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1차서 노인 배제·2차서 소득 제한 등 지적
"최저임금 60%, 소득보장 어려워"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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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박영신 기자] 노동자가 회사 업무와 무관하게 아픈 경우 생계와 고용 유지를 보장하기 위한 상병수당제도 도입에 앞서 정부가 추진한 1차 시범사업이 마무리되면서 제도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전문가들은 상병수당이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돼야 하며 지급금액확대 뿐 아니라 고용보장도 논의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상병수당은 근로자가 업무 외 질병, 부상으로 인해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경우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대기업이나 공무원과 달리 병가를 제공 받지 못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계 182개국 중 174개국이 상병수당을 도입하고 있으며 OECD 회원국 중 도입하지 않은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1차 시범사업, 여성·소규모사업장 노동자 혜택...노인 등 배제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격리 등을 계기로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정부는 2025년 도입을 목표로 지난해 7월4일부터 6개 지자체 중심으로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시범사업은 이번 달까지 1차, 오는 7월부터 내년 6월까지 2차, 내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3차에 걸쳐 진행된다.

1차에서는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시범사업 지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 중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이거나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피부양자 중 근로·사업 소득이 확인되는 고용보험 또는 산재보험 가입자, 자영업자 중에서도 15세 이상 65세 미만 취업자를 대상으로 최저임금의 60%를 지급했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상병수당 시범사업 신청 현황(2022년 7월~2023년 4월)’을 분석한 결과, 여성과 비사무직, 10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상병수당 이용률이 높은 것은 것으로 나타났다.

총 6132건의 신청건수 중 4916건에 상병수당이 지급됐다. 1건당 평균 지급일은 18.5일이고, 평균 지급액은 83만1000원이다. 

구체적으로는 여성(1812명, 56.0%)이 남성(1423명, 44.0%)보다 지급받은 사례가 더 많았다. 연령대별로는 50대(1269명, 39.2%)가 가장 많았고, 40대(775명, 24.0%), 60대 이상(651명, 20.1%)이 뒤를 이었다.

가입자별로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2,399명)가 74.2%를 차지했고, 자영업자(568명)는 17.6%, 고용·산재보험 가입자(268명)는 8.3%로 집계됐다.

상병수당을 지급받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2399명의 직장규모를 비교한 결과 100인 미만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가 약 70%(1674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군 분석(총 2248명)에 따르면 1662명(73.9%)이 비사무직으로 전문·사무직(586명, 26.1%)보다 약 2.8배 많았다.

그러나 노인, 플랫폼노동자 등 1차 시범사업에서 포괄하지 못한 대상자가 많아 사각지대가 발생됐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2020년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39%, 2016년 기준 노인 소득 중 노동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42.8%“라며 ”노인 노동인구를 상병수당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은 "한 대리기사는 고용보험 사업소득 기준에 미달해 적용 배제사유가 됐다"며 "갈수록 늘고 있는 특고·플랫폼 노동자, 초단시간 노동자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하위 50% 제한, 사업취지에 어긋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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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1차 시범사업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들이 많은데 이번에 시행될 2차 시범사업에서 ‘소득 하위 50%’ 취업자로 대상을 한정한 데 대해 상병수당 취지에 벗어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나백주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소득 하위 50% 등 저소득층만을 보장한다는 개념은 ‘아프면 쉴 권리 보장’이라는 상병수당 근본취지에 턱없이 모자라는 것"이라며 "소득상위 50%로 제한하면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기준에 벗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또 나 공동대표는 "1차 시범사업에 최저임금의 60%를 지급금액으로 결정했는데 근로소득만으로 살아가는 노동자에게 생계 보장이 어려운 수준"이라며 "향후 정액제에 더해 정률 제도를 도입해 소득하위계층에는 최저임금 대비 90% 비율 정도로 정액 보장하고 소득상위계층에는 이전 소득의 60% 정도로 정률 보장하는 등 상병수당 급여로 생활수준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실효성을 갖춰야 한다" 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대상 기준이나 연령 차별을 두기보다 노동 형태, 휴직이나 실직 여부, 앓게 된 질병이 근로 능력을 어느 정도 상실시키는지 파악하고, 합당한 상병수당 지급 방식이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혜주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상병수당 제도는 생산가능인구 증가라는 사회투자적 관점에서 장기적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러한 차원에서 대상 기준을 좁힐 것이 아니라 ‘모든 일하는 사람’을 포괄해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상병수당 제도의 두 가지 차원은 고용보장과 생계 보장인데, 고용보장에 대해서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며 "한국은 제도적으로 임의무급병가 상태여서 상병에 의한 결근 시 고용보장이 되지 않으면 상병수당은 실효성을 갖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소한 해고 방지 조항이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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