을 선배와 친구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