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오는 늦은 잠에서 깨어났다. 신문사에서 족쇄로 채워준 호출기가 계속해 울리고 있었다. 준오는 확인할 필요도 없는 호출기를 들어 조그마한 액정 화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저만치 덩그러니 놓여있는 앉은뱅이 책상 위에 던져버렸다. 다행히 큰 소리를 내며 요란스럽게 떨어질 줄 알았던 호출기는 언제 보다말았는지 펴져 있던 책상의 두툼한 책 위에서 한 바퀴를 굴러 방바닥 위에 안착했다. 딸그락 하는 소리만 간신히 준오의 귀에 들렸을 뿐이다. 입안에선 수십일 동안 양치질을 하지 않은 것처럼 지독한 누린내가 났다. 머리가 깨어질듯 아팠다. 마실 물은 있던가. 준오는 엉금엉금 기어가 80cc짜리 냉장고 문을 열었다. 김치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문득 식욕이 느껴졌다. 하지만 술에 찌들대로 찌들어 이제 어느 상태에까지 이르렀는지 자신조차도 모를 위는 이미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다. 김치와 밥을 먹는 대신 준오는 냉장고 문 안쪽에 간신히 붙어있는 음료수용 칸에서 겔포스를 꺼내들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장 큰 위안이 돼준 준오의 유일한, 그러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필품이었다. 때론 그마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지만 이제 거의 습관적으로 하얀 정액 같은 젤 타입의 액체를 입안에 짜 넣곤 하는 것이었다. 준오는 잘 뜯어지지 않는 봉지를 이빨로 신경질적으로 물어뜯다가 거기에서조차 코 안을 찌르듯이 풍겨 나오는 김치냄새에 웩하고 헛구역질을 해야만 했다. 신물이 구멍을 잘못 찾은 탓인지 코끝이 얼얼해 왔다. 항상 그랬지만 아침에 하는 헛구역질은 정말 준오에겐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시골에 내려가서도 양치질을 하다가 그때마다 구역질을 하는 준오를 보고 노모가 한약을 지어주기도 했지만 그도 그 뿐. 그 구역질이 스스로도 싫어서, 그리고 노모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들인 공은 결과를 보진 못했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는 술자리. 그것도 매일이 폭주였다. 주위에서 그런 준오를 보고 걱정을 할 때마다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하고 둘러대곤 했지만 그건 사실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준오 스스로가 술자리를 좇았고 자리에 끼여들면 꼭 몇 순 배는 술잔이 돌아야 세상사는 걸 느끼곤 하는 것이었다.

노모는 상시로 전화를 걸어와 병원 타령을 하곤 하셨지만 준오는 그런 얘기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자신의 몸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진짜 무슨 병에라도 걸린 건 아닌지, 겁이 난 탓도 있었지만 시간이 없는 것도 이유중 한가지였다. 대학에 다닐 때까지 꾸준히 해왔던 운동을 끊은 것도 이미 오래 전 일이었다. 날이 갈수록 몸은 망가져만 가고 있었다. 한번은 궁리 끝에 출입 경찰서 근처에 있는 헬스클럽에 등록, 지친 삶에서의 탈출을 꾀한 적도 있지만 그때 뿐. 결심은 3일을 못 넘어 갔다.

다시 호출기가 울렸다. 진동으로 해 놓은 호출기는 지지지직, 지진이라도 난 마냥 온 방안을 헤집었다. 다리가 잘린 풍뎅이. 머리가 두세 바퀴는 돌아가 이미 생물로서의 기능은 상실한. 뒤집어놓은 풍뎅이는 자신의 처지를 아는 지 모르는 지, 빈 날갯짓을 해댔고 그 결과는 자리에서 빙빙 도는 것이었다. 소리만 요란할 뿐. 아이들은 그 풍뎅이를 선풍기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골 아이들에게 빙빙 도는 풍뎅이는 그리 오래 관심을 끄는 노리개는 되지 못했다. 곧 버려졌고, 버려진 풍뎅이는 그렇게 혼자서 또 빙빙 돌다가 결국은 힘을 잃고 죽어 가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그런 행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런 다음에도 그들은 또 풍뎅이가 눈에 뜨이면 어김없이 앞다투어 손아귀에 넣느라 바빴다. 그리고 또 버렸다. 풍뎅이는 또 그렇게 죽어갔다.

어쩌면 준오는 자신의 처지가 그 풍뎅이와 같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고 생각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사지는 부러진 채 살아야겠다는 몸부림만으로 한 자리를 빙빙 돌고 있을 뿐인. 하지만 그건 죽음을 재촉하는 짓이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체에 불과했다. 얼마 안가 모든 것을 멈추고 말아야 하는. 그래서 그 날갯짓은 그렇게 공허할 수가 없었다.

준오는 새삼 전날밤 일을 떠올리려 애를 써봤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요즘 같아선 거의 매일 아침마다 관례적으로 하는 반추행사였지만 매번 결국은 중도에 포기를 하고 말았다. 누군가가 그렇게 기억이 가물가물하게 필름이 이어졌다 끊기고 하는 걸 가리켜 '알코올 중독'이라고 쓴 소리를 하기도 했고, 실제로 여러 번 신문과 방송 등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걸 보기도 한 준오였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기억을 되살려보려고만 할 뿐이었다. 혹 실수라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조바심에.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전날 밤의 기억은 자연스럽게 떠올려졌다. 욕실에서 들려오는 낯선 물소리. 어? 누가 있나, 하고 잠시 생각에 잠기려는 찰라 준오는 곧바로 그 소리의 주인공을 알아냈다. 미희였다.

확, 하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가 왜 그랬을까?

사실 어찌 보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지만, 저간의 사정을 알고 나면 그게 새삼스러운 일일수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여자와의 섹스를 다른 사람 못지 않게 중대한 일들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집안에만은 절대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희와도 마찬가지였다. 전부 미희의 한남동 언덕 오피스텔에서 이루어진 것일 뿐이었다. 한번은 끝까지 집 구경을 하겠다고 부득불 우겨 집 앞까지 왔던 그녀도 결국은 화를 내며 돌아설 정도였으니. 미희는 돌아가는 뒷덜미에 "너, 유부남 아냐? 집에 마누라라도 숨겨놓은…"이라고 까지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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