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영화 ‘브로큰 다크니스(Broken Darkness, 2017)’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한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지난해에는 유럽 지역이 델타 바이러스로 곤혹을 치뤘다. 2021년 1월 유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누적 확진자가 1억명이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델타 변이의 확산으로 인한 것이다. 유럽은 델타에 이어 오미크론의 변이 바이러스의 진원지로도 지목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주에만 유럽에서는 490만 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최근 모든 주간 기록을 갱신한 상태다. 이제 변이 바이러스는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델타에 이어 오미크론까지 코로나 19는 언제까지 우리를 괴롭힐 것인가. 영영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인류가 계속되는 변이 바이러스를 피해 지상이 아닌 곳에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하고 살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영화 ‘브로큰 다크니스(Broken Darkness, 2017)’는 바이러스를 피해 8년 도안 지하에 숨은 사람들의 행적을 그린 영화다. 인류는 얼마나 더 고통받아야 할까.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을 떠나 낯설고 축축한 지하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고통일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어느날 평범한 저녁에 선포된 ‘국가비상사태’

불행의 징조는 예고도 없이 찾아든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밤, 미국 전역에는 갑자기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된다. 정부는 “다량의 유성이 감지되었고 15분내에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된다”는 경고 방송을 내보낸다. 위기를 직감한 주인공 샘(션 카메론 마이클 분)은 재빨리 생필품을 챙겨 아들 존을 데리고 급히 가까운 지하 벙커(대피소)로 향한다. 불안해하는 아들을 다독이며 대피소에 도착한 샘 부자. 하지만 이미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대피소는 아수라장이다. 이때 한 남성이 총을 들이대며 자신이 먼저 들어가겠다고 난동을 피운다. 경찰이 남자를 제압하는 사이 남성이 쏜 총에 그만 아들 존이 맞고 만다. 급작스럽게 아들이 사망하고 샘은 그로부터 8년간 지하관을 정비하며 지하에서의 삶을 이어간다. 어느 날 지하대피소에서 만난 로즈(수라야 산토스), 트로이(브랜던 오레트 분)와 함께 지하관 정비를 위해 지하철 위니펙역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안내인이 보이지 않았고 무장을 한 무리가 나타난다. 이들은 지하를 순찰하는 경비대였다. 경비대는 샘 일행을 위니펙역 안으로 안내하고 한 명의 생존자를 발견한다. 생존자는 살아있었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생존자는 샘 일행을 보고 두려워한다. 그는 “죽었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어요”라는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인다. 샘 일행은 지하대피소에서 8년을 바깥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왔다. 지상에서의 일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8년간 지하에 있는 동안 지상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샘은 생각했다. 하지만 미처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감염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사람을 물어뜯으며 자신의 병원체를 전염시켰다. 생존자는 구해준 보람도 없이 혼자 도망치다가 죽었다. 샘 일행과 경비대원들은 몰려오는 감염자들을 향해 총을 쏘며 지상으로 쫓겨갔다. 하지만 지상은 샘이 이전에 알고 있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살아있는 자들은 없고 죽었으나 살아있는 자들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과정 중 감염자들과 생긴 격한 전투 끝에 경비대 리더와 동료 트로이는 죽는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감염자에게 팔을 물린 경비대원 제로는 자신이 감염자로 변할 것으로 두려워하며 목을 매어 자살하는 등 불행한 일들이 연속해서 발생한다. 이제 남은 생존자는 샘과 로즈뿐이다. 경비대원 제로는 무엇을 알고 있다는 듯 샘과 로즈에게 서쪽으로 가라는 표시를 남긴다. 제로의 유언대로 서쪽을 향해가는 샘과 로즈. 밤에는 감염자와 싸우고 낮에는 굶주리며 계속 걸어야 한다.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살아도 산 상태가 아니다. 이런 인류 멸망론을 다룬 영화를 보다보면 정신이 피폐해진다. 지금 코로나 19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영화에서 보여주는 세기말 풍경은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에서 코로나 19의 삶에 대해 반추하고 희망을 보기도 한다.

 

감염자가 문제인가, 생존자가 문제인가

지구상의 소수의 인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호모사피엔스가 멸종되는 영화들은 감염자들로부터 오는 공격과는 별개로 생존한 사람들끼리도 싸워야 한다. 진짜 ‘인류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류애’라고 해서 거창할 것 없다. 버스 안에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을 때 버스 안 사람들은 더이상 승객을 타질 않길 바란다. 지금도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발자국만 양보하면 조금 더 사람을 태울 수 있다. 고통스럽지만 같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 고통을 분담하는 자세가 ‘인류애’ 아닐까. 하지만 생존자들은 자신만이 살아남으려고 더 나은 것을 얻으려고 멀쩡한 사람들을 죽이고 심지어 놀이감으로 삼는다. 인간의 원래 본성이 그런 것일까. 정말 불행한 최후의 상황에서 인간끼리 서로 화합하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샘과 로즈도 서쪽을 향해 이동중에 한 생존자를 발견한다.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감염자 좀비떼보다도 더 무서운 게 사람이다. 오랫동안 감지 않은 듯 더러워 보이는 단발의 머리카락을 흔들며 다가오던 한 남성. 그는 총을 겨누는 샘을 바라보며 두 손을 번쩍 들면서 “조금만 도와달라”고 배시시 웃는다. 샘은 경계하며 그에게 총을 겨눈다. 하지만 남성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약탈자 무리가 샘을 에워싼다. 약탈자들에게 잡힌 샘과 로즈. 놈들은 여자가 목적이다. 샘은 약탈자들 눈을 피해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와 로즈를 구출한다. 하지만 약탈자 리더는 로즈가 도망간 것을 바로 눈치채고 이들을 쫓는다. 결국 샘의 다리를 쏜 약탈자들. 샘은 더 이상 걷기가 힘들어지자 로즈보고 혼자 도망치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약탈자들의 미끼가 되기로 한다. 로즈는 샘이 알려준 데로 안전하다고 알려진 장소로 향한다. 사랑하는 사이도 아닌데 샘은 기꺼이 로즈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려 한다. 약탈자들의 정체는 ‘식인종’이었다. 생존자들을 만나면 이들을 자신의 먹이로 삼았다. 실제로 좀비랑 뭐가 다를까. 어쩌면 얼굴 거죽은 인간의 멀쩡한 모습으로 있으니 이들이 더 잔인하고 역겨운 존재다. 샘은 따라오던 약탈자 무리를 좀비떼를 유인해 제거한 후 숲속으로 도망치다 지친 듯 나무에 몸을 기댄다. 한편 샘을 ‘아저씨’라 부르며 함께 했던 로즈는 멀리 가지도 못했다. 샘을 발견한 로즈는 하룻밤 그를 걱정하며 밤을 보낸다. 이튿날 샘은 죽은 체 발견되고 초반에 죽은 줄 알았던 트로이가 로즈와 죽은 샘을 지나가다 만나게 된다. 죽은 사람이 산 자를 죽이고 산자가 산자를 먹는 이런 이상한 상황에서 특별히 개연성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 어떻게 살아난 것인지 알기 어렵지만 아무튼 로즈는 트로이를 만나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일 것이다. 트로이는 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이야기 한다. “친구, 자네의 얼굴에 햇빛이 비치고 있어.” 영화는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안전한 터널이라는 곳에 도착은 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마지막 장면 트로이가 한 말에 위안을 얻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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