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탐방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편

ⓒ위클리서울/ 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지난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 1편으로 영화제 탐방기가 다시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지난 세 달여간의 휴식동안 이 시리즈를 잊거나 새롭게 보게 된 독자가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늘 한 번 더 마지막으로 소개하려 한다. 이 시리즈는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기 전, 2019년에 다녀온 국내 영화제들의 탐방기다. 5월의 전주국제영화제부터 10월의 부산국제영화제까지 연재했다. 이번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편이다.
 

거짓말투성이 글을 쓰는 이유

매번 다른 인트로를 쓸 때가 가장 재미있다. 영화제 탐방기라는 같은 소재로 시리즈를 연재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제각각의 인트로 만큼이나 글에 담기는 내용과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사실 같은 형식으로 반복해야 실력이 늘어 덜 어색한 글을 쓸 수 있을 테다. 전엔 그러려고 노력해보기도 했지만 비슷한 글은 쓰는 나부터가 재미가 없어서 독자들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았다. 글쓰기에 완벽한 정도나 완성도가 있지 않듯 내 글 역시 늘 부족하고 어색하지만 매번 다르게 쓰려 ‘노력’하겠다는 것은 약속한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조금 다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어떤 정보를 찾아 쓰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런 글을 쓰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여행기나 탐방기를 자주 쓰는 이유도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을 쓸 때 마음이 덜 불안하고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가 아무리 공신력이 있다 한들, 그 실체를 알 수 없어 혹 잘못된 정보를 글에 옮길까 걱정이 된다. 물론 내가 직접 경험하거나 들은 이야기가 인터넷의 정보보다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사람의 참견과 수정을 거친 정보가 한 사람의 경험보단 당연히 낫다. 더 믿을 수 없는 엉망진창의 이야기를 떠들어대면서 오히려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수필의 형식을 취하는 글은 처음부터 픽션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명확해서다. 우리의 기억이 자의적이고 허구적이듯, 기억에 의존한 글은 더더욱 거짓말투성이다. 쓰는 이가 인지하고 있지 않더라도 이미 무의식에서 거짓말을 지어내고 있을 것이다.

영화제 탐방기 역시 아무리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해도 결국엔 기억에 의존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영화제에 한 번 다녀오는 것보다 글 한 편을 쓰는 것이 더 어려워 2019년에 다녀온 영화제들을 2020년이 끝나가는 지금도 계속 쓰고 있다. 어제 본 영화의 줄거리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마당에, 작년에 다녀온 영화제 이야기를 여태 하고 있으니 머리를 쥐어짜내도 도무지 구체적인 기억이 되살아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글을 쓸 수 있는 건 그때 영화제를 간 이유와 가서 느낀 감상만큼은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편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대에 영화제까지 가서 아직 별점도 매겨지지 않은 영화를 실험적으로 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하다.
 

ⓒ위클리서울/ 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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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제가 뭐예요

국내에 수많은 영화제가 있는 만큼, 여성영화제 역시 그 종류가 다양하다. 서울에 이어 광주와 대구에도 여성영화제가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찾아보니 원주, 인천, 제주, 충북까지 있었다. 물론 직접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이야기를 꺼내진 않겠다. 어찌됐든 여성영화제가 그렇게나 많다는 건 집이나 근처 극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들이 한 성별에 쏠려 있었다는 뜻이겠다. 지금까지 인기가 많았던 영화 시리즈를 떠올려보자. 007과 같은 액션 영화, 히어로들이 나오는 마블의 영화, 좀비 같은 장르 영화나 재난 영화까지. 최근의 변화가 있기 전까지 접근성이 좋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여성 캐릭터를 찾아보긴 어려웠다. 반드시 두 성별이 동등하게 등장해야 한다고 믿었던 멜로 영화에서만 여성이 주연이거나 홀로 주인공을 차지했다. 그러니까 벡델테스트라는 것도 등장했다. 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나올 것,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대화 내용에 남자와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내용이 있을 것 등의 세 가지 기준이다. 현재 긍정적 변화를 꾀하고 있는 영화 업계에서 교과서처럼 사용하는 이 기준만 봐도 그동안 영화에서 여성이 어떻게 그려졌는지를 읽어낼 수 있다.

왜 이런 영화제가 만들어졌는지는 앞서 설명한 이유들만으로도 충분할 테고, 지식백과부터 여성영화제들의 홈페이지까지 빼곡하게 적혀있을 테니 차치하겠다. 다만 보다 정확한 정보를 위해 사전을 찾아보니, 여성영화제는 ‘여성의 인권이나 정체성 따위와 관련된 내용의 영화 작품을 모아서 일정 기간 내에 연속적으로 상영하는 행사’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여성과 관련된 영화만을 상영하지만 여성만이 갈 수 있는 영화제는 아니다. 인권을 다루는 영화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장르 영화도 많다. 영화에서 소외되었음에도 영화를 좋아한 사람들이 모여 잘 다뤄지지 않는 우리들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려고 만들어진 행사이기 때문에 다양성만큼은 확실하게 담보된다. 일반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는 영화, 예술 극장이나 독립 극장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영화를 보고 싶어서 영화제를 가는 것이므로, 더 다양한 영화가 있는 여성영화제를 방문하는 것은 늘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위클리서울/ 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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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사랑과 당연한 우정

특히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개최된 국제영화제로, 오랜 역사와 관객들과의 우정을 지니고 있다. 우연히 학교 근처에서 열려 여러 해 영화제를 방문할 수 있었던 나는 2019년에 열린 제 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도 가보았다. 처음 영화제를 방문했던 건 부산이나 전주와 달리 동네 가까이에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지만, 그 후로도 매년 방문한 건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막 고른 영화도 내가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여성이 주인공이고,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없는 강간 장면이나 손쉽게 여성이 죽임당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겨서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 극장을 찾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만, 그냥 영화가 보고 싶어서 극장에 갔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영화를 우연히 보고 사랑하게 되는 것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영화제를 방문하는 데에는 그만큼의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겐 소외된 이들도 모두 끌어안는 다양성과 거기서 시작되는 사랑, 우정, 평화, 변화와 같은 정서들이 큰 힘과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이유로 극장을 찾은 관객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을 기준으로 작년인 2019년엔 학생 신분으로 너무 많은 영화제를 방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산, 전주, 강릉 같은 영화제는 이왕 멀리 간 만큼 숙소를 빌려 편하게 영화제를 오갈 수 있었지만, 서울에서 열린 영화제는 집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서 하루 정도를 방문하는 것이 전부였다. 학교 근처 동네에 사는 친구들보다, 타 지역에서 와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이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이 가능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 탓에 저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어땠는지, 감상했던 영화는 무엇이 있었는지를 다른 영화제와 달리 빈약하게 적을 수밖에 없어 통 크게 편집하기로 했다. 여성영화제의 의미와 매번 방문하게 되는 이유 등을 다루는 것이 보다 유의미할 것이라 판단했다. 다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는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자세하게 글로 옮길 것이다. 꼭 그러고 싶으니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먼저 2021년엔 강릉국제영화제 1회를 다녀온 탐방기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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